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주식에 전략적 투자… 지분 가치 1조 원 넘어

[비즈니스 포커스] 삼성 덕에 정몽진 KCC 회장이 ‘대박’
최근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개편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삼성그룹주가 상한가를 기록하는 가운데 KCC와 정몽진 회장이 수혜자로 떠올랐다. KCC가 지배 구조 개편의 핵심 계열사로 꼽히는 삼성에버랜드의 2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몽진 회장의 KCC 보유 지분 가치가 급증해 5월 23일 종가를 기준으로 1조912억 원에 달하게 됐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정 회장은 이날 처음으로 ‘주식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고 주식 부호 순위도 17위를 기록했다.

현재 최대 주주인 정 회장(17.76%)과 특수관계인은 KCC 지분을 38.5% 보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의 부친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 보유 지분 가치는 연초 2481억 원에서 3105억 원으로, 정몽익 KCC 사장의 지분 가치는 4247억 원에서 5415억 원으로 불었다. 정몽열 KCC건설 사장의 지분 가치도 2860억 원에서 3393억 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KCC 측은 “이렇게 될 걸 알고 투자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입원 이후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의 핵심 비상장 계열사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그룹 지배 구조 개편이 앞으로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에버랜드의 지주사 전환 등의 시나리오가 나오는 중이다. 지금도 순환 출자의 핵심 고리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에버랜드는 지배 구조 개편 때에도 중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처럼 삼성 지배 구조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는 에버랜드의 2대 주주가 현대가(家)의 KCC라는 점이 다소 의아하다. 두 그룹이 경쟁 관계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손잡고 협력 관계를 맺은 역사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에버랜드 주식, 주당 182만 원에 사들여
KCC가 삼성에버랜드의 2대 주주가 된 배경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12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5.64% 가운데 17%에 해당하는 42만5000주를 7739억 원에 매입했다. 매각자인 삼성카드가 책정한 장부가 213만 원 대비 10% 할인된 가격으로 주당 182만 원에 사들인 것이다.

당시 삼성카드는 금융 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 따라 2012년 4월까지 에버랜드 지분을 25.64%에서 5% 밑으로 낮춰야 했다. 에버랜드가 지배 구조 상단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삼성 계열사가 에버랜드 지분을 살 경우 새로운 순환 출자 고리가 생길 수 있었다.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를 제외하고는 삼성 계열사가 20% 가까운 지분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5%를 남겨둔 나머지 지분을 3% 정도는 개인 투자자에게, 17%는 외부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하기로 했고 적임자를 물색하던 중 KCC에 블록 딜 방식으로 지분을 넘기게 된 것이다.

국부 펀드, 사모 펀드 등 다수의 투자자가 에버랜드 지분 인수를 희망했지만 KCC가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거래가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매각 주간사인 JP모건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몽진 회장과 임석정 JP모건한국 대표는 깊은 인연이 있다. 1960년생 동갑내기인 데다 고려대와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동문이기도 하다. JP모건은 지난해 7월 KCC가 만도 지분을 처분할 때 주간사를 맡았고 지난해 KCC가 지분을 보유한 만도의 상장과 2009년 KCC의 교환 사채 발행도 주간했다. 에버랜드 지분 매입도 JP모건이 KCC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1조 원 정도의 대형 거래인 만큼 결국은 오너들끼리의 교감도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건희 회장도 조지워싱턴대 출신이다. 또 정몽진 회장과 동생인 정몽익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으로서는 KCC가 한 번에 1조 원의 거액을 지급할 여력이 있는 우호적 투자자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분석이다.

KCC 관계자는 지분 매입 배경을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경영권 행사나 직접 경영 참여 없이 순수 투자 목적의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에버랜드 주주총회에는 KCC의 재무부서 담당자가 참석하는데, 결의 사항에 대해 찬반 의사를 표명하는 일반적인 수준 이외에 삼성 그룹 경영에 간여하거나 참여하는 상황은 아니다. 설령 이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버랜드 지분의 46.03%를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 삼성카드 등 5개 계열사가 지닌 22.12%의 지분까지 감안한다면 2대 주주인 KCC가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그 대신 KCC는 사업적 시너지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사업적 시너지를 바라본 것이다. KCC는 건자재·유리·염화비닐수지(PVC) 제품 등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종합 건자재 업체로 매출의 85%가 페인트를 포함한 건축자재에서 발생하고 있다. 범현대그룹의 각 사업 구성에 연결돼 있어 상당 부분을 그룹에 의존하고 있다. 사업 측면에서 보면 건설과 화학제품 등의 삼성그룹 관련 매출이 늘어나는 계기를 기대할 수 있다.


위기 시 삼성이 KCC의 ‘백기사’ 될까
하지만 실제 2년 반이 흐른 현재 사업적 협력 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기대와 달리 사업 협력이 더디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고 있는 상태다. KCC 관계자는 “아직까지 뚜렷한 사업적 시너지는 없는 상황”이라며 “비즈니스 측면에서 받은 이익은 없다”고 말했다. 에버랜드가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실익이나 실질적인 수혜를 보지 못한 상황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삼성 덕에 정몽진 KCC 회장이 ‘대박’
물론 핵심 카드는 남아 있다. 에버랜드의 상장 가능성과 이 과정에서 거둘 시세 차익이다. 상장 시점을 넘긴다면 계속 보유할 가능성도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KCC가 현금 흐름이 좋기 때문에 굳이 팔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과의 포괄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박 연구원은 “당시 에버랜드 영업이익이 2000억 원에 그쳤고 기업 가치가 4조5000억 원 수준이었지만 중·장기적으로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며 “지분을 사고 싶어 하는 곳은 많았을 테지만 내부에 관여하지 않는 주주를 찾기 위해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고 알음알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별도의 옵션이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삼성에버랜드 지분 인수는 단순 지분 투자이기 때문에 확실한 수익률이 보장돼야 하는데, 계약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KCC 측은 “이면 계약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시장에선 삼성이 KCC 측에 에버랜드 지분을 재매입하거나 현대가의 경영권 분쟁이 있을 경우 백기사로 나서는 등의 약속을 따로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KCC는 ‘숨은 투자 고수’로 알려져 있다. 주식 투자도 에버랜드가 처음은 아니다. 정 회장은 2000년 회장 취임 이후 2003년부터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당시 2560억 원의 단순 수익증권을 팔아 종잣돈을 마련하고 현대중공업·현대자동차 등 범현대가 계열사 지분을 사들였다. 투자는 대성공을 거둬 현대중공업의 경우 10배 이상 차익을 올렸다. 현대엘리베이터 투자에서도 단기간에 10배 수익을 올렸고 만도 지분 투자를 통해서는 3년 6개월 만에 200% 정도 투자 수익을 거뒀다. 박 연구원은 “주식시장에서 투자를 제일 잘하는 기업인 것 같다”며 “기관투자가도 10배씩 수익률이 나기 쉽지 않은데 펀드매니저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KCC는 지금도 에버랜드 외에 현대중공업·현대차·현대산업·현대상선·벽산 등에 투자한 상태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KCC 투자 자산의 가치는 에버랜드 1조1960억 원을 비롯해 2조2470억 원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정몽진 회장의 야심작이 삼성에버랜드 투자다. 업계에선 정몽진 회장이 ‘가문’보다 ‘투자’를 앞세운 결과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매입이라고 본다.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 지분을 정리한 자금(8767억 원)으로 에버랜드 지분 17%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당시 범현대가에서는 “깜짝 놀랐다”는 반응까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회장은 당시 이 자금을 M&A에 투입할 계획이었지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업적 시너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순수 투자 면에서 현재 대박을 터뜨린 셈이며 또 한 번의 대박 기회가 남아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