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첫 모델 출시 후 2년 만에 법정 관리…르노에 인수돼 브랜드만 남아

“삼성자동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합니다.”

1999년 6월 30일 삼성그룹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1998년 첫 모델을 출시하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던 삼성자동차의 법정 관리는 곧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철수를 의미했다. 이건희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10년에 가까운 기간을 준비해 오다 감행한 자동차 사업은 그렇게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고배를 마셨다. 자금력이 충분했고 임직원들도 전력을 다해 나섰다.

삼성자동차를 통해 기존의 한국 자동차 제조업과 다른 패러다임을 보여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사업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체력 하나는 자신 있었던 삼성은 온 몸에 독이 퍼지기 전에 꼬리를 자르기로 결정했다. 두고두고 아쉬울, 삼성그룹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실패였다.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실패로 끝난 삼성의 자동차 모험
1990년 상용차 기술도입 신고서 반려
1990년 초 한국엔 총 4개의 자동차 업체가 있었다. 현대·기아·대우·쌍용이 바로 그것이다. 네 업체 모두 국내에서 파는 물량보다 해외로 수출하는 자동차가 훨씬 더 많았지만 안방인 내수 시장 역시 중요했다. 연간 판매량이 100만 대 정도인 내수 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4사의 생존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그룹까지 자동차 사업 진출을 선언하자 기존 업체들의 반발이 거셌다.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벌이는 주변 환경은 가시로 가득했다.

당시 국내 매출 1위 기업 삼성물산과 꾸준히 몸집을 키워 가던 전자를 보유한 삼성 그룹은 상대적으로 늦게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셈이다.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미래 성장성도 높게 봤다. 자동차에 정보기술(IT)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진출 쪽에 힘을 실어 줬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에 발을 담그기 위해 수차례 시도를 거듭했다. 1990년 삼성중공업이 닛산 디젤과 제휴해 대형 상용차 생산을 위한 기술도입 신고서를 냈지만 정부의 반려로 무산됐다. 이후 1992년 720억 원을 투자해 1994년부터 8톤 이상의 대형 상용차를 연간 4800대씩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뒤이어 1994년 11월 승용차 시장까지도 진입 허가를 받았다. 자동차 진출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당시 경영이 어려워진 기아차의 인수 1순위에 삼성이 거론됐다. 실제로 1993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기아차 지분을 10% 이상 확보했다.

자동차 제조 기술이 부족한 삼성은 일본 닛산과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가 사업 진출 초반에 미쓰비시로부터 엔진 제조 기술을 배워 오고 기아차 또한 마쓰다의 도움을 받았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두 회사는 추후 독자 모델과 기술력을 확보한 만큼 삼성도 자동차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서야 했다.

1995년 3월 자본금 1000억 원 규모로 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1996년 부산 신호 공단에 자동차 공장이 완공됐다. 자동차 부품은 삼성전기가 부산 녹산 공단에 세운 공장에서 조달하고 판매와 서비스는 삼성물산이 맡기로 하는 등 계열사들의 역할 분담도 이어졌다. 2010년까지 연간 150만 대 규모의 업체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1998년 2월 삼성자동차의 첫 양산 모델인 중형 세단 SM5가 출시됐다. 닛산의 ‘세피로’를 기본으로 만든 모델이었다. 뒤이어 삼성상용차는 1998년 11월 닛산 아틀라스를 베이스로 한 1톤 트럭 ‘야무진’을 시판했다.

자동차 제조는 장치산업이다. 초기 투자비도 상당하고 신차 모델 한두 개만 판매가 신통치 않아도 보유한 현금이 순식간에 말라버릴 수 있다. 다른 사업에서의 성공을 토대로 자동차 사업으로 손을 뻗쳤다가 그룹 해체까지 치달은 케이스가 많다. 대우와 쌍용이 그 예다. 국내 재계 1위 자리를 다투던 삼성도 자동차 사업으로 그룹의 근간이 흔들거렸다.


이건희 회장, 손실 보전 위해 삼성생명 주식 내놔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시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아시아 금융 위기로 내수 경기가 위축된 데다 글로벌 ‘빅6’론이 대두될 때였다. 대규모 업체가 아니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삼성이 첫 자동차 모델인 SM5를 출시하자마자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1998년 12월 정부는 5대 그룹도 부채비율이 높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며 그룹별로 잘하는 산업을 몰아준다는 소위 ‘빅딜’안을 빼들었다. 업체별로 잘하는 자동차만 만들어야 한다는 1980년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 정책과 유사한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사업에 갓 뛰어든 삼성은 길을 비켜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했다. 빅딜론이 제기되기 직전 삼성이 기아차 인수에 실패(1998년 10월)하면서 이 의견에 힘이 실렸다. 차를 공식 판매한 지 1년도 안 돼 구조조정 이야기가 대두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빅딜은 무산됐고 삼성그룹은 1999년 6월 삼성자동차의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법정 관리에 따른 채권단의 손실은 이건희 회장이 소유한 삼성생명 주식(지분 26%) 중 350만 주(20%)를 추후 상장해 갚겠다고 밝혔다. 삼성생명의 주가를 주당 70만 원으로 계산했다. 삼성자동차가 채권단으로부터 진 부채 2조4500억 원을 갚고 추가 손실이 발생하면 이 회장과 삼성 계열사들이 보전하기로 하는 데 합의했다.

삼성차는 법정 관리를 통한 청산 쪽으로 가닥을 잡다가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차의 공장이 들어선 부산 시민들도 지역 경제를 위해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삼성자동차문제해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은 부산의 저명한 인권 변호사 노무현 씨였다.

삼성차는 2000년 초 인수 의사를 밝힌 르노와 인수 협상을 진행했고 2000년 4월 르노는 삼성차 인수를 결정했다. 2000년 9월 자본금 4400억 원으로 출범한 르노삼성은 르노가 80.1%, 삼성카드가 19.9%의 지분을 나눠 가졌고 지금까지도 이 지분율은 변하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은 르노에 삼성 브랜드를 빌려주는 대신 영업이익이 발생할 때 매출의 0.8%를 로열티로 받기로 결정했다. 르노가 글로벌 회사지만 삼성의 브랜드 가치가 한국에선 높기 때문에 이 같은 전략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르노가 인수하지 않은 삼성상용차는 2000년 말 파산 처리됐다. 삼성상용차의 조립 라인과 기계 설비는 베트남에 매각됐다.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실패로 끝난 삼성의 자동차 모험
르노삼성은 2002년 9월 준중형 세단 SM3를, 2004년엔 대형 세단 SM7을 출시했다. 2007년엔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5를 출시했으며 2013년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QM3를 내놨다. 매출은 2010년 5168억 원을 정점을 기록하다가 신모델 부재로 다시 감소했다.


배터리 통해 차세대 친환경 차 산업에 재진출
르노삼성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정책에 따라 QM5를 기점으로 그 이후에 출시되는 신형 모델은 르노에서 개발한 모델을 기본으로 한국에 맞게 손질해 내놓기로 결정했다. 기존 닛산과의 연결 고리를 르노로 바꾼 것이다. 이는 르노-닛산을 이끌고 있는 카를로스 곤 회장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엔저와 북미 시장 회복으로 판매 호조를 보인 닛산과 달리 르노는 유럽 경기 침체로 수요가 줄어 재고 처리가 시급했다. 이 물량을 르노삼성에서 일부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유럽산 부품 비중이 늘어 원·유로 환율 변동에 따라 실적이 오르내렸다. 2014년부터는 북미 수출용 차량인 닛산의 중형 SUV 로그도 생산하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따른 관세 혜택을 노린 전략이다.

삼성그룹은 삼성차의 법정 관리와 매각 이후에도 관련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삼성생명 상장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생명보험사의 자산은 계약자의 자산이기 때문에 대주주가 상장을 통해 시세 차익을 얻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2010년 삼성생명이 공모가격 주당 11만 원으로 상장됨에 따라 삼성은 삼성차 관련 부채 원금 전액을 털었다.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는 액면 분할 후 3500만 주(주당 7만 원)가 됐다. 채권단 중 서울보증보험이 1160만 주를 유동화해 2334만 주가 남았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연체이자가 논란이 돼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삼성은 완성 차에선 철수했지만 배터리를 통해 차세대 친환경차 사업에 적극 참여 중이다. 2008년 세계 1위의 자동차 부품 회사 보쉬와 지분 50%씩 합작해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용 배터리를 만드는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2012년 보쉬의 지분을 전량 인수한 삼성은 BMW와 폭스바겐·크라이슬러 등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의 전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자동차 부품 부문에 IT의 강자인 삼성의 참여가 늘고 있다. 이제 다시 삼성이 자동차 제조업에 진출할 가능성은 낮지만 자동차 사업에 대한 삼성의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