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실 파고다교육그룹 회장 인터뷰…“지금이라도 남편과 딸이 돌아오길 바랄 뿐”

[비즈니스 포커스] ‘잇단 고소’ 유명 교육 기업 內 갈등 진실은
부부가 거액의 재산을 놓고 이혼소송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부인은 ‘내 뒤를 캐고 다닌다’며 남편의 측근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혐의를 받는다.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는 남편이 경찰에 고소하며 수사가 시작된다. 살인 교사를 받았다는 부인의 운전사 자백까지 나온다. 부인은 ‘살인예비음모’라는 죄목으로 수사선상에 놓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운전사는 사기꾼이었고 살인 위협을 받았다는 남편의 측근은 옛 안기부(국정원)에서 근무하다가 비위 혐의로 파면된 전력이 있다. 더욱이 남편과는 육촌 형제간이다.

얽히고설킨 관계만큼이나 사건의 내용도 충격적이다. 이 정도면 웬만한 ‘막장 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한국 최대의 영어 교육 업체 수장이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인 박경실(59) 파고다교육그룹 회장의 사연이다.


살인예비음모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이혼소송을 걸어 온 이는 남편인 고인경(70) 전 회장이다. 연 매출 800억 원대 거대 교육 기업의 재산과 경영권을 둔 소송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데, 여기에 살인예비음모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지상에 오르내리면서 박 회장과 학원의 이미지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하지만 핵심 사안인 살인예비음모에 대해 경찰은 지난 5월 22일 ‘무혐의’ 의견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동안 박 회장은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칠까봐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무혐의 판정을 계기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절박한 심정을 직접 토로했다.

갈등의 핵심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재산 분할 등 이혼소송, 다른 하나는 살인예비음모다. 후자는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로 마무리되면서 한시름 놓은 상태. 하지만 이혼과 재산 분할 문제는 여전히 박 회장과 파고다교육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부부 사이인 박 회장과 고 전 회장 측의 공방을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파고다의 성장 과정을 이해하는 게 순서다. 이화여대 체육과 재학생이었던 박 회장이 고 전 회장을 처음 만난 건 1977년 여름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테니스 파트너 아르바이트 자리에 나갔다가 고 전 회장을 만나게 된 것. 당시 고 전 회장은 부인과의 극심한 불화로 별거 중인 상태였는데, 아들(1975년생)과 딸(1977년생) 남매를 데리고 나와 어렵게 생활하던 과외 선생님이었다. 부모의 불화로 후천성 자폐아였던 큰아들과 조산으로 몸이 약한 딸아이를 보며 박 회장은 결국 고 전 회장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집안의 반대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고 전 회장의 적극적인 구애와 딱한 아이들의 사정을 보며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과외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학원 경영에 나선 것도 결혼 후였다. 1980년 ‘종로외국어학원’을 부부가 동업하게 된 것. 동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박 회장의 결혼 전 혼수 자금 1000만 원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 500만 원이 창업 자금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시 두 사람 사이의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인 상태에서도 박 회장은 매일 학원에 출근해 상담·서무·회계, 심지어 청소 등 자금 관리와 경영관리를 총괄했다. 훗날 ‘파고다’라는 상호로 바뀐 것도 박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1991년에는 박 회장을 개인 사업자로 강남구 압구정동에 강남 지역 최초의 ‘강남 파고다학원’을 개원하기도 했다. 1993년에는 주식회사 ‘파고다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학원 최초의 법인화 역사를 썼다. 당시 주주 구성은 고 전 회장 45%, 박 회장 45%, 아들 5%, 막내딸 5%였다. 1996년 뜻하지 않은 일로 아들이 사망한 후에는 박 회장의 뜻대로 아들의 지분 전체를 고스란히 큰딸에게 넘겼다.

현재 파고다교육그룹은 연매출 800억 원대의 대형 법인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고 전 회장은 1992년 중성지혈증으로 쓰러진 후 건강상의 문제로 일선 경영을 사실상 부인에게 일임했다. 고 전 회장이 물러난 후 박 회장이 오늘날의 파고다를 키운 주역이라는 것은 업계에선 모두가 인정하는 내용이다. 고 전 회장은 이후 아들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고 학원의 대외 홍보를 위해 고산 등반이나 봉사 활동, 기부 활동 등에 주력해 왔다. 박 회장 역시 남편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큰딸 차별 대우 있을 수 없는 일”
아무 문제가 없던 부부 사이에 불화의 싹이 튼 것은 2005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부부와 큰딸이 살던 집에 막내딸 역시 유학을 마친 후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박 회장은 “전처소생의 큰딸이 받을 소외감을 염려해 오히려 막내딸을 역차별했을 정도”라고 말하지만 이때부터 큰딸은 극심한 소외감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급기야 2006년에는 큰딸이 함께 집을 나가기에 이른다.

고 전 회장은 결국 2012년 초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재산 분할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금이었다. 법인 재산을 개인 명의로 돌릴 경우 500억 원대의 세금 추징이 뒤따랐던 것. “양측이 절반씩 부담하자”는 고 전 회장 측의 제안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설령 세금을 모두 납부한다고 하더라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에서 자칫 공들여 쌓은 학원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큰딸이 주도한 이른바 ‘10억 횡령’ 고소 건도 합의를 깨뜨렸다. “이사회의 의결 없이 임의의 규정을 마련해 상여금을 지급했다”는 게 고 전 회장 측의 주장. 하지만 박 회장의 말은 다르다. 사기업의 상여금 내용을 법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 것. 또 대부분의 지분을 4명의 가족이 나눠 소유한 가족 기업의 특성상 이사회 개최 여부도 사실상 말이 안 된다는 게 박 회장 측의 말이다. 실제로 당시 회사 감사를 맡은 이는 고 전 회장의 친동생, 즉 박 회장의 시동생이었다. 박 회장 측은 횡령 건에 대한 유죄 판결이 2심에서 뒤엎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지분 문제도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고 전 회장은 소송을 통해 “1999년께 자신도 모르게 파고다아카데미 지분 중 20%가 두 딸들에게 이전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고 전 회장의 지분 중 20%를 두 딸에게 10%씩 이전한 것은 이혼소송이 벌어진 2012년으로부터 무려 14년 전의 일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고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당시 44세의 나이로 적극적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딸에게 공평하게 지분이 나눠진 사실만 봐도 “전처소생의 큰딸과 친자식인 막내딸을 차별 대우했다”는 고 전 회장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자회사 지분 문제도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파고다교육그룹은 모기업인 파고다아카데미를 축으로 주요 자회사는 파고다SCS·리드캔(건물·부동산 관리사)·BCA캐나다 등이다. 고 전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BCA를 제외한 나머지 자회사 지분을 박 회장과 막내딸이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이익이 나지 않는 자잘한 사업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자회사로 분리한 것이고 오히려 알토란같은 BCA 지분 80%를 큰딸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BCA는 캐나다의 공교육 시스템을 들여온 국제학교 개념의 학원으로,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소재지인 서초동 필지(160억 원)에 건물까지 보유하고 있다. 현재 큰딸은 자신의 지분을 임모 씨에게 넘긴 상태다. 임 씨가 50%, 고 전 회장이 40%, 박 회장이 10%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남의 기업이 된 셈이다.

한편 살인예비음모를 주장한 박 회장의 운전사 박모 씨의 정체도 충격적이다. 10년 넘게 거물급 정치인의 운전사였다던 그의 이력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다. 국회 경력증명서 역시 6개월 근무를 10년 6개월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 전 회장 측의 측근인 윤모 씨는 육사 출신에 국정원 엘리트 요원이었다. 그런 그가 파면된 사연도 놀랍다.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JMS(정명석) 신도였던 그가 정 씨의 수사를 사전에 흘린 것은 물론 그의 해외 도피를 도운 정황이 수사를 통해 발각됐던 것이다.

현재 고 전 회장은 모기업인 파고다아카데미의 부동산 자산만 분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산 분할 외에 횡령·배임·사문서위조 등 복잡한 고소 건들이 얽혀 있는데, “이혼소송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의도”라는 게 박 회장 측의 주장이다. 박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1300명의 교직원과 학원의 운명은 물론이고 한 가정의 아내와 두 딸의 엄마로서 지금이라도 남편과 딸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장진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