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금융지주회사에 금융그룹 내 자회사 손실을 강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더라도 예금 가입자를 제외하고 유가증권 보유자에게만 손실을 부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산책] 금융지주사의 리스크 관리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
1966년생. 1989년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2004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2012년 금융위원회 국제협력관. 2009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현).



최근 국내 금융지주회사 체제의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할 때 기대됐던 장점이 현실화되지 못한 데다 지배 구조의 불투명성으로 오히려 경영의 비효율성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올해 초 금융회사에서의 고객 정보 유출 사고 이후 정보 공유가 제한되면서 계열사 간 연계 영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 간 충돌에서와 같이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최고경영진 간 갈등과 대립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국내 금융지주회사는 금융 겸업화의 수단으로 지난 외환위기 이후 도입됐다. 2001년에 우리금융지주가 처음으로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총 13개의 금융지주회사가 영업 중이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재검토할 때 어떤 요인들을 고려해야 할까. 이를 위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금융 겸업화 규제 관련 국제 논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 겸업화는 하나의 금융회사(또는 금융그룹)가 은행·증권·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모두 취급할 수 있는 산업구조다.

금융 위기 이후 금융 겸업화 규제 논의가 제기된 이유는 부문 간 리스크 전이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원금을 보존해야 하는 보수적인 상업은행과 원금 손실도 감수하는 공격적인 투자은행 업무가 하나의 금융회사(또는 금융그룹)에서 동시에 수행되면서 투자은행 부문의 막대한 손실이 여타 부문으로 점염돼 시스템 리스크가 초래되고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는 문제 의식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금융 겸업화 규제는 겸업 자체를 제한하기보다 금융 겸업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겸업화 진전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완화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융 겸업화가 금융회사 수익 창출 및 경쟁력 제고에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대형화된 금융그룹의 일부가 부실화된다면 이를 납세자 부담이 수반되는 공적자금으로 구제(bail-out)하지 않고 금융지주회사의 주주 또는 채권자에게 손실을 직접 부담(bail-in)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 겸업화 규제가 국내 금융지주회사 시스템에 미치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금융지주회사의 재무적 역할, 특히 자회사가 부실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손실 흡수 능력을 확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회사 부실이 발생하면 상각 또는 출자 전환을 통해 손실을 흡수하는 목적으로 금융지주회사가 상당한 규모의 무담보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이를 보유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금융지주회사에 금융그룹 내 자회사 손실을 강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더라도 예금 가입자를 제외하고 유가증권 보유자에게만 손실을 부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사법부는 판례를 통해 예금 채권자와 유가증권 채권자를 차별 대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재검토할 때 투명한 지배 구조 개선 방안 이외에 추가적으로 금융지주회사의 재무적 역할, 특히 금융그룹 내 자회사의 부실에 따른 손실을 채권자에게 분담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