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덜 받고 그 대신 조금 더 일하자. 제품의 생산원가를 줄일 수 없으니 사원들과 힘을 합해 시간외 근무라도 더 하자. 당분간 수당 지급을 유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망하지는 말자. 조금 더 가난해질 뿐이다. 모두가 같이.
[CEO 에세이] 2015년의 희망은 어디에서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

1947년생. 197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73년 고려대 사회학 석사. 2002년 고려대 사회학 박사. 1978년 한국리서치 대표(현). 2007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현).



한국의 가장 큰 기업의 휴대전화 세계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그 주식 가격은 150만 원까지 상승하다가 110만 원대로 하락, 최근 120만 원을 간신히 넘었다. 한국의 가장 큰 자동차 회사는 강남 부지 매입에 10조 원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경쟁 그룹의 예상 입찰액보다 4조 원 이상이 많은 금액이다. 통 큰 결단이라고 하지만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 미국 법원에서 1억 달러의 벌금을 통지 받았고 벌금 이외 미국 정부에 지불해야 할 금액이 2억 달러가 넘을 것이란 소문이다. 서울시 강남 지역에 거대한 타운을 건설하고 있는 그룹을 제외하고 2014년에 한국에서 이들 대그룹의 눈에 띄는 투자도, 성장도, 제품도 보이지 않는다. 11월 들어서는 우울한 소식들뿐이다. 어디에서도 한국 대기업의 성장에 관한 소식을 접하기 어렵다.

한국 5대 그룹의 경제 영향력은 50%를 넘는다. 숫자만이 아니다. 필자가 일하는 회사의 매출액 중에서도 5대 그룹으로부터 수주 받는 금액이 30%가 넘는다. 5대 그룹에 부품을 공급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만 개의 중견기업과 소기업의 사장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 대그룹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불안하다. 아, 내년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중견기업인 우리 회사는 어디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할까. 성장은 아니라도 생존이라도 해야 할 텐데 비빌 곳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에 무엇을 먹고살지…. 대기업으로부터 발주 받는 금액이 떨어지면 큰일인데, 늘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줄 것 같아. 어디에서 줄어드는 매출을 채울 수 있을까. 불가능해. 그룹을 대신해 우리에게 일감을 줄 기업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그룹의 영향은 동네 골목의 작은 음식점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대그룹의 성장이 부진하면 중견기업과 소기업의 매출이 떨어지고 회사는 사원들에게 지급하던 모든 비용을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 그들은 비싼 고깃집이나 횟집에서의 회식은 생각하기 어렵다. 점심으로 7000원짜리 갈비탕을 먹다가 5000원짜리 칼국수를 먹는다.

그래도 돌파구를,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오늘부터 간부 사원들과 ‘커스터머 저니(customer journey)’를 떠나자. 근사한 용어를 갖다 붙여야 사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하는 말이지, 거의 구걸하러 다니는 영업 행각을 시작해야 한다.

한 팀당 한 달에 한 개의 목표 신규 고객을 정하고 모든 사적인 인맥을 동원해 면담 약속을 받고 우리 회사가 그래도 조금 차별적 우월성을 갖고 있는 제품을 그들에게 설명하자. 대기업이 아니라도 좋다. 중견기업에 그들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을 제안하자. 그보다 더 큰 가치를 약속하고 계약하면서 중견기업의 시장을 뚫어야 한다. 가능할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계단의 처음과 끝을 보지 마라. 그냥 한 발자국을 내디뎌라”고 했다. 따라해 보자. 중견기업끼리의 동맹을 맺어보자. 조금 덜 받고 그 대신 조금 더 일하자. 제품의 생산원가를 줄일 수 없으니 사원들과 힘을 합해 시간외 근무라도 더 하자. 당분간 수당 지급을 유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망하지는 말자. 조금 더 가난해질 뿐이다. 모두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