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연구자 떠나고 이미지 실추…더 많은 혁신·시장 확보 기회도 사라져

[테크 트렌드] 청색 LED 발명 홀대, 니치아 化가 잃은 것
우리가 보는 세상과 앞마당에서 뛰어노는 개가 보는 세상은 다를까. 그렇다. 사람의 눈이 보는 빛의 영역과 다른 동물이 볼 수 있는 빛의 범위는 다르다. 우리는 특정 주파수 대역,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가시광선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가시광선에 속하는 빛을 차례대로 배치하면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가 된다. 이 빛을 모두 합하면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마찬가지로 아무 색깔이 없는 빛이 되고 이것을 백색광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모든 색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색이 필요할까. 이런 색을 원색이라고 부르고 빛은 빨간색·초록색·파란색이 있으면 모든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색을 빛의 삼원색이라고 부른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자외선
왜 하필 세 가지의 색일까. 좀 더 간단하게 두 개의 색으로 모든 색을 표시할 수는 없을까. 아니면 보다 많은 원색을 활용하면 더 많은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지는 않을까. ‘3’이라는 숫자의 비밀은 눈 속에 있다. 눈에는 색깔을 구별하는 원추세포라는 것이 있다. 원추세포는 종류에 따라 어떤 색깔의 빛에 반응하는지 달라지는데, 우리 눈에는 세 종류의 원추세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원추세포는 각각 빨강·초록·파랑을 구별한다. 즉 더 많은 색상을 사용해 빛을 만들어 내더라도 우리 눈은 결국 세 개의 원색으로 모든 색깔을 해석해 내기 때문에 더 많은 숫자의 원색은 의미가 없다.

그러면 가시광선 이외의 빛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무지개의 빨간색과 보라색 바깥쪽에도 빛은 존재한다. 다만 가시광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1800년 영국의 과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존 허셜은 무지개의 색깔 중 어떤 빛이 물체의 온도를 가장 높게 올리는지 실험했는데,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았던 빨간색 바로 옆의 온도가 가장 높게 올라갔다. 그다음 해에는 보라색 바깥 영역이 물체의 색을 검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독일의 화학자 J. W. 리터가 발견한다. 즉 단지 우리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무지개 바깥에도 빛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 붙인 것이 빨간색의 바깥에 있는 적외선과 보라색 바깥의 자외선이다. 온도를 높이는 적외선은 주로 건조·난방 등에 쓰이고 리모컨에도 쓰이고 있다(최초의 리모컨은 적외선이 아닌 가시광선을 사용했다). 자외선은 주로 살균 작용에 활용되며 피부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적외선과 자외선 이외에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된 X선과 TV·라디오·휴대전화 통신에 활용되는 다양한 빛(전자기파)이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어떤 동물들은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보기도 한다. 리모컨의 버튼을 누른 상태로 디지털 카메라 촬영을 한다면 리모컨에서 나오는 적외선이 찍힌 것을 볼 수도 있다.

올해 노벨물리학상은 빛의 삼원색을 완성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이미 태양은 빛의 삼원색을 모두 지구의 인류에게 제공해 총천연색의 세상이 존재하게 만들었다. 텔레비전 역시 삼원색을 구현하는 브라운관 컬러 TV의 시대를 연 지 오래됐다. 하지만 반도체로부터 레이저 빛을 만들어 내 브라운관이 아닌 평판 컬러 TV를 만드는 것은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선 가장 만들기 쉬운 것은 빨간색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개발됐고 가격 또한 저렴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레이저 포인터의 대부분이 빨간색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파란색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전광판이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이 두 가지 색을 섞은 노란색으로만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파란색 광원이 개발된 이후에는 총천연색이 전광판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삼원색이 모두 없어서 흰색 글씨조차 표현하지 못했던 기차역 전광판에 기차 종류를 나타내는 여러 색깔의 글씨체가 등장했다. 물론 파란색의 레이저 포인터도 시장에 나오고 있다.

필자가 학생 시절, 양산 전 단계의 블루 레이저 포인터를 기업체 연구실에서 학교에 가져와 보여주던 교수와 그걸 보기 위해 건물 1층의 복도에 모여든 많은 물리학과 학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음악을 저장하는 콤팩트디스크(CD)는 빨간 레이저를 쓰지만 보다 많은 정보를 저장해 고화질 영화도 쉽게 담을 수 있는 블루레이는 파란색의 레이저를 사용한다. 심지어 그 이름조차 파란 레이저의 개발과 사용이 가능해진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블루레이’라는 대단히 직관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이제 삼원색을 통해 백색광을 만들 수 있게 돼 집과 직장의 조명 시장에서 전기를 잡아먹는 하마였던 백열전구를 완전히 몰아내고 심지어 형광등조차 발광다이오드(LED)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최근 만들어진 비행기를 타면 예전과 다른 느낌의 실내 공간인데, LED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깔과 밝기의 조명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원추세포가 인식하는 삼원색이 갖는 파장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레이저를 모두 개발한 건 아니다. 특히 초록색은 아직 원추세포가 인식하는 원색의 파장과 상이한데, 눈이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인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과 정확히 똑같은 색깔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나카무라 슈지에게 보상금 20만 원 지급
하지만 푸른빛은 과학기술인에게 또 다른 측면의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나카무라 슈지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원래 청색 레이저 개발 당시 일본의 중소기업인 니치아화학의 연구원이었다. 정말 놀랄만한 세기의 발명을 했고 이후 작은 기업에 불과하던 니치아화학은 일약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개발의 주역인 나카무라 연구원에게 돌아온 보상은 불과 20만 원에 불과했다. 원래 한국에선 직무상 이뤄진 종업원의 발명은 회사의 소유가 된다. 하지만 이 경우 회사는 이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하는데, 수십조 원 이상의 시장을 만들어 낸 발명에 대한 보상으로 20만 원은 너무나도 적은 액수였다. 특히 당시 일본은 직무상 이뤄진 발명의 특허는 개인의 소유로 규정하고 있었고 최근 회사로의 특허권 귀속을 규정한 법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당시 사원의 발명은 회사 소유라고 주장하며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니치아화학, 즉 과학기술인과 기술에 대한 제대로 되지 못한 평가와 대우에 실망한 나카무라 연구원은 대학교수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니치아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수천억 원 수준의 보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화해와 합의를 통해 80여억 원의 보상을 받아냈다. 니치아화학은 일순간 특허 기여자에 대한 보상을 적게 해 비용을 절약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나카무라라는 우수한 연구자를 잃었고 또한 회사의 이미지 실추로 우수한 연구자들이 몰려들지 않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최첨단의 발명을 통한 제품 개발과 시장 확보를 할 기회를 놓쳤을지 모른다.

필자가 공부했던 물리학과에는 아주 다양한 레이저가 있었다. 그리고 레이저가 있는 방에 들어갔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허리를 숙이지 않는 것이었다. 주로 레이저가 허리 정도의 높이에 자리해 있는데, 자칫 눈에 레이저가 들어가면 실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저 포인터가 대중화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레이저를 비추는 위험한 장난을 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실험실에 있는 레이저는 휴대용 레이저 포인터보다 훨씬 높은 출력을 자랑한다. 종이를 갖다 대는 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리는 레이저도 쉽게 볼 수 있는데, 특히 가시광선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의 빛을 쏘는 레이저가 많기 때문에 레이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허리를 숙였다가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지난 주 나카무라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기업 문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나카무라 교수의 방문은 자외선 LED의 개발과 관련된 것이었다. 가시광선이 아니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전등·신호등·텔레비전에는 사용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외선의 살균 기능을 저소득층 국가의 물 소독에 활용할 수 있다. 최근 개발된 자외선 LED는 탄저균을 탐지하고 제거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레이저와 같은 놀라운 변화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헤서 다른 이들이 기술 개발과 혁신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출력 레이저에 시력을 상실하는 이상의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