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리지’ 의존 대신 은퇴 자산 관리·해외 진출·특화 등 수익 다변화가 살길

[여의도의 눈물_전문가 좌담회] “증권사들 복제 버리고 특화 나설 때”
좌담 참석자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전 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


한국 증권업 위기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한국증권학회장을 지낸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를 역임한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이 좌담회에 참석했다.

이들은 “모든 증권사가 위탁 중개(브로커리지) 수익에 의존하는 천편일률적 사업 모델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은퇴 종합 자산 관리, 해외 진출, 특정 산업 및 특정 지역에 특화된 영업 등 수익 구조 다변화를 제시했다. 국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내 국민연금의 위상과 중요성도 강조했다.


증권 산업의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장범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이하 장 교수) 브로커리지 중심의 수익 구조가 큰 문제입니다. 국내 증권사는 1993년 40여 개에서 2013년 말 기준 62개로 20년간 외형적으론 꽤 성장했어요. 회사의 수도 많아졌고 자산 규모도 커졌어요. 하지만 수익성은 거기에 못 미치고 있어요. 증권사들의 수익 구조 중 브로커리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는 상황에서 최근 주식 거래량이 급격히 줄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입니다. 게다가 증권사들끼리 10년째 지속하고 있는 수수료 출혈경쟁도 영향이 커요. 브로커리지 수수료율은 2000년 0.21%에서 2007년 0.15%까지 떨어졌고 작년엔 0.092%로 0.01%도 안 되는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입니다.
[여의도의 눈물_전문가 좌담회] “증권사들 복제 버리고 특화 나설 때”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이하 조 연구위원) 주식거래가 줄어드는 것은 개인들이 투자할 만한 여유 자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면서 가계소득 증가 폭이 하락하고 있고 1000조 원이 넘는 가계 부채 때문에 개인 자금이 증시로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죠. 게다가 증권업이 활기를 찾으려면 시장이 어느 정도 변동성을 가져야 하는데, 코스피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박스권에 머무르고 있어요. 그러니 주식거래에 흥미를 느낄 리가 없지요. 또한 2012년 이후 도입된 파생 상품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로 파생 상품 거래가 급감하면서 이에 연계된 현물 주식시장의 거래도 감소되고 있어요. 국내 파생상품 거래량은 2011년 39억3000만 건에서 지난해 8억2000만 건으로 79%나 줄었죠. 한국거래소의 파생 상품 거래량 순위도 2011년 세계 1위에서 2년 만인 지난해에는 9위로 밀려났습니다.


주식거래량 감소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입니까.
장 교수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거래소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감했던 거래량이 살아나면서 작년 기준으로 시가총액도 대부분을 회복했어요. 버블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죠. 그런데 한국 시장만 유독 거래량이 늘지 않고 있어요. 시가총액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국내 증시 거래 대금 위축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요. 코스피 일평균 거래 대금은 2011년 7조6707억 원으로 고점을 찍었는데 작년엔 4조4343억 원으로 3년째 내리막입니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이하 정 대표) 위탁매매 사업에만 치중한 채 동일한 수익 모델을 내세운 증권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국내 증시에 새로운 기업이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원인입니다. 상장하고 커 가는 다이내믹한 기업이 없어요. 그러니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도 없죠. 금융의 개념을 중개 기관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침체의 원인이죠.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는데 증권업계는 예전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기업의 활약 뒤에 서서 과실을 기다리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죠. 적극적으로 변화해 기업을 함께 키워 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증권업은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증권업 불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조 연구위원
사업 구조를 다양화해야 합니다. 신규 수익원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는 것은 저성장·저금리·고령화 추세에 맞춘 은퇴 자산 관리 서비스입니다. 노후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상품 개발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고성장 산업 사회에선 금융사들이 자금 조달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했지만 고령사회에선 연금 자산 운용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거예요. 연금 등 자산 관리는 철저히 수요자 중심이고 고객들의 필요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금융 상품 종합 판매 플랫폼, 독립 투자 자문업자(IFA) 도입도 필요할 것으로 봅니다. 이와 함께 시장에 매력적인 주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투자하고 싶고 주식을 사고 싶은 신규 기업을 끊임없이 상장해야 해요. 이를 통해 돈이 따라 들어와야 합니다. 증권업의 주요 수익 구조라고 할 수 있는 브로커리지·투자은행(IB)·자산 관리 등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정 대표 해외 진출도 좋은 방안입니다. 단순한 해외 진출보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연계해 외국 기관을 국내로 끌어들인 후 함께 해외로 진출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증권에 진출 경험이 없는 중국 자본을 국내 증권사의 지분 투자로 유도하는 것이죠. 중국 내의 파트너가 생긴다면 중국 비즈니스가 활발해질 것이고 고객의 기반도 넓어지겠죠. 한국과 중국의 증권사 간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교차 판매할 수도 있고 교차 상장, 한중 기관 간의 상품 결합 등 수익 모델도 융합할 수 있습니다. 이젠 플랫폼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정부의 규제 완화도 중요합니다. 증권업 활성화를 위해 어떤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합니까.
장 교수 우선 최근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은 맞는 방향입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을 글로벌 수준으로 완화하기로 한 것이나 자산 운용사들의 NCR 규제 폐지를 검토한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자산 운용사는 모든 자산을 수탁 회사에 맡기고 자산을 운용하는데, 그동안 NCR 비율을 맞추려고 쓸데없이 자본금을 많이 가져가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NCR 규제 완화로 금융 투자회사들의 해외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증권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 기업공개(IPO) 시장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간 IPO에 참여함으로써 자본금이 감소하면 NCR가 낮아질 것을 우려한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았던 경향이 있었죠. 향후 금융 투자업에 대한 더욱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규제를 완화할 때는 20~30년 후 우리가 어떤 금융 투자회사를 갖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참여정부 때 서울을 동북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던 계획도 다시 복원해야 합니다.
[여의도의 눈물_전문가 좌담회] “증권사들 복제 버리고 특화 나설 때”
대형 증권사가 차별화를 가지려면 해외 업무 등 투자은행(IB)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장 교수 사실 지난해에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은행 업무 확대와 기업금융 업무 진출 등을 통해 업무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자금 동원 능력과 네트워크는 충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정부에선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많이 장려하는 분위기인데 우리의 IB는 많이 낙후돼 있죠. IB 업무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자산 운용업입니다. 현재 증권사들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국내 자산 운용업 발전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국내 최대 기관인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내부 운용 정책 가운데 국내 증권사의 발전을 저해하거나 해외에 비해 한국 증권사들에만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시점입니다.
[여의도의 눈물_전문가 좌담회] “증권사들 복제 버리고 특화 나설 때”
조 연구위원 국민연금이 단순히 국내 금융 투자업 발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부분은 경계해야겠지만 현재 적립금 427조 원의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의 결정 하나하나가 국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만큼 이러한 영향을 고려한 신중한 정책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증권 사태 등으로 증권업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것도 큰 문제죠.
장 교수 금융 투자 업계의 고질적 문제점은 고객의 충성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증권사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영향을 많이 끼쳤지요. 이 부분에 대해 업계는 통렬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투자자도 자신의 투자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투자자 보호 대신 균형 감각이 필요합니다. 법률이나 의료 서비스 등에 마땅한 금액을 지불하듯이 증권사의 금융 서비스에도 합당한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의식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금융 투자업 발전에 대해 제언해 주신다면.
장 교수 제조업에 걸맞은 금융 투자회사가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및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국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해외에서의 성공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죠. 최근 규제 완화의 근본적인 지향점은 국내 금융 투자회사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구조화 상품 설계를 포함해 국내 금융회사의 신상품 개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관투자가들의 위험관리 능력이 동반될 때 국내 금융회사가 만드는 신상품 소화도 원활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정 대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증권 산업이 발전하려면 인수·합병(M&A)을 증권사의 전업 업무로 지정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모든 업계가 M&A를 취급하다 보니 지나친 경쟁으로 돈이 되지 않고 전문가 양성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M&A를 증권사 등 일부 기관의 고유 업무로 함으로써 전문성과 인력 양성을 유도할 필요가 있죠. 이와 함께 증권사의 새로운 업무로 부각되고 있는 사모 펀드도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것입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려면 그로스 캐피털(성장 자본)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이나 M&A를 전문으로 하는 바이아웃 펀드(경영권 포함 인수)에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또한 시장점유율보다 각자 개성 있는 수익 모델 차별화 전략이 나와야 합니다.

조 연구위원 현재의 어려운 상황은 증권업과 증권회사가 그동안 미뤄 왔던 변화를 이룰 수 있고 또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 위기 상황이 반전의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