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양적 완화 종료 등 가속화되는 엔 약세…경상수지 흑자를 잘 활용해야

[이슈 인사이트] 엔화 가치 하락, 수출 중심 한국 ‘비상’
최근 일본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의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엔 약세는 더 지속되고, 이는 수출 감소를 통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월 말 일본 중앙은행(BOJ)이 양적 완화를 추가적으로 단행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114엔까지 치솟았다. 엔화 가치가 이렇게 하락한 것은 2007년 12월 이후 처음인데, 그 이유를 일본 국내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예상보다 많은 양적 완화 규모에 시장이 반응하고 있다. BOJ는 2013년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에 이를 때까지 양적 완화를 지속하기로 하면서 돈을 풀고 있다. 이번 통화정책 회의에서 연간 본원통화 공급 규모를 기존의 60조~70조 엔에서 80조 엔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본원통화가 지난해 46%나 증가한 데 이어 올해도 42%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본원통화가 14%, 올해 8월까지 11% 증가한 것과 비교해 보면 일본이 얼마나 많은 돈을 찍어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적극적 통화정책, 엔 약세 가속화
일본 공적연금(GPIF)의 해외투자 확대 계획 발표도 엔 약세를 가속화했다. BOJ의 추가적인 양적 완화 발표 이후 공적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 계획도 나왔다. 이에 따르면 GPIF는 채권 투자 비중을 기존의 60%에서 35%로 낮추는 대신 주식 투자 비중을 12%에서 25%로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12%에서 25%로, 해외 채권 투자 비중을 11%에서 15%로 늘리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시장의 예상(각각 15%, 14%)을 초과하면서 엔화 가치 하락을 초래했다.

이런 일본 내의 엔 약세 요인과 함께 미국의 정상적인 통화정책 회귀가 앞으로 엔화 가치를 더 하락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정책 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5.25%에서 0~0.25%로 인하했다. 이도 모자라 2009년 3월부터는 비정상적 통화정책인 양적 완화를 3차례에 걸쳐 단행했다. 이 같은 적극적 통화정책으로 주식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 경제가 소비 중심으로 회복됐다.

이에 따라 미국은 올해 10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양적 완화를 완전히 종료했다. 이제 미국은 금리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필자가 분석해 보면 엔·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본과 미국 본원통화의 상대 비율로 나타났다. 엔·달러 환율과 일미 본원통화 비율의 상관계수가 같은 기간에 0.83으로 매우 높게 나온 것이다. 미국은 이제 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더 풀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엔화 가치는 추가적으로 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달러당 120엔대에 접근할 전망이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를 넘어서면서 일본 경제가 거의 20여 년 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어느 정도 탈피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적극적 통화정책은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으로 이웃인 한국 경제 전망을 암울하게 하고 있다.
[이슈 인사이트] 엔화 가치 하락, 수출 중심 한국 ‘비상’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0.501로 2006년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수출 경합도는 수출 상품 구조의 유사성을 계량화해 외국시장에서 국가 간 경쟁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경합도가 1에 근접할수록 수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품목별로 보면 석유제품(0.837), 반도체 장비(0.766), 자동차(0.707)순으로 높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와 관련된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주식시장이 이를 미리 반영한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과 2008년의 국내외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높은 환율과 함께 수출 중심으로 성장했다. 한국 경상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에 31%였지만 2012년에는 56%까지 상승했다. 지난해에는 54%로 다소 낮아졌지만 아직도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경제다. 앞서 본 것처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이 줄어들면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 등이 예상한 3%대 후반보다 훨씬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가계는 높은 부채로 소비를 늘릴 수 없는 상태이고 기업은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대규모의 현금(한국은행의 자금순환에 따르면 2014년 6월 말 현재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484조 원이다)을 보유하고 있지만 투자할 데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내수 증가가 수출 감소를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


경제 주체들의 대응 방안은
엔 약세 시기에 한국의 각 경제 주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정책 당국은 일본 엔화에 비해 한국 원화가 지나치게 강세로 가는 것을 어느 정도 조절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양적 완화와 유사한 정책도 펼칠 필요가 있다. 조만간 일본 중앙은행과 함께 유럽중앙은행(ECB)도 과감한 양적 완화를 단행할 수 있다. 유로 지역 경제가 지난해 마이너스 0.4%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1% 이하로 성장하고 소비자물가도 0.5% 상승에 그쳐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들은 일본 자금을 적극 유치할 필요가 있다. 경제 회복에 따라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됐던 미국계 자금이 일부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중앙은행이 대규모로 통화를 공급하고 일본의 연·기금이 해외투자를 늘리면 그 자금 중 일부가 한국의 금융시장으로 유입돼 미국계 자금의 공백을 채워주면서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엔 약세 기간을 이용해 일본 소재 기업 등에 투자하면서 한국의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수출입 통계가 작성된 이후 일본과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아직도 중요한 소재 및 부품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799억 달러였고 올해는 8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돈들이 결국은 해외로 나가게 된다. 경상수지 흑자 중 일부가 일본에 투자된다면 한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제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함께 기업은 환 헤지를 통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 800억 달러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를 고려할 때 한국 원화는 미 달러에 비해 가치가 떨어질 수 있지만 엔이나 유로에 대해서는 강세로 갈 가능성이 높다.

가계도 금융자산 다변화를 통해 어느 정도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자금순환표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은 2726조 원이다. 이 돈들을 받아들일 정도로 국내 금융시장이 크지 못한 상태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주식시장은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국내 금융자산 투자에서 기대 수익률도 낮아지고 있다.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일본과 유로 지역의 다양한 금융자산에 투자해 해외에서 개인의 부를 늘릴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