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업계 이끄는 쌍두마차…‘한 우물 파기’vs‘과감한 확장’전략 구사

국내 화장품 산업을 대표하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올해 3분기까지 5000억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여기에 최근 체결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 더 큰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이 중심에는 각 대표들의 전략이 녹아 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이른바 ‘내실 강화’ 전략을 선택했다면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통한 ‘확장’을 선택했다.


LG생건, M&A로 새 성장 동력 확보
‘인수·합병(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차 부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의 전략적 M&A 때문이었을까. LG생활건강은 올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늘어난 1조2304억 원, 영업이익은 3.2% 늘어난 1502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화장품 사업의 매출액은 22.6% 늘어난 4802억 원, 영업이익은 24.4% 증가한 639억 원을 기록해 성장세를 이끌었다.

LG생활건강은 차 부회장이 부임한 200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로 경영 성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차 부회장은 전략적 M&A에 주력하며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덩치를 키웠다. 음료 사업을 보강해 사업 다각화에도 성공했다. 2007년 말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샘물·더페이스샵·한국음료·해태음료·바이올렛드림·일본 긴자스테파니·캐나다 후르츠앤드패션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지난 10월에는 CNP코스메틱스(차앤박화장품)의 지분 86%를 542억 원에 인수했다. 차 부회장은 부임 이후 최근까지 M&A 없이 지나간 해가 없을 정도다.
[비즈니스 포커스] 서경배·차석용의 ‘같고 또 다른’ 행보
M&A의 결과도 좋다. 코카콜라는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변신했다. 최근에는 인수 당시보다 매출이 두 배 이상 커졌다. 더페이스샵 역시 LG생활건강 화장품 라인업에 힘을 더했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의 전반적인 실적이 개선됐다. 금융 위기에도 불구하고 8년 연속 흑자를 냈고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어나는 추세다. 과거 5% 중반에 머무르던 영업이익률은 두 자릿수까지 상승했다. 주가 역시 60만 원대를 치고 올랐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차 부회장의 공격적인 행보도 눈길을 끈다. 그동안 중국 현지에 매장을 여는 것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온라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의 새로운 중국 공략 비책은 바로 ‘직구’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만든 B2C 해외 직구 몰인 ‘티몰 글로벌’에 입점하며 중국 직구 사업 강화에 나선 것이다. 중국 백화점에서 LG생활건강의 ‘후’ 브랜드가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16% 성장하는 여세를 몰아 온라인 직구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현지화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직구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국내 면세점 베스트셀러 품목과 현지 화장품 검색어 순위 등을 집계해 판매 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차 부회장은 2005년 LG생활건강 사장에 취임한 후 10년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현재 LG그룹 부회장단 중 전문 경영인으로는 가장 오래된 CEO다.

그의 롱런에는 특별한 리더십이 숨어 있다. 바로 ‘치어리더 리더십’이다. “리더보다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 차 부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CEO가 권위를 앞세워 무작정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임직원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또한 그는 외국계 회사에서 익힌 경험대로 개방적인 토의를 좋아한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다듬고 격려하는 것이 CEO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CEO로서 치어리더의 역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소비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편리함을 주고 회사가 발전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근에는 차 부회장의 ‘화장실 경영’이 주목받는다. LG생활건강 광화문 사옥에 있는 남녀 화장실 칸마다 차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직접 작성해 부착해 놓는 것이다. 한 평(3.3㎟)짜리 화장실 칸마다 붙은 그의 메시지는 임직원들의 사기를 북돋고 있다.

M&A로 성장 가도를 달리는 LG생활건강과 달리 아모레퍼시픽은 오직 화장품 사업에만 집중한다. 이것이 바로 서 회장의 ‘뚝심 경영’이다. 서 회장의 ‘화장품 한 우물 전략’은 통했다. 지난 8월에는 주가 200만 원을 돌파하고 분기마다 ‘어닝 서프라이즈’가 연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아모레퍼시픽그룹(당시 태평양그룹)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보다 일찍 경영난이 찾아왔고 당시 태평양 기획조정실 사장이던 서 회장은 화장품 외에는 모든 사업을 구조조정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서 회장이 직접 나서 증권·패션·야구단·농구단 등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정리했다. 이런 뼈아픈 과정을 거쳐 오직 화장품 사업에만 몰두한 결과 외환 위기에도 탄탄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모레퍼시픽, 과감한 글로벌 경영
서 회장은 경영 상황이 좋아진 뒤에도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LG생활건강이 M&A로 몸집을 불리며 맹추격해 왔지만 아모레퍼시픽은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되레 기존 제약 사업(관절염 치료제 ‘케토톱’으로 유명한 태평양제약)마저 축소하며 화장품에 집중했다. 새로운 사업 대신 설화수·헤라·라네즈·마몽드·이니스프리·에뛰드하우스 같은 주력 브랜드를 단일 매출액 5000억 원(설화수는 1조 원) 브랜드로 키우자는 ‘메가 브랜드 전략’을 선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내실 경영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올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오른 1조2090억 원, 영업이익은 56.4% 상승한 1739억 원을 올렸다. 3분기 매출이 1조 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심 계열사인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6% 상승한 9967억 원, 영업이익은 65% 늘어난 1477억 원을 기록했다.

서 회장은 화장품으로 사업을 좁힌 대신 ‘해외 사업은 확대’하는 남다른 선구안도 지녔다.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프랑스 등 선진 시장까지 공략하는 등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서 회장에게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해외 사업 특성상 투자비용 대비 실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뚝심 있게 기다리며 과감한 현지 투자에 나섰다. 이 투자 결실도 서서히 탄력을 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진출한 해외시장은 13개국으로 매장 수는 총 4500개에 달한다. 지난 10월 중국 상하이에는 대지 면적 9만2788㎡, 건축 면적 4만1001㎡의 대규모 생산 기지도 완공했다. 연간 1억 개의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서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2조 원, 해외 사업 비중 50%로 글로벌 톱 5에 오르겠다”면서 “중국에서 급성장하는 디지털·로드숍 채널에 부응하기 위해 멀티 채널 전략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현재 해외 임직원 수는 6618명으로 국내 임직원 수 4700여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중국 현지 직원만 5609명이다. 해외 직원 수가 국내 직원 수를 역전한 것은 194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아모레퍼시픽이 해외 사업에 얼마나 힘을 싣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두 CEO는 같은 고민에 빠졌다. 바로 ‘색(色)’이다. 지금까지 두 화장품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 온 기초 화장품과 달리 색조 화장품은 아직 세계시장에서 밀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사는 색조 화장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각자의 전략을 펼치며 새로운 시장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