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력 분산은 (대통령이든 국회든) 권력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가리는 데서 시작된다. 힘은 가려서 제대로 주고 감독과 책임을 엄격히 해야지 국회 권력만 키우고 권력 분산이니 좋다면 궤변에 불과하다.
[경제산책] 경제학으로 본 개헌론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대우그룹. 대통령녹색성장위원회. 2002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현).



정치권에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정책 현안이 더 급해서인지, ‘블랙홀’이란 호통에 움찔해서인지 모르겠으나 다소 잠잠하지만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개헌 논의를 경제학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이제 정치·헌법에까지 경제를 들이대느냐는 거부감도 있겠지만 경제를 ‘합리적 선택과 행동이 조정되는 과정’이라고 해석하면 나름 생각해 볼 점도 있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과 통치 체제를 규정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헌법에 근거해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고 국가기구가 작동한다. 법과 제도로 나라의 모든 일을 규정할 수 없으니 지도자를 뽑아 맡기고 국회를 만들어 견제와 감독을 한다. 주식회사 제도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뽑아 재량권을 주고 이사회가 견제 감독하는 것과 같다. 직선 대통령에 정부를 맡길지 국회에서 총리를 뽑고 내각을 짤지는 CEO와 이사회 사이의 역할 배분과 같다. 국민투표는 주주총회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는 당헌·당규로 요약되는 정당의 체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약 이론’은 계약의 구조에 따라 공동체의 의사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절한 견제와 감독이 없으면 통치자든 경영자든 해이해지고 쓸데없는 기구만 잔뜩 만들어 놓으면 ‘조정 비용’ 때문에 되는 일이 없게 된다. 개헌 논의에서 몇 가지 포인트를 생각해 보자.

정파적 이해로 나랏돈을 마구 쓰는 무책임한 통치자, 주주 돈으로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먹튀’ CEO와 다를 바 없다. 대중의 인기만 좇는 통치자는 작전으로 주가를 올려 돈 버는 CEO와 같다. 못된 짓의 결과가 임기 중에 나타나지 않고 잘못해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 무책임과 ‘먹튀’의 유혹은 커진다.

4년 중임이 5년 단임보다 좋을까. 5년 단임은 ‘중간평가’가 없어 신임을 다시 묻기 어렵다. 4년 중임은 재선을 위해 표에 휘둘리는 정책이 난무할 수도 있다. 무책임인지, 소신인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핵심은 임기가 아니라 뽑아주는 국민의 판단이란 결론이 나온다. 작전에 휘둘리는 주식시장은 먹튀 경영자의 밥이듯….

제왕적 대통령이 문제니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며 이원집정부제·내각제를 내건다. 정부가 힘이 없어 되는 일이 없는 나라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라니 이상하고 줄인 권력을 가져갈 집단이 의회라니 지금의 권력도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정보경제학은 의사 결정 권한을 집중하면 조정 비용이 줄어들고 분산하면 현장의 정보가 잘 반영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독재는 일이 쉽지만 민의가 무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능한 독재는 되는 일이 없고 대중이 뽑은 국회가 국익과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면 이 또한 쓸모없다. 선거·여론 등 정치체제의 기반이 취약한 나라에서 권력자들이 해먹다 보면 경제는 엉망이 된다는 사실은 도처에서 입증된 바 있다. ‘폭식 효과’라고 한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잘못 뽑으면 어차피 엉망이 된다.

진정한 권력 분산은 (대통령이든 의회든) 권력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가리는 데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이제 공기업도 아닌 KT나 포스코의 사장을 권력이 마음대로 한다면 청와대가 하나 국회가 하나 다를 게 없다. 힘은 가려서 제대로 주고 감독과 책임을 엄격히 해야지 국회 권력만 키우고 권력 분산이니 좋다면 궤변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려고 개헌하면 나쁘다. 국회가 자기 권력만 키우려고 개헌해도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