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부족” 맹비난…금지 법안 중간선거 쟁점으로 부상

[GLOBAL_미국] 본사 이전용 해외 M&A에 발끈한 재무장관
미국 정치권과 재계에 ‘기업의 애국심’ 논란이 일고 있다. 발단은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주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다. 루 장관은 “기업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본사를 이전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을 금지하는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애국심”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세금 도피용 M&A를 비애국적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올 들어 미국 제약 회사들이 잇따라 외국 기업과의 M&A에 나서고 있다. 밀란은 7월 14일 네덜란드의 다국적 제약 회사 애벗래버러토리즈의 해외사업부를 53억 달러에 사들였다. 겉모습은 사업 확장을 위한 M&A이지만 속내는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본사를 세율이 낮은 네덜란드로 옮기기 위한 것이다. 미국 제약사 애브비는 영국 제약사 샤이어를 540억 달러에 인수했고 메드트로닉도 아일랜드 제약사 코비디엔을 429억 달러에 사들였다. 대형 제약 업체 화이자도 영국 경쟁사 아스트라제네카 인수로 본부를 이전하려고 계획 중이다.

존 웨이든 미 상원 은행위원장은 최근 세금 도피용 M&A 청문회에서 “법인세를 회피하기 위해 M&A를 계획하는 기업이 25개에 달한다”며 “미국 경제의 손실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본사 이전으로 10년간 200억 달러의 세수 구멍이 생길 전망이다.

미국에서 세금 회피용 M&A가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은 높은 세율 때문이다. 미국 법인세율은 35%(주정부 세금을 포함하면 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유럽의 평균 2배에 이르고 아일랜드 12.5%의 세 배에 달한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국 기업의 해외 수익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지만 미국은 35%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수차례 낡고 복잡한 세제를 단순화하고 법인세율을 낮추겠다고 장담해 왔다. 하지만 그 방향을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견이 상충되면서 의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 한 번 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민주당에서 세제 개혁을 주도해 온 막스 바크수 상원 의원은 최근 중국 대사를 맡고 떠났다. 오바마 정부의 세제 개혁이 물 건너갔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M&A를 통한 본사 이전이라는 방법으로 제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절세 노린 제약사들 잇단 유럽행
루 장관이 기업의 애국심을 거론하며 본사 이전용 M&A를 금지하는 법안을 촉구하자 공화당과 재계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면적인 세제 개혁”이라고 맞서고 있다. 높은 세율을 고치지 않고 기업들만 벌주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애국심은 미국이 투자와 일자리의 종착역이 될 수 있도록 세제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계도 “경영진이 애국심을 발휘해 M&A를 하지 않더라도 이익 극대화를 요구하는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도피 M&A 논란은 11월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측은 기업들의 비애국적 행위에 대한 징벌적 조치를 강조함으로써 표심을 다독이고 있다. 반면 공화당 측은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에서 가장 징벌적인 세율을 고수해 일자리를 해외로 내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