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받던 ‘봉지 빵’…프랜차이즈 사업 한계 드러나자 대안으로 부상

[비즈니스 포커스] 삼립식품, SPC그룹의 새 성장 축으로 부활
최근 외식 업계에서 ‘백조’ 대우를 받는 곳이 있다. ‘호빵’으로 잘 알려진 삼립식품이다. 식품주에서 올 한 해 가장 많이 오른 주식 중 하나가 됐다. 삼립식품의 주가는 10월 30일 17만1000원이다. 연초 대비 3배 가까이 올랐다. 2002년 이후 10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주가는 2012년 1만 원대에서 상승해 올 들어 폭등했다.

‘호빵의 계절’이 왔기 때문일까. 그 배경엔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이 있다. 허 회장은 ‘제빵왕’ 별칭이 붙을 만큼 빵 하나로 제빵 그룹을 일궈 냈다. 그리고 이제 제과·제빵의 명가를 넘어 종합 식품 기업 비전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삼립식품을 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의지에서 그룹 체질을 바꾸고 있다. 주가가 폭등한 배경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 백운목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프랜차이즈 규제와 베이커리 매장 포화로 파리크라상(파리바게뜨)의 국내 성장이 주춤하면서 삼립식품이 그룹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SPC그룹 성장 축이 삼립식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 연초 대비 3배 가까이 올라
삼립식품은 양산 빵 기업으로 분류된다. 호빵·크림빵·단팥빵 등 ‘봉지 빵’을 생각하면 된다. 의외의 히트 작품도 많다. 버거킹과 롯데리아 모두 삼립의 햄버거 번을 쓰고 있다. 샌드 아이크림의 효시 ‘아시나요’와 전통의 ‘쭈쭈바’도 삼립에서 만든다. 이 밖에 육가공품·유제품·면류 등을 생산하고 있어 종합 식품 회사에 필요한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SPC에 삼립식품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선 기업의 모태다. 1945년 고(故)허창성 명예회장이 세운 상미당이 삼립식품의 전신으로, 허 명예회장이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또한 종합 식품 회사로 크는 데 가장 적합한 선택지였다. 비알코리아는 미국 배스킨라비스와의 합작 법인으로 그룹 성장 동력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모체이면서 여러 식품군으로 다각화할 수 있는 계열사로 삼립이 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이기도 하다.

70년 봉지 빵 외길을 걸어 온 삼립식품이지만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백조’로 불리는 데는 한때 ‘미운오리’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에서는 파리바게뜨에 밀려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제과·제빵의 고급화를 추구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는 동안 파리바게뜨에 쏟아진 관심에 비하면 봉지 빵을 만드는 삼립식품이 받은 관심은 미미하다. 그룹 내에서도 주력은 파리바게뜨와 비알코리아 쪽에 가까웠다.

SPC그룹으로서는 힘겹게 지켜낸 가업(家業)이다. ‘호호 분다’는 의미에서 지은 ‘호빵’ 이름이 고유명사가 될 정도로 하루 160만 개씩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 삼립식품은 재계 순위 30위권에 들기도 했지만 2세 경영에 들어서며 큰 위기를 겪었다.

삼립식품은 본래 허 명예회장의 큰아들인 허영선 씨가 물려받아 운영했다. 차남인 허영인 회장은 삼립식품의 10분의 1 규모인 샤니를 맡았다. 하지만 삼립식품은 음료 사업, 유선방송, 개발 사업 등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한데다 장기 불황까지 겹쳐 1997년 부도로 법정 관리에 들어섰다. 리조트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이랜드그룹이 인수한 렉싱턴호텔 등이 이 당시 삼립식품이 투자한 곳이다. 결국 삼립식품은 어음 3억 원을 막지 못해 부도 처리됐고 5년여에 걸친 법정 관리 기간 회사는 적자에 허덕였다.

무너지는 듯한 가업은 작은 아들에 의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됐다. 샤니를 물려받은 허영인 회장은 이후 빵에만 집중하며 사세를 키워 나갔다. 1980년대 중반 파리바게뜨를 시작하고 비알코리아(배스킨라빈스·던킨도너츠)·파리크라상을 설립한 허 회장은 2002년 삼립식품을 인수했다. 당시 한국경영사학회에서는 힘겹게 가업을 이어 나갔다는 의미에서 ‘효 경영’이라는 논문집을 쓰기도 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삼립식품, SPC그룹의 새 성장 축으로 부활
이쯤 되면 허영선 전 회장의 거취도 궁금해진다. 허 전 회장은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삼립식품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다. 경기고, 서울대, 미국 보스턴대 출신의 엘리트로 당초 사업보다 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후 교육 업계에 몸담은 것으로 알려진다. 형제간 불화는 없었을까. 업계 관계자는 “SPC그룹의 대형 행사 때 형제가 나란히 앉아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현재 삼립식품의 주요 주주는 파리크라상(40.7%)·허영인(9.3%)·허진수(허 회장 큰아들, 11.5%)·허희수(허 회장 작은아들, 11.4%) 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도 후 다시 찾은 가업
정통성은 되찾았지만 실적에선 여전히 합격점을 받기 어려웠다. 삼립식품과 샤니는 양산 빵 시장의 양대 산맥이었다. 하지만 ‘사시사철 캐릭터 빵’의 샤니가 ‘겨울 한철 호빵’의 삼립식품보다 앞섰다. 시장점유율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2010년 삼립식품의 시장점유율은 29.5%인 반면 샤니는 51%를 기록했다. 삼립식품은 2005년 이후 5년간 당기순이익이 뒷걸음질했다. 매출액은 성장했지만 경쟁 심화로 영업이익률은 2008년부터 꾸준히 낮아졌다. 2007년 7% 영업이익률은 2010년 2%를 기록했다.

SPC그룹은 2011년 삼립식품과 샤니의 통합을 추진했다. 당시 합병이 오히려 ‘승자의 덫’이 될 것이란 지적에서 ‘샤니’파와 ‘삼립’파로 나뉘어 통합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 삼립식품이 샤니의 영업과 제조 부문을 양수하는 형태로 양사가 합병됐다. 샤니는 브랜드만 남게 됐다.

39년 만에 두 회사가 합쳐지면서 사실상 소매점 대량생산 빵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점하고 있다. 그리고 굴곡 속에서도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던 삼림식품은 가장 화려한 시절을 목전에 두고 있다. 현재 사업 영역을 크게 제빵, 식품 소재, 식품 유통으로 구분하고 자회사를 통해 식품 소재와 식품 유통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제빵 시장만 놓고 보면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없지만 SPC그룹은 식자재 유통 및 원료 제조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제빵 이외에도 식품 소재 회사 인수를 통해 수직 계열화를 달성하고 SPC그룹의 제조·유통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포트폴리오다. 식품 소재는 밀가루·계란·육가공을 파리바게뜨 등에 납품하는 사업이다. 밀다원을 계열사로 보유해 연간 1200억 원의 매출, 10%의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고 지난해 106억 원을 투자해 육가공 업체인 알프스식품을 사들였다.

삼립식품은 합병 이후 중복 사업의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을 통해 그룹의 성장성을 보강하고 있다.

특히 올해 7월 식품 유통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삼립지에프에스를 설립했다. 유진호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향후 SPC그룹이 해외 사업을 강화할 경우 삼립지에프에스가 해외 식자재 유통까지 담당하며 고속 성장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SPC그룹이 국내 프랜차이즈 사업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해외 진출을 통한 성장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원자재·구매·유통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는 그림이다.

삼립식품은 지난해 식품 업체로서는 마의 수치인 매출 1조 원을 넘어서며 그룹 매출의 25%를 담당했다. 허 회장은 올해 초 비전 선포식을 열고 “삼립식품을 2020년까지 매출 4조 원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날개 단 삼립식품이 어디까지 날아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