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등 서비스 시장 규모가 더 커, 한국도 세계 사로잡는 상품 내놓을 때

[경영전략 트렌드] 행복을 파는 럭셔리 상품…체험형으로 진화
럭셔리 산업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경영대학원인 HEC 파리의 벵상 바스티엥 교수는 중국에서 강의를 하면서 사치, 즉 럭셔리(luxury)를 이렇게 해석한 바 있다. 사치(奢侈)라는 한자를 ‘클대(大)+놈자(者)+사람인(人)+많을다(多)’로 나누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크게 보이게 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중국에서 사치라는 말이 원래 이런 의도로 조합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프랑스 교수의 사치 설명은 매우 통찰력 있고 흥미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럭셔리는 자신의 상향 욕구를 채우고 남에게 과시도 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럭셔리를 추종하는 자신이 속물로 비쳐지는 것이 꺼림칙해 지나친 자랑을 자제하곤 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너무 알려진 브랜드나 모델보다 덜 알려진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한다. 또 로고가 매우 작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브랜드를 착용하거나 아주 일부 사람들끼리만 아는 희소 럭셔리 브랜드를 남몰래 즐기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럭셔리에 대해 대체적으로 복잡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한국에서 럭셔리 쇼핑 즐기는 중국인들
우리는 한국인의 럭셔리 열풍에 대해서는 비난의 소리를 높이지만 중국인들이 한국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럭셔리를 쓸다시피 구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대부분이 수입품인 럭셔리 유통에서 수익을 많이 내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도 럭셔리 대열에 드는 프리미엄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국산 럭셔리를 많이 생산해 판매한다면 럭셔리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결국 럭셔리를 만들고 판매해 나오는 수익과 럭셔리를 사는 데 드는 지출 중 어떤 쪽이 큰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자본주의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독일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베르너 좀바르트는 자신의 저서 ‘사치와 자본주의(Luxury and Capitalism)’에서 현대적 개념의 럭셔리 시장은 중세 말기에 왕들과 부유한 성직자들이 집을 장식하기 위해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품 외에도 14~15세기 피렌체에는 가죽을 다루는 무두장이, 금세공사, 실크 제조자 같은 길드 장인이나 도공들이 있었고 안트베르펜에는 다이아몬드 세공사들이 있어 부유층에게 납품하곤 했다. 17세기에 들어와 루이 14세 시대에 콜베르 재정총감은 왕과 귀족들을 위한 럭셔리 제조를 위해 장인들을 적극 후원했고, 19세기에 들어와 프랑스에서는 황제와 부르주아지 계층을 위한 향수, 여행용 트렁크, 시계들이 속속 등장했다.

17~18세기 일본 에도 시대에 귀족과 그 가족에게 천과 의상을 제공하는 포목점들로 미쓰코시·다카시마야가 생겼는데, 이 포목점들은 나중에 각각 같은 이름의 고급 백화점으로 발전했다.

20세기 들어 럭셔리는 의상은 물론이고 라이터·펜·스카프·벨트·선글라스 같은 액세서리로도 퍼졌고 자동차·비행기·요트 같은 교통 및 레저 수단, 오디오·휴대전화 같은 정보기술(IT) 제품, 스파·호텔 같은 숙박 공간, 대학 같은 교육기관 등 럭셔리 대상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국가 경제에서 보면 럭셔리는 어떤 기능을 할까. 우선 럭셔리는 소비 수요를 증가시킨다. 럭셔리에 대한 갈망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에게나 모두 크지만 실질 구매력은 부자가 훨씬 크다. 이 구매 금액은 럭셔리를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에도 흘러가지만 중간 유통 업체나 직원, 수송 업체로도 흘러가 경제 전체의 수요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경기가 불투명해 투자 대상이 마땅하지 않아 돈이 잠자고 있을 때에는 부자들의 럭셔리 구매가 경제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된다.

둘째, 럭셔리는 제품 생산의 품격 향상에 도움이 된다. 럭셔리는 장인 정신을 발휘해 최고의 품질을 구현, 사람들이 가지고 싶도록 한다. 따라서 그 장인은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그리고 창의적으로 발휘해 제품을 만들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 제품은 단지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 예술품의 경지로 올라가게 된다. 즉 럭셔리는 양(量)과 질(質)의 단계를 넘어 상(像)과 격(格)을 올려주는 차원 높은 상품이 된다. 럭셔리는 이성적으로 완벽한 프리미엄보다 감성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상품이다.

셋째, 한때의 럭셔리는 세월이 지나며 점차 대중이 향유하는 일반품이 변모한다. 한때 시계는 매우 비싼 럭셔리였지만 이제는 일반인들이 얼마든지 부담 없이 살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비누와 15~16세기 후추와 향신료는 진짜 럭셔리였다가 그 후 비슷한 보급화 과정을 거쳤다. 중국 청나라 시대에 상층 여성만 입을 수 있던 치파오 의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여성에게로 확산됐다. 이처럼 일부 상층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럭셔리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이 늘고 가격이 낮아져 많은 사람들이 필수품처럼 애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럭셔리는 시간을 두고 시장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


불황 속에도 급성장…세계시장 290조 원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전 세계 럭셔리 시장 규모는 지난 20년 동안 급성장해 2013년에 2170억 유로, 즉 290조 원에 이른다. 세계경제 전체는 엎치락뒤치락 부침을 거듭하지만 럭셔리의 성장률은 다른 그 어떤 업종에 비해서도 높다. 이 중 한국은 83억 유로, 즉 11조1000억 원으로 전 세계 럭셔리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이 럭셔리 소비 시장에서는 이렇게 큰손인데 비해 생산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다. 어떻게 하면 럭셔리 산업을 국가 경제에 좀 더 기여하도록 할 수 있을까.

첫째,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럭셔리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캐나다 출신 경제학자인 존 갈브레이스는 일찍이 1960년대에 프랑스의 럭셔리 산업 진흥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프랑스는 엉뚱한 산업을 개발하려고 하지 말고 프랑스가 전통적으로 잘하던 럭셔리 산업을 더욱 개발하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통찰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언급에 자극을 받아 현재 LVMH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역사와 전통은 유구하지만 현대화되지 못한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들을 1980년대부터 매우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하기 시작했다. 이들 전통 브랜드에 현대적인 경영을 접목해 현재 세계 최대, 최고의 럭셔리그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가 1987년에 인수한 LVMH는 현재 60여 개의 럭셔리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최근 들어 외국의 프리미엄·럭셔리급 회사를 일부 인수하고 있지만 국내의 그런 회사나 장인을 발굴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둘째, 럭셔리 제품 외에 서비스에 눈을 돌려야 한다. 럭셔리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우선 형체가 있는 럭셔리를 보자. 의류·가방·구두·보석·시계·액세서리·필기구·와인·샴페인·고급증류주·향수·화장품·도자기·가구·자동차·전자기기·오디오·컴퓨터·카메라 등 매우 다양하다. 형체가 있지만 서비스가 매우 중요한 호텔·항공·여행·레스토랑·골프장·신용카드·통신·옥션 등도 있다. 과거에는 형체가 있는 럭셔리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점차 형체가 없는 서비스로 럭셔리의 범위가 넓혀져 가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럭셔리 시장을 전통 럭셔리, 자동차 럭셔리, 체험 럭셔리로 나눈 바 있다. 물론 여기 전통 럭셔리에는 의류·가죽제품·보석·시계·향수·화장품·식기가 포함된다. 체험 럭셔리에는 사파리·스파·클럽·딜럭스병실·요트, 전용 스위트룸 비행기, 헬리콥터 스노보딩, 어드벤처 여행, 요리, 미술품 경매가 모두 들어간다. 세 그룹 중에 시장 규모는 어느 쪽이 클까. 전통 럭셔리가 가장 작고 그다음이 자동차 럭셔리이고 체험 럭셔리 시장 규모가 자동차 럭셔리의 2배 이상으로 크다. 앞으로 체험 럭셔리의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럭셔리를 주제로 한 창작물도 기대할만
셋째, 전 세계 부자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상품을 만들고 유도해야 한다. 2008년에 몰아닥친 미국발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이후 예상을 뒤엎고 경기가 다소 회복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장기 침체론이 거론되고 있다. 세계경제가 만성적 수요 부족과 투자 감소, 실업률 증가에 따라 구조적·장기적으로 침체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찍이 제국주의가 선진국의 과잉생산 때문에 비롯됐다며 존 홉슨은 과소 소비설을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경기 침체를 피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의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여기서 부자는 한국 부자가 아니라 오히려 외국의 슈퍼리치를 포함한 부자를 말한다.
[경영전략 트렌드] 행복을 파는 럭셔리 상품…체험형으로 진화
이를 위해 한국 기업과 장인들이 럭셔리 제품과 서비스를 창의적으로 개발해 이들이 우리 상품을 구매하도록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 럭셔리 구매를 하면 가계 부채를 늘려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지만 능력 있는 부자들이 럭셔리 구매를 하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18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인 버나드 맨더빌은 저서 ‘꿀벌의 우화’를 통해 부자의 사치 때문에 경제가 돌아간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부자가 지나치게 근검절약하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아 서민들의 경제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설파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소스타인 베블렌처럼 부자들의 지나친 호사로 인해 계급 간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막아야 할 것이다.

넷째, 럭셔리를 다룬 소설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사회를 샅샅이 해부할 목적으로 자연주의 소설을 많이 쓴 에밀 졸라가 있다. 그가 1883년에 쓴 ‘여인들의 기쁨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 소설은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프랑스 제2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쓰였다. 지금도 파리에 있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를 모델로 했다. 백화점의 젊은 여성 직원 드니즈 보뒤와 백화점 사장 옥타브 무레가 등장해 내부인이 시각에서 백화점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는데 사랑 이야기도 곁들여 읽는 즐거움도 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다양한 마케팅 기법들이 이 소설에 속속 등장한다. 한국이 전 세계 럭셔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럭셔리를 주제로 한 걸출한 창작품들이 이제 만개할 때가 됐다.

과연 무엇이 럭셔리일까. 사람에 따라 정의는 다양하다. 이미 있는 것을 아주 세련되게 만들어 구매할 때 돈값이 아깝지 않고 나중에 자신이 구매했던 가격이 생각나지 않아도 행복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탁월한 럭셔리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안겨 주기 위해 한국 기업들은 정말 많은 고민과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