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침해 때만 군사개입”…50억 달러 규모 대테러 기금도 조성하기로

방한 이틀째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콜리어필드에서 주한미군병사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방한 이틀째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미군기지 내 콜리어필드에서 주한미군병사를 대상으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장 좋은 망치(군사력)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일에 다 망치를 쓸 필요는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월 28일(현지 시간)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이다. 집권 후반기 대외 정책 기조가 함축돼 있는 발언이다. ‘세계 경찰국가’로서 무력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일종의 ‘오바마 독트린’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선 미국이 여전히 세계를 리드하고 앞으로도 그럴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미국이 국제사회를 항상 이끌어야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이끄느냐”라면서 “군사행동이 리더십을 실현할 주된 요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개입과 관련해 미국의 핵심 이익이 위협 받거나 동맹의 안보가 위험에 처해진다면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제 문제에서 군사력에 의존하는 것은 순진하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아 내전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대해 미국이 적극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공화당의 비판을 반박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대외 정책의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상 종료된 가운데 러시아의 위협, 중국의 부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긴장, 중동의 끊임없는 테러와 지속적인 불안 등 새로운 국제 정세가 맞물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연장선에서 “독자적인 대규모 군사력 사용보다 테러 세력 타격 등 제한적인 군사개입과 국제 협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안보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 국제사회 이슈에 대해선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행동 대신 동맹국들과 ‘집단행동’을 취하고 외교와 협상, 제재와 국제법 준수, 필요하다면 다국적 군사개입 등의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동·북아프리카 등의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50억 달러의 대테러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며 의회에 예산을 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자금으로 테러 집단들과 싸우고 있는 동맹 국가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미 동맹국 실망할 것” 비판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독트린’을 미국 대외 정책의 두 가지 흐름인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절충이라고 분석했다. 일방주의적 군사개입을 자제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경찰국가’로서의 영향력과 리더십을 잃지 않도록 새로운 형태의 개입을 시도하겠다는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 ‘군사 옵션’을 배제한다는 기존 방침을 확인하자 ‘신고립주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 군사개입을 포기한 이후 아사드 정권과 반군 간의 내전이 격화돼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비판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실망하거나 불안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불개입 또는 개입의 정도를 급격히 낮추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선택해야 할 정책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