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 펀드의 전설’ 제임스 사이먼스 국내 첫 강연…미래 예측은 위기 씨앗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시장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모든 변수들이 통제된 상태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다릅니다. 주식시장은 긴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법칙은 그때그때 발생하는 변수에 의해 조금씩 계속해 달라집니다. 그 법칙을 찾자. 이것이 르네상스테크놀로지를 창업하면서 세운 ‘기본 원리’입니다.”(2014 서울 세계 수학자대회 대중 강연에서)지난 8월 13일 ‘퀀트 펀드의 전설’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명예회장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4 서울 세계 수학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이먼스 회장은 이날 수학자이자 펀드매니저로, 자선사업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이먼스 회장의 재산은 125억 달러(약 12조8500억 원)로 파악된다. 포브스 기준 세계 88위의 부자다. 그의 재산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재산과 엇비슷한 규모다.
그는 어떻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을까. 르네상스테크놀로지라는 헤지 펀드 회사를 통해서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대표 펀드인 ‘메달리온’의 수익률은 ‘경악’할 만하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1982년 설립됐다. 설립 후부터 그가 은퇴한 2009년까지 이 회사의 연평균 수익률은 30%에 달한다. 또 1988년부터 1999년까지 12년 동안의 누적 수익률은 2500%나 된다. 특히 금융 위기가 시작된 2007년에 73.7%의 수익률을 올렸고 본격적인 위기 진행기인 2008년에도 80%의 수익률을 거두는 괴력을 선보였다.
30년간 매년 30% 수익률 기록
사이먼스 회장이 성공한 이유는 그가 가진 수학적 지식 때문이다. 그는 세계적 부호이자 펀드매니저인 동시에 세계적인 수학자다. 사이먼스 회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수학과를 졸업한 뒤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로 임명됐다. 당시의 나이가 불과 23세다. 이후 국가정보국 산하의 연구소에서 당시 신생 학문인 ‘암호학’을 연구한 후 다시 뉴욕 스토니브룩 주립대 학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이 시절 사이먼스 회장은 중국계 미국인 수학자 천성선 박사와 함께 ‘천·사이먼스 이론’을 발표하며 미국수학협회가 주는 ‘오즈월드베블런상’을 받기도 했다. 이 이론은 훗날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이 세계 7대 수학 난제인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 데 기본 원리가 된다.
그는 1976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불현듯 월가로 진출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학’을 가지고 말이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가 투자하는 구체적 방식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사이먼스 회장 역시 “구체적인 투자 방법은 ‘영업 비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앞서 기본 원리를 스스로 밝혔듯이 이 회사가 투자하는 방법은 이번 방한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사이먼스 회장의 말을 종합해 보면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투자법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주식 투자자들은 미래를 예상해 투자한다. 하지만 사이먼스 회장은 이는 “틀렸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때문에 환율·주가는 폭등과 폭락을 하지만 우리가 운영하는 펀드는 계속해 견실한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실제로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2008년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 당시 막대한 수익을 거뒀다. 당시 금융 위기로 퀀트 펀드를 비롯한 수많은 금융 파생 상품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이먼스 회장은 이에 대해 “실패한 파생 상품들은 과거의 데이터를 통해 공식을 만들어야지 미래에 대해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자 은행들은 부동산 가격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는데 이는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즉 미래에도 부동산 가격이 계속 그대로일 것이라는 ‘예측’이 금융 위기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과거의 데이터로 ‘모델’을 만드는 데 집중
사이먼스 회장은 어떻게 현재의 가격을 평가할까. 사이먼스 회장이 방한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아마도 ‘모델(model)’일 것이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는 경제·경영 전공자보다 수학·물리학·통계학 등을 전공한 사람을 우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직원 300여 명 중 100여 명이 이공계 박사들이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펀드매니저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꾸준히 여러 자산과 주식 가격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다. 그 연구를 바탕으로 모델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모델들을 종합해 하나의 큰 투자 지표를 만들어 내 투자한다. 실제로 그는 “펀드를 운용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많은 과거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것”이라며 “분석을 통해 반복되는 공식을 찾고 그 공식에 맞춰 펀드를 운용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은 시장의 가격 변화에 계속해 신호를 보낸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매니저들은 ‘미래에 대한 가정’을 하지 않고 이 모델에 따라 계속해 쇼트(매도)와 롱(매수) 주문을 낸다. 그는 “하나의 종목, 분야에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짧은 시간에 많은 거래를 진행하는 것도 수익을 거두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공식에 맞춰 거래를 많이 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의미다.
사이먼스 회장은 2010년 은퇴 후부터 기초과학 분야에 거액을 지원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처음 DNA를 발견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 발견이 이제 의학계에 가장 중요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인지 ‘주가를 전망하지 않는’ 사이먼스 회장은 여러 업종 중 헬스 케어 사업을 이례적으로 ‘유망 산업’으로 꼽았다. 그는 “헬스 케어 분야는 계속해 클 것이다. 사람들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계속 돈을 지불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제임스 사이먼스의 5가지 성공 비결
모든 사람들이 제임스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 명예회장과 같은 방식으로 천문학적 돈을 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여든을 앞둔 노신사가 말하는 ‘내 성공 비결’은 분명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대중 강연을 통해 청중에게 다섯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이 피하거나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하라. 그는 어릴 적 동네 의사로부터 ‘너는 똑똑하니 커서 돈을 많이 버는 의사가 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은 수학이었다. 분명 의사도 좋은 직업이지만 만약 그의 말을 듣고 의사가 됐다면 지금과 같은 부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남들과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일을 찾아야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둘째, 최고의 인재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어라. 사이먼스 회장은 결코 혼자 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줄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조건은 있다. 그 파트너가 하는 생각이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찾고 그와 함께 일해야 한다.
셋째,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을 하라. 그는 강연 내내 ‘수학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수학은 단순한 ‘산수’가 아니었다. 사이먼스 회장은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꾸준히 ‘모델’이라는 단어를 썼다. 즉 세상의 만물에서 어떤 원리를 찾아내는 일이 그에게는 ‘수학’이었다는 의미다. 그는 그 원리를 하나하나 찾아내는 데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이 즐거움이 그가 성공할 수 있는 원천이 됐다.
넷째, 포기하지 마라. 사이먼스 회장은 “열네 살 때 아르바이트로 창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너무 못했다”며 “당시 가게 주인 부부는 물건도 정리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수학자가 되겠느냐고 비웃었지만 나는 수학이 정말 좋았고 결국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다섯째, 행운을 기원하라.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 그는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오늘 나는 행운이 있는가’를 자문한다고 한다. 수학자에게 ‘운이 좋은가’란 질문은 ‘오늘 성공할 확률이 높은가’란 질문과도 같다. 끊임없이 행운을 갈구하고 그 행운을 얻기 위해, 즉 행운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