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취업 후진학이라는 목표가 생긴 수현 양은 전남여상으로 진학했다. 고교 생활을 허투루 보낼 수 없었기에 주말과 방학을 반납하고 자격증 취득과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 전공 공부에 매진했다. 3학년 1학기, 노력의 결실이 맺어졌다. 한국전력거래소에 합격한 것이다. 수현 양은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선택한 특성화고 진학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라고 말했다.
중3 학생들의 고등학교 선택 기준이 바뀌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특성화고 학생들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중학교 때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특성화고로 진학하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성적 부진은 물론 ‘문제아’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기도 했다. 일반고에 비해 대학 진학률도 낮고, 취업 역시 중소기업에 입·퇴사를 반복하는 수준이어서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까지 특성화고 입학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중학교에도 부는 ‘취업 바람’
하지만 2009년 정부에서 시행한 고졸 취업 장려정책에 힘입어 특성화고의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대기업·공기업·금융기업에서 고졸 출신들을 대거 채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졸업자들도 입사하기 어려운 유망 기업에 특성화고 출신들의 취업성공 사례가 늘어나면서 특성화고의 입지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고졸채용 수요가 확대되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해진 특성화고의 취업 바람이 중학교에까지 불고 있다.
중3이 되면 결정해야 할 고민거리가 바로 고등학교 선택이다. 어느 고등학교로 진학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꿈꾸는 장래 희망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중학교의 한 교사는 “2학기가 되면 주변 고등학교에서 학교 홍보를 위해 학교에 방문한다”며 “특성화고 출신 선배들이 학교에 찾아와 취업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면 중3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전했다. 그는 “어느 정도 성적이 되는 아이 중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는 어렵더라도 특성화고에 진학하면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며 “특성화고로 진학하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바로 취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원섭 숭실중 진로부장은 “예전에는 고등학교 선택이 대학 진학의 중요한 기준이 됐지만 최근에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 자신의 진로 방향을 선택하고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떤 분야에 적성이 맞는지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학부모들의 가이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특성화고 반대하는 학부모
특성화고를 졸업해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의 취업성공 스토리를 들어보면 파란만장하다. 중학생 때 성적이 나빠 특성화고에 진학했다가 고등학교 때 취업 준비에 주력해 성공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특성화고 진학을 결심한 후의 주변 반응이다.
중학생 때 성적이 중상위 이상인 학생들이 특성화고에 진학을 결심하면 주변의 반대와 부딪혀야 한다. 학부모의 반대가 가장 큰 요인이다. 아직도 일부 학부모들의 인식 속에는 대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특성화고 진학을 꺼리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에 사는 한 고등학생 학부모에게 고졸 취업에 대한 견해를 묻자 “부모가 대학을 나왔는데 자식이 대학을 안 나오는 건 말이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도 아이의 적성을 중시하기보다는 부모의 학벌만능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특성화고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는 데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송원섭 진로부장은 “아이의 진로를 위해 학부모들과 상담을 해보면 예전 인문계와 실업계의 구분을 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며 “이런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이 아이들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몇 해 전부터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고교 진학설명회를 여는 등 정확한 고등학교 정보제공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홍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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