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중국서 건너와 묻혀 있다 TV 타고 부활, 7만 원대 명품까지 인기

[트렌드] ‘휴대 필수’ 셀카봉…두 달 새 판매 100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촬영하는 것을 ‘셀카(self camera)’라고 한다. 필름 카메라 대신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디지털 카메라보다 더 가벼운 휴대전화에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셀카는 휴대전화 사용자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서 멈출 줄 알았던 셀카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셀카봉’의 등장 덕분이다.

셀카봉은 이름 그대로 셀카를 찍기 편하게 도와주는 봉이다. 낚싯대처럼 생겨 평소엔 휴대하기 편하게 짧은 형태로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늘리면 약 1m까지 늘어난다. 봉 끝부분에 휴대전화 거치대가 달려 있어 휴대전화를 고정하고 찍으면 된다.

마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지던 셀카봉은 TV 프로그램을 통해 전파를 타며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됐다. 지난 6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스위스에 놀러간 노홍철 씨가 자신의 모습과 자연 풍광을 함께 담기 위해 셀카봉을 사용했다. 8월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유희열 씨가, 같은 달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이국주 씨가 들고 나오며 주목 받았다.

이현구 네오픽스코리아 대표는 “지난 5~6월 셀카봉을 한 달에 200~300대 정도 판매했는데 TV에 나온 뒤인 8~9월에는 한 달에 2만 대씩 판매돼 셀카봉 수익만 매달 1억 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두 달 만에 판매량이 100배 급증한 것이다.

셀카봉이 받는 오해가 있다. 첫째, ‘셀카봉은 한국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것이다. 셀카봉의 유래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셀카봉의 시초는 분명하지 않아도 중국에서 국내로 건너온 것은 확실하다. 손동환 아이폰조이 신사가로수점 대표는 “중국인 관광객이 들고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 시장에서 물건 가격을 흥정할 때 셀카봉을 쭉 뽑아 물건을 가리키며 물어보고 나중에 그 봉으로 셀카도 찍는 것을 보고 국내로 들여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셀카봉에 정품은 따로 없다
국내에 선도적으로 들여왔던 이현구 대표는 “2010년 말쯤 중국에서 열린 휴대전화 액세서리 관련 쇼(show)에 참가했다가 셀카봉을 처음 봤다”며 “그때는 반응이 좋지 않아 묻히는 듯했는데 올해 초 정식으로 수입한 뒤 마침 TV 전파를 타며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둘째, 정품이 따로 있고 중국에서 만든 것은 대부분이 짝퉁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이름을 내건 업체에서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셀카봉도 있다. 그러나 셀카봉은 정식 업체가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의 여러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정품’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손동환 대표는 “심지어 TV 뉴스에 나온 제품이 정품이라며 찾아달라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셀카봉이 인기를 끌면서 길거리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손 대표의 아이폰조이 신사가로수점도 원래 아이폰 수리 전문점이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 셀카봉을 팔지 않느냐는 문의를 많이 받았다. 결국 중국 판매처에서 직접 들여오기 시작했다.

홍대앞·신촌·이대부터 강남 신사동·잠실까지 일반 휴대전화 액세서리 판매점에서 대부분이 5000원 선의 셀카봉을 판매하고 있다. 신촌의 한 판매가게의 김정훈 씨는 “보통 호기심에 가볍게 구입하는 이가 많아 비싸면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1일부터 모든 세트 구매 고객들을 대상으로 셀카봉을 3000원에 특가 판매했던 롯데리아는 하루 만에 4만여 개를 판매했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이 셀카봉의 주요 선택 조건으로 꼽힌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경주에 놀러갔던 김수빈 씨는 “친구들끼리 놀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찍어 달라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샀다”며 “놀러 온 사람들이 너도나도 다 들고 있어 왠지 사고 싶었고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쓸까 싶어 저렴한 것으로 골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셀카봉의 유행이 지속되면서 점차 기능을 장착한 셀카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명품 셀카봉’으로 불리는 엑서리스의 ‘빅유샷’, 소니의 ‘VCT-AMP1’, 시산의 ‘셀카포드’ 등이다. 이들의 가격대는 최소 2만 원부터 7만 원까지다.

명품 셀카봉은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좋다. 봉이 튼튼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장착하는 부분이 쉽게 돌아가지 않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반적인 셀카봉은 찍으려고 하는 순간 휴대전화의 무게 때문에 봉이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휴대전화 거치대 부분에 신경을 써 휴대전화가 떨어질 위험이 전혀 없다.

오래 쓰기 위해 4만 원대의 셀카봉을 구입한 이진아 씨는 “튼튼해서 휴대전화가 혹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꺼내 들면 신기한 듯 바라봐 괜히 으쓱해진다”고 말했다. 가격을 조금이라도 더 낮추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공동 구매하기도 한다.

이렇듯 셀카봉을 오래 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셀카를 찍기 위한 기능 외에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휴대전화 렌즈가 바깥으로 향하게 셀카봉의 윗부분을 돌려 손으로 직접 들었을 때는 찍기 어려웠던 높이와 각도에서 찍을 수 있다. 또 멀리 있는 물체를 찍기도 편하다.


스테디캠·액션캠으로 활용되기도
튼튼한 셀카봉은 일안반사식 디지털 카메라(DSLR)도 고정할 수 있어 보다 높은 화질의 셀카를 얻을 수도 있다. 집에 있는 삼각대와 결합해 값비싼 카메라 장비처럼 사용할 수도 있고 동영상 촬영으로 스테디캠(steadicam)과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기능에 집중하면서 덩달아 다른 장비도 각광 받고 있다. 셀카봉처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휴대성이 좋은 장비들이다. 일명 ‘고릴라 거치대’로 불리는 미국 조비(JOBY)의 ‘고릴라포드 그립타이트’는 다리를 자유롭게 굽혀 자전거 운전대 등에 달고 촬영할 수 있다. 이미 유사한 제품들이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비용을 좀 더 투자해 액션 캠(action cam)을 살 수도 있다. 잘 찾아보면 ‘나비 스퀘어(Nabi Square) 고화질(HD)’처럼 10만 원대의 저렴한 액션 캠도 있다. 액션 캠은 보통 헬멧이나 팔, 자전거 등에 부착해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작고 가볍다. 이 때문에 셀카봉에 장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 셀카봉의 판매에 따라 수요가 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10월 1~13일까지 액션 캠 판매량이 전월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셀카봉의 폭발적인 수요는 현재 사회의 분위기가 뒷받침한다. 1인 문화 시대·개인화 시대이며 동시에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러한 문화와 셀카봉의 특성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 대표는 “셀카봉의 수요는 셀카봉 자체가 아니라 셀카를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요구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셀카봉을 잠깐 유행할 아이템으로 보지 않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어 내 발전시키거나 다음 아이템을 개발한다면 열기를 이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돋보기
‘오래 쓰는 셀카봉’ 사는 팁

셀카봉을 살 때는 되도록 직접 가서 사는 편이 좋다. 불량 제품이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판매자에게 부탁해 제품을 꺼내 고장이 없는지 살펴봐야 불량에 대비할 수 있다.

거치대 휴대전화의 안전을 생각할 때 셀카봉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바로 거치대다. 휴대전화를 잘 고정해 주는지, 휴대전화에 상처가 날 위험이 없는지 등을 잘 살펴야 한다. 거치대가 불량이면 촬영 중에 휴대전화가 떨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봉 봉 부분이 너무 잘 돌아가도 문제다. 휴대전화를 장착했을 때 휴대전화의 무게 때문에 봉이 돌아가면 촬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봉을 길게 폈다 접었다 할 때 힘을 줘야 할 만큼 다소 빡빡해야 봉이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리모컨 셀카봉을 편리하게 쓰기 위해 리모컨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리모컨을 이용하려면 블루투스 페어링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때 휴대전화의 배터리 소모량이 크다. 블루투스의 끊김 현상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오히려 타이머나 음성 촬영 기능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