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따라 발전량 들쑥날쑥…정밀 일기예보 통해 사전 대응·관리 가능해져

[테크 트렌드] 출력 불안한 태양광발전, 빅 데이터서 해법
2004년 1월 미 항공우주국(NASA)의 신형 화성 탐사선이 화성의 황막한 붉은 대지 위에 착륙했다. 이윽고 충격에서 보호하는 에어백이 꺼지고 천천히 펴진 탐사선 내부에서는 막 알에서 깨어난 한 마리 아기 새처럼 날개를 쭉 뻗는 기계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NASA가 야심차게 기획한 바퀴 6개짜리 무인 탐사 로봇 ‘스피릿(Spirit) 로버’였다. 그리고 로버가 펼친 것은 사실 날개가 아니라 태양전지 패널이었다. 최대 140W의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이 태양전지 패널은 스피릿 로버가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하고 지구와 교신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에너지를 공급할 핵심 요소였다.


재생에너지의 아킬레스건 ‘간헐성’
이후 스피릿 로버는 평균 시속 0.1km도 안 될 정도로 느릿느릿 움직이면서도 우직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스피릿 로버와의 교신이 끊긴 것은 2010년 3월 22일로, 착륙 이후 2269일 뒤였다. 당초에 단 3개월 정도면 작동을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에 비하면 무려 25배 이상 임무를 수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스피릿 로버는 임무를 더 수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보내져 화성 반대편에 착륙한 쌍둥이 로버 ‘오퍼튜니티(Opportunity)’는 심지어 아직까지 10년 넘게 활동 중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피릿 로버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태양전지 패널에서 발생했다. 붉은 행성 화성에 몰아치는 폭풍 때문에 흙먼지가 잔뜩 쌓여 태양빛을 가로막아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빠진 것이다.

스피릿 로버의 기대 이상의 끈질긴 수명, 그러나 결국 멈춰 설 수밖에 없던 현실은 굳이 먼 화성이 아니더라도 이 지구상에서 태양광발전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가 겪고 있는 문제를 축소해 놓은 듯하다. 태양광발전·풍력발전 등 대표적인 친환경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의 가장 큰 단점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외부 요인, 즉 날씨와 바람, 설치 환경 등에 따라 출력이 들쑥날쑥하고 통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당연히 태양광발전은 태양빛이 내리쬘 때만, 풍력발전은 바람이 불 때만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조건이 맞아도 야외에 설치한 설비가 오염되거나 야생동물이 충돌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전력 생산은 떨어지게 된다. 이를 흔히 간헐성(intermittency)이라고 하는데, 이미 생활 구석구석에서 많은 전기를 소모하며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는 현대 문명에는 큰 문제가 된다.

전기는 특히 항상 공급(발전량)이 수요(사용량)보다 높게 유지돼야 한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전력 계통이 과부하로 차례차례 망가지면서 대정전에 빠지는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멎어 태양광·풍력발전량이 확 떨어지면 그만큼 다른 발전소에서 발전을 더 해서 이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긴급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발전소는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를 때는 화력발전이나 양수발전 같은 것들인데, 이들은 발전 원가가 높아 구입비용이 비싸다. 또한 바람은 대개 낮보다 밤에 많이 부는데, 이런 비수기 시간대에 풍력으로 만든 전기는 쓰이지 못하고 버려질 위험도 크다. 결국 제아무리 태양빛과 바람이 공짜라지만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비용에다 이런 대체 전력 조달 비용까지 합치면 태양광·풍력발전의 채산성을 맞추기는 매우 어렵다.

간헐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가장 생각하기 쉬운 것은 이차전지를 이용해 불안정한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꾸준히 꺼내 쓰는 것이다. 이는 여름 장마철에 집중되는 강수량을 저수지에 가둬 놓았다가 갈수기를 포함한 1년 내내 꾸준히 이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스피릿 로버도 7kg이 넘는 리튬이온 전지 2개를 달고 다니면서 낮에는 충전해 놓은 전기를 이용했다. 이러한 전지를 대규모로 연결한 에너지 저수지를 ESS(energy storage system)라고 하는데, 최근까지도 관련 기술의 발전이 여전히 더디고 원가도 떨어지지 않아 경제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혁신을 선도해 온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여기에서도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지난 2월 테슬라는 그간 쌓아 온 기술을 집약해 무려 연간 35GWh의 생산능력을 갖춘 이차전지 공장을 2017년까지 세우겠다는 ‘기가팩토리(Gigafactory)’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당연히 이 막대한 공급량을 전기자동차가 다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자들과 대규모 ESS를 구축하는 사업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이미 미국 최대의 태양광발전 기업 솔라시티(SolarCity)는 테슬라와 협력해 발전 시설과 리튬 이온 전지 기반 ESS, 스마트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통합해 상품화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기 위해 아예 관련 특허를 개방하겠다는 발표까지 한 테슬라의 배포를 보면 ESS 분야도 수년 내 비약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주 등에서 ESS 구입을 의무화하는 등 시장 조성을 강력하게 지원하는 정책을 펴는 것도 청신호를 주고 있다.

하지만 간헐성 극복을 위한 기술은 ESS가 전부는 아니다. 간헐성의 문제는 발전량의 증감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크다. 설령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언제 얼마만큼 늘고 줄지 정확히 안다면 그에 맞춰 대비하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구름이 많아져 태양광발전소의 발전량이 떨어질 것을 며칠 전에 알 수 있다면 그만큼 미리 다른 발전소를 예약해 놓으면 된다.


풍력단지에 센서망 깔고 정보 수집
관건은 일기예보의 정확성이다. 지금도 일기예보를 하고 있지 않나. 하겠지만 커다란 시·도급의 넓은 지역에서 몇 시간 단위의 예보로는 어림없다. 정확히 발전소가 자리한 지역에 분초 단위로 구름의 양과 풍속, 풍향이 어떻게 바뀔지 알아야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런 정밀 일기예보는 기존 기상청의 정보 서비스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는 발전 회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 산학연 협동 프로젝트를 통해 정교한 예측 모델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다양한 빅 데이터 수집과 분석 기술이다. 일례로 미국 콜로라도 주의 대표적 발전 업체인 엑셀에너지(Xcel Energy)는 자사의 풍력발전 단지 곳곳과 각 터빈에 실시간으로 풍향·풍속·기온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센서 망을 깔아 놓고 이를 5분 간격으로 전송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변 지역의 기상관측소, 기상 레이더, 기상위성에서도 계속 구름 상태에 대한 데이터를 쏟아낸다. 이들 다양한 기상 빅 데이터가 집결하는 곳은 바로 인근 볼더에 자리한 국립대기연구센터(NCAR)다. 이곳에서는 여러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동원해 이 데이터를 처리하고 앞으로 1주일 뒤까지 각 풍력발전 단지의 풍향·풍속 예보를 내놓는다.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빅 데이터를 반영해 계속 이 예보를 갱신해 나간다.

미 국립대기연구센터는 이미 2009년부터 이러한 정교한 예측 모델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매년 그 정확도를 꾸준히 높여 왔다. 그 결과 2013년에 갱신된 최신 모델의 예측 정확도는 기존의 70%대에서 90%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이러한 예측 자료가 경영 계획에 접목되기 시작하면서 엑셀에너지는 2013년에만 약 2000만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애초에 엑셀에너지는 간헐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라는 정책에 대해 이는 요금 상승과 소비자 부담 확대의 원인이 된다며 강력히 저항했지만 이처럼 효과적인 예측 시스템의 지원과 정교한 발전 계획 수립이 가능해지자 긍정적인 태도로 돌아섰다고 한다.

앞으로 이러한 정교한 빅 데이터 분석과 결합된 정확한 관리 시스템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이와 같은 실시간 빅 데이터 수집 시스템이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에나 적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사물인터넷 기술이 보급되면서 가정 등 개별 건물의 소규모 태양광발전기에 이르기까지 이런 종합 관리 시스템에 편입될 전망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와 전력 계통의 유기적인 통합을 더욱 촉진, 진정한 스마트 그리드로 나아가고 더욱 효율적이고 저렴하며 깨끗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