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와 2대 주주 경영권 분쟁 속 ‘대주주 변경 승인’ 문제 불거져
국내 최대 신탁회사인 한국토지신탁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1월 2일 종가 기준 1660원에 불과했던 주가가 1년도 안 돼 두 배 이상(11월 12일 기준 3470원) 치솟았기 때문이다. 한국토지신탁의 주가가 크게 상승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토지신탁이 시장점유율 40%로 독보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신탁업에 대한 가치가 재평가 받아서다. 부동산 신탁이란 고객이 토지를 신탁회사에 위탁하고 신탁회사는 위탁 받은 토지를 개발해 이익을 돌려주는 제도를 뜻한다. 신탁사는 자금력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부동산을 개발하고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아 운영된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상당수의 부동산 개발이 신탁을 통해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또 다른 이유는 최대 주주와 2대 주주의 경영권 분쟁에다 2대 주주의 지분 매각 이슈가 겹쳤기 때문이다. 한국토지신탁은 1996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로 설립된 공기업이었다. 하지만 2002년 정부는 거세진 민영화 요구에 따라 한국토지신탁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다. 그러나 당시 시스템상 부동산 신탁업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기여서 ‘한 다리 걸치는’ 신탁 방식보다 직접 개발 방식이 이해관계인의 이익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결국 5년여가 지난 2007년에 가서야 민영화가 시작됐다. 사모 투자 펀드(PEF) 아이스텀앤트러스트(이하 아이스텀)가 한국토지신탁이 발행한 5800만 주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영권도 아이스텀이 확보했다.
2011년 이후 실적 급성장해
민영화가 시작되자 한국토지신탁의 실적이 급상승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636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던 한국토지신탁은 2011년 452억 원 규모의 흑자 전환을 이뤄낸 뒤 2012년 476억 원, 2013년 518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성장을 지속했다.
문제는 2013년 4월 LH가 보유 지분 전량(31.29%, 7900만 주)을 반도체 장비 업체인 엠케이전자가 참여한 ‘리딩밸류2호’ PEF에 매각하면서 시작됐다. 단숨에 2대 주주가 된 엠케이전자는 내친 김에 리딩밸류2호와 별도로 개인 주주 등으로부터 직접 지분을 더 사들이며 결국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현재 엠케이전자 측 지분은 37% 수준이다.
그러자 엠케이전자와 아이스텀의 갈등이 촉발됐다. 아이스텀은 성공적 경영을 통해 기업 실적을 개선했다. 그러나 아이스텀은 여러 투자자들이 모인 ‘사모 펀드’다. 그 속성상 언젠가는 ‘해산’, 즉 회사를 팔고 떠나야 한다. 당연히 이른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더 높은 가격에 지분을 누군가에게 매도해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고자 했다. 반면 엠케이전자는 이제 명실상부한 한국토지신탁의 최대 주주가 됐다. 최대 주주가 됐다는 의미는 주주총회를 통해 정당하게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분율도 떨어지는 아이스텀과 반드시 협상할 필요는 없다. 맞지 않는 가격에 지분을 사야 할 의무도 없다. 양쪽의 입장 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스텀은 엠케이전자가 아닌 제3의 매수자를 찾았다. 그 제3자는 또 다른 PEF인 파이어니어다. 아이스텀은 지난 8월 25일 파이어니어에 한국토지신탁의 보유 지분 전량(31.6%)을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파이어니어는 신생 PEF 운용사인 프론티어인베스트(이하 프론티어)와 한화인베스트먼트를 주축(GP:무한책임사원)으로 KKR 및 세종상호저축은행이 투자자(LP:유한책임사원)로 참여한 펀드다. 프론티어는 계약 후 곧바로 금융위에 대주주 변경 승인을 요청해 현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서 엠케이전자와 아이스텀이 벌인 경영권 분쟁과는 또 다른 하나의 이슈가 발생했다. 바로 투자자로 참여한 KKR의 존재다. PEF 업계에서 KKR는 ‘전설’이다. KKR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규모 943억 달러(약 100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PEF 운용사다.
그러면 왜 KKR에 주목하는 것일까. 한국토지신탁은 업종상 ‘금융회사’로 분류된다. 한국에서 금융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로부터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해 ‘변경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심사 대상이 외국 법인이라면 더 까다롭다. 형사처분 여부나 제재 여부, 국제 신용 평가 등급 등 여러 복잡한 요건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GP와 LP로 나뉜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GP인 프론티어만 심사를 받으면 된다. 어찌보면 글로벌 사모 펀드인 KKR가 까다로운 한국의 금융회사에 대한 인수 요건을 피하기 위해 신생 운용사인 프론티어를 내세워 편법적으로 국내 금융사를 인수하려는 시도라는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지나치게 확대해석된 것일 수 있다는 게 PEF 및 금융 투자 업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인수에 대해 법률적으로 별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 혼란이 있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게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자칫 하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금융위의 빠르고 명쾌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피해 우려돼 빠른 결정 필요”
‘과대 해석’을 추측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KKR가 이 정도 규모의 딜에 ‘편법’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금융 감독 기관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파이어니어의 전체 펀드 규모는 1400억 원 정도다. 이 중 KKR가 LP로 참여한 돈은 700억 원 수준이다. 일반인에게는 천문학적 금액이지만 글로벌 금융회사에는 그리 크지 않은 돈이다. 특히 진입과 진출이 모두 중요한 PEF로서는 잡음을 내며 인수 가격을 지나치게 올리는 것도, 매도 시 복잡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경영권 분쟁에 참여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또 프론티어가 수년 전부터 부동산 투자 부문에서 전문성을 쌓아 왔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론티어는 아시아퍼시픽캐피탈의 100% 자회사다. 2008년 설립한 아시아퍼시픽캐피탈은 그간 부실채권(NPL) 인수 등을 통해 부동산 업계에서 이름을 알려 왔다. 실제로 아시아퍼시픽캐피탈은 오래전부터 한국토지신탁의 인수에 관심을 가져 왔다. 김윤석 프론티어 대표는 “이미 2012년 4월 아이스텀이 공개 주식 매각을 추진할 때 입찰에 참여했다가 포기한 바 있다. 또 그해 7월에도 아이스텀의 LP 중 일부가 지분 인수를 타진해와 추진했지만 여러 조건 때문에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즉 세간의 의혹처럼 KKR가 한국토지신탁 인수를 위해 프론티어를 ‘내세운’ 게 아니라 아시아퍼시픽캐피탈이 한국토지신탁 인수를 위해 최근 규제가 완화된 PEF를 설립한 후 명망 있는 KKR를 ‘끌어들여’ 신뢰성을 높이려고 한 ‘개연성’이 더 높다는 의미다. 김 대표의 설명 역시 이와 비슷했다. 김 대표는 “전 직장인 디비즈원(글로벌PEF) 근무 당시 5년간 함께 일했던 크리스 스완이 2013년 4월 KKR의 아시아 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의 부동산 금융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 아시아퍼시픽캐피탈도 PEF를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후 몇 건의 투자 계획을 함께 검토했다. 그러다가 2013년 12월 아이스텀에서 다시 인수 제의가 들어와 이듬해 1월 협상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물론 프론티어가 KKR가 내세운 회사가 아니더라도 고려할 점은 있다. 프론티어가 PEF라는 점이다. 즉 아이스텀→리딩밸류2호→프론티어 등 사모 펀드들이 계속해 한국토지신탁의 경영에 관여하게 된다면 이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토지신탁이 올 초까지 실적에 비해 저평가 받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지배 구조 때문”이라며 “부동산 신탁업이 재평가 받고 있는 이상 ‘경영권 안정’은 한국토지신탁 가치 평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이번 인수가 금융위 승인을 통해 최종 성사되고 경영권을 확보하면 적어도 5년 이상 경영을 이어 갈 것이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수도권 중심의 임대주택업을 지방으로 확산하는 동시에 기존의 NPL 현장의 정상화 경험을 활용한 중·장기적 성장 플랜을 가지고 있다. 결코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회사의 지속 성장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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