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 맞불 작전이냐 급락 방어냐에 ‘초점’

[글로벌 투자 따라잡기] 일본발 환율 전쟁 2라운드, 그 여파는
일본 중앙은행(BOJ)이 본원통화 규모를 연간 60조~70조 엔에서 80조 엔씩 늘리는 깜짝 추가 양적 완화(QE)에 나섰다. 내년 소비세율 인상을 앞두고 추가 통화 완화가 예상되기는 했지만 타이밍 측면에서 보면 전격적인 결정이었다. 엔·달러 환율은 즉각 114엔을 넘어섰고 달러 인덱스도 9월 전고점을 경신하며 초강세를 이어 갔다. 원·달러 환율도 당일 1068.5원으로 13.0원 급등한 데 이어 1100원마저 위협할 태세다. 원·엔 환율은 9월 저점인 953원보다 더 낮아진 942원까지 하락했다.

외형적으로는 미 중앙은행(Fed)의 3차 양적 완화(QE3) 종료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공급 축소를 6월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11월에는 BOJ가 추가 양적 완화를 통해 돈을 풀어 채워 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환율 전쟁의 재개다. 6월 ECB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통화 전쟁이 9월 Fed의 동참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10월 말 BOJ를 통해 빠르게 2라운드에 돌입하고 있다.

환율 전쟁과 달러 강세는 글로벌 경기 둔화의 산물이다. 주요국의 내수 부진과 디플레 압력이 장기화되자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돈을 풀어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추는 경쟁에 돌입했다. 수출을 통해 다른 나라들의 수요를 자국으로 빼앗아 오려는 전쟁이다. 수입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에 자국의 디플레 압력도 자연스럽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내수가 안정적인 나라는 거의 없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성장 속도가 양호한 미국이 달러 강세를 바탕으로 글로벌 수요를 담당해 왔다. 그러나 Fed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통해 “달러 강세와 글로벌 경제의 성장 둔화 우려”를 피력하며 달러 강세의 속도 조절에 나선 바 있다. 그렇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환율 전쟁에 BOJ가 다시 불을 붙였다.
[글로벌 투자 따라잡기] 일본발 환율 전쟁 2라운드, 그 여파는
환율 전쟁과 달러 강세에 대한 대응은 각국 중앙은행마다 다르다. 선진국들과 한국 등 선진국에 근접한 신흥국들은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준 금리를 낮추는 등 통화 완화에 나서면서 맞불 작전을 펼치고 있다. 반면 자금 이탈 우려가 있는 신흥국들은 경기 둔화에도 불구하고 기준 금리 인상과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가치의 급락을 방어하고 있다. 6월 말 대비 신흥국들의 외화보유액은 1419억 달러가 감소했다.


한국 기준 금리, 내년 초까지 1.75% 예상
실제로 스웨덴은 지난 10월 28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해 기준 금리를 25bp(1bp= 0.01% 포인트) 인하해 제로 금리에 동참했다. 반면 브라질과 러시아는 인플레와 자금 이탈 방어를 위해 기준 금리를 각각 25bp, 150bp 인상했다. 신흥국의 리스크는 조금 더 높아졌다.

ECB는 BOJ에 대응해 추가로 돈을 더 풀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ECB가 국채를 직접 매입하는 미국식 양적 완화에 나선다면 주가는 상승하고 남유럽 국채 금리는 하락할 것이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그러나 ECB의 동참으로 환율 전쟁과 달러 강세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ECB가 그런 공격적인 대응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반대로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에만 의존하는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남유럽 금리는 반등하겠지만 주가 하락과 함께 유럽의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될 것으로 판단된다.

Fed로선 더 강해진 달러 강세 속도를 용인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달러가 강해지면서 나타나는 미국의 수출 경쟁력 저하와 디플레 우려 강화, 기업 이익 감소 등과 함께 신흥국의 자금 이탈 불안도 미국 경제에는 부정적 요인들이다. Fed의 속내가 어떠하든 달러 강세의 속도 조절을 위해서는 기준 금리 인상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한 박자 늦춰야 한다.

BOJ가 추가 QE에 나선 10월 31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2% 하락했다. 그러나 ECB가 마이너스 예금금리 도입 등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환율 전쟁 1라운드 이후(6월 5일) 원화의 달러 대비 통화가치 변화율은 여전히 32개국 중 12위(-4.0%)다. 9월 말 8위보다 개선됐지만 상대적인 강세 압력은 여전하다. 엔화(-7.9%)와의 격차도 다시 확대됐다. 환율 격차가 벌어진 만큼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부양된 내수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급증하는 소위 ‘해외 직구’가 그렇다. BOJ의 추가 양적 완화로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내 채권 금리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일본과 유럽의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엔화와 유로화의 추가 약세는 불가피하다. 원·엔 환율은 내년 2분기까지 920원으로 하락할 것이고 중국 역시 부동산 시장의 장기 부진으로 내년 1분기 지급준비율 혹은 기준 금리 인하에 나설 전망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보다 중국을 따라가는 흐름인 한국은행 기준 금리는 내년 1분기까지 1.7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 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한 이상 연내 인하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경제 사실상 2009년보다 못하다
“기준 금리를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보다 더 낮춰야 할 만큼 한국 경제가 그때보다 더 나쁜가”라는 질문을 최근 많이 받는다. 적어도 내수의 성장 잠재력과 적정 금리 측면에서는 그렇다.

첫째, 차입을 통해 이익률을 더 높이는 레버리지(leverage)의 축소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금융 위기처럼 부채의 위기를 겪고 나면 가계와 기업은 대출을 꺼리고 금융회사는 대출에 인색해진다. 규제 때문이기도 하다. 초저금리에도 불구하고 자금 수요 부진으로 은행에는 잉여 예금이 쌓인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00년대 중반 가계 부채의 위기를 겪은 한국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쉽게 빌리려고도, 또 빌려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미국의 상업은행은 디레버리지가 끝났지만 금융 위기 이후 예금과 대출 잔액의 격차가 여전히 확대되고 있다. 유럽 등 디레버리징이 진행 중인 나라들의 상황은 더하다. 금융 위기 이전보다 레버리지가 크게 낮아진 만큼 이전의 성장률과 인플레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적정 금리는 자연스럽게 더 낮아진다.

둘째, 교역량이 크게 감소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으로 급증했던 전 세계 교역량의 증가 속도는 금융 위기 이후 크게 감소했다. 레버리지 축소로 공산품은 물론 미국이 셰일 오일의 생산에 나서면서 석유류 교역도 줄었다. 선진국 경제가 개선되면 신흥국도 좋아진다는 신흥국의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도 눈에 띄게 미약해졌다.

셋째,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내수의 성장 동력이 축소됐다. 휴대전화의 해외 생산 비중은 2008년 45%에서 2012년 80%로, 자동차는 2009년 44%에서 1013년 55%로 급증했다. 국내의 투자·고용·소비도 함께 줄었다.

넷째, 가장 심각한 것은 자신감의 상실이다. 2012년 6월 그리스 사태를 전후로 “유럽 위기는 대공황 이후 최대의 충격이 될 것”이라는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들이 연이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대기업들은 컨틴전시 플랜에 돌입했다. 그때부터 위기에 대비해 정부는 재정 흑자를, 기업은 현금 확보를, 가계는 노후 대비에 나서면서 한국 경제는 멈춰 섰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과거 시계열 등 모형을 활용한 경제 전망은 쉽게 빗나간다. 반면 선진국들은 당시부터 대대적인 부양에 나섰다. Fed과 ECB는 2012년 9월 QE3와 무제한 국채 매입(OMT)을, BOJ는 12월 추가 QE를 시작했다. 앞서가던 코스피는 2012년 6월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역전됐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