한국 금융회사의 어떤 면이 외국 기관에 비해 열악할까. 한국 금융회사가 좀 더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면을 개선해야 할까. 메리츠자산운용에서 느끼고 개선했던 부분들을 몇 가지 공유한다.
한국 금융, 희망은 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사장
1958년생. 미 뉴욕대 회계학과 졸업. 미국 공인회계사. KPMG. 스커더인베스트먼트. 2014년 메리츠자산운용 사장(현).


25년간의 외국 금융회사 경험을 뒤로하고 한국의 메리츠자산운용의 대표이사를 맡은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자산 운용 회사에 온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금융 산업에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고 또 하나는 한국 회사를 외국의 자산 운용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회사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한국 회사에서의 경험이 전무한 필자는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미국 금융회사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선진국의 금융 산업이 한국보다 앞서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한국 금융회사의 어떤 면이 외국 기관에 비해 열악할까. 한국 금융회사가 좀 더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떤 면을 개선해야 할까. 필자가 메리츠자산운용에서 느끼고 개선했던 부분들을 몇 가지 공유한다.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은 회사를 여의도에서 북촌으로 옮긴 일이다. 자산운용사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독립성이다. 메리츠자산운용이 메리츠화재빌딩의 일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거슬렸다. 관계회사와 고객과의 이해 상충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자금을 맡기는 외국 투자가들이 분명히 지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장기적인 투자 철학을 실현하려면 거래소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여의도를 떠나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제는 당연히 우리의 의도를 이해하게 됐다.

한국 금융회사가 또 하나 고쳐야 할 점은 경직된 조직 문화다. 특히 복잡한 보고 체계와 보고서 문화는 배척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보고서를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폐지했고 보고 체계를 단순화했다. 경영전략부서를 폐지하고 팀장·본부장이라는 직책을 없앴다. 처음에는 우려가 많았지만 생산성 향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은 ‘반대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할 수 없는 문화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할 수 없다. 잘못하면 사장이나 고위 임원의 이익이 고객보다 우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행복 지수도 무척 중요하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단순한 원리 때문이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일한 시간보다 생산성이 중요하다. 한국 회사들에 흔히 있는 회식 문화도 없앴다. 직원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훨씬 좋아진 것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자산 운용업에 국한된 일이지만 국내 펀드 시장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점은 한 운용사가 운용하는 공모 펀드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투자 대상이 같고 비슷한 전략을 추구하는 공모 펀드인데도 불구하고 한 회사가 여러 개의 펀드를 운용한다는 것은 문제다. 같은 시장에 투자하더라도 어떤 펀드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메리츠의 여러 펀드들을 가능한 한 없애고 메리츠코리아펀드로 단일화했다. 결과적으로 메리츠자산운용의 투자 성적표가 여러 개에서 한 개가 된 것이다. 최근 우리의 경쟁사들 중에도 소수 펀드 운용을 원칙으로 삼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체 자산 운용 업계를 위해 고무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