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조건·평판 중국에도 밀려…학벌 중시·연공서열 문화도 바꿔야

[한국은 인재 전쟁 무방비] 삼성·LG 등 빼면 인재 전쟁에 무방비
코넬대에는 부부가 함께 교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이비리그 대학이지만 뉴욕시에서 자동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오지(?)에 있다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우수한 연구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부부 모두에게 교수직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연구 실적을 가진 교수 1명이 옮기면 그 교수가 가진 연구 역량뿐만 아니라 연구 실적도 같이 이동하기 때문에 학교나 학과의 순위가 높게 상승해 미국의 대학들은 인재 유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순위 경쟁이 치열해진 한국 대학 사회도 과거와 달리 40, 50대에 자리를 옮기는 교수들이 많아졌다.

국가 단위에서도 빌 게이츠와 같은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모든 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2년 초 영국의 경제 전문 조사 기관인 EIU는 인재 유치에 성공한 국가 순위를 발표했는데, 미국이 1위를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등이 모두 10위권에 들면서 북유럽 국가들이 주목을 받았다.


‘천인 계획’ 가동하는 중국
특히 면적은 한국의 4.5배, 인구는 900만 명인 스웨덴의 인재 유치 정책이 인상적이다. 높은 복지 수준을 지탱하기 위해 40%에 이르는 고율의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특급 해외 인재로 판명되면 소득세 부담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있다. 석사과정에 있는 외국인은 등록금을 내야 하지만 박사과정 학생은 면제된다. 또한 사이언스 시티(Science city)라는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산업 발전을 도모하면서 인재도 유치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공격적으로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해외 인재 유치가 선진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출신뿐만 아니라 국적에 관계없이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1994년 시작된 백인(百人) 계획은 과학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해외 인재를 초빙하는 사업인데, 중국과학원이 주관하는 이 계획을 통해 16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초빙됐다. 공산당 중앙조직부가 직접 관장하는 천인(千人) 계획은 해외 유명 대학의 교수 또는 기업체 전문가를 유치하는 제도인데, 2008년 시작돼 2000명이 넘는 전문가를 유치했다. 베이징·상하이 등 지역별로 해외에서 귀국하는 유학생들에게 최고 50만 위안(약 9000만 원)의 창업비와 임대 아파트가 지원되는데, 100만 명이 넘는 중국의 해외 유학생이 혜택을 받았다. 중국이 해외 인재 유치에 얼마나 적극적인지는 2012년 최고 권력자가 된 시진핑 국가 주석의 취임 후 첫 외빈 접견은 중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포항공대 교수 출신으로 베이징 교통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곽진호 수학과 교수 등) 외국인 전문가 20여 명이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의 해외 인재 유치 실적이나 경쟁력은 취약하다. 중국 동포를 포함한 70여 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 중 전문 인력은 5만여 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영어 강사 등을 제외한 고급 인력은 2만 명 수준이다.

2011년부터 전문가와 일정 재력을 갖춘 외국인에 대한 귀화 및 복수 국적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효과는 높지 않다.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선진국으로부터의 귀화자는 2010년까지 15명에서 20명 수준이었지만 2011년에는 스위스인 1명, 2012년에는 네덜란드인 1명으로 줄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해외 전문 인력 채용을 지원하는 골드카드의 발급 실적도 크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골드카드는 기술 경영, 나노, 디지털, 전자, 바이오, 수송 및 기계, 신소재, 정보기술(IT), 환경 및 에너지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기업들이 영입한 해외 인재들이 취업 비자를 쉽게 받도록 KOTRA가 발급해 주는 일종의 고용 추천서인데, 발급 요청 기업의 80%가 중소기업이다. 2011년 발급 실적은 343장으로, 2010년 650장의 절반 수준이었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해외 고급 인력 유인 지수는 10점 만점에 4.58점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 33위다. 노동 인력의 3분의 1이 외국인인 싱가포르가 8.13점으로 2위, 미국이 8.08점으로 3위, 이웃 중국이 5.83점으로 13위다. 2002년 기준으로 한국의 순위가 23위, 중국이 33위였는데 천인 계획 등 중국의 야심적인 해외 인재 유치 전략과 노력에 힘입어 역전 당한 것이다.

한국은 심각한 두뇌 유출을 겪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해외에 나간 한국 유학생은 29만 명, 귀국한 학생은 9만 명, 유학 수지 적자는 44억 달러(4조7760억 원)다.

지난 4월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정부의 글로벌 해외 인재 유치·활용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기업·대학·연구소의 외국인과 재외 동포 인재 유치에 대한 지원을 대폭적으로 강화하고 비자 발급 확대 등 제도를 개선해 2017년까지 해외 인재를 3만7000여 명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선 푸대접 받다 해외서 맹활약
미래창조과학부의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의 핵심은 해외 인재를 연구교육형·기업활동형·미래잠재형 등 3개 유형으로 나눠 유형별 맞춤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이나 공공 연구소에서 연구·교육 활동을 하는 연구교육형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박사 후 국내외 연수 우수 성과자를 일반 연구자 지원 사업에서 우대하고 유럽연구이사회(ERC)와 ‘한·유럽연합(EU) 우수 연구자 교류 협력 연구’ 사업을 추진해 매년 기초 연구 분야에서 40명씩 교류하고 가칭 ‘코리아 리서치 펠로십(Korea Research Fellowship) 프로그램을 신설해 2017년까지 총 200명을 선발한다.

기업활동형 인재 유치를 위해서는 국가의 인재 유치 사업과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통합 홍보하고 인력 중개를 강화, ‘해외 인재 전용 기술 창업’ 지원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소·중견·벤처기업을 위한 ‘글로벌 멘토단’,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의 인도 진출을 지원하는 ‘한·인도 SW 상생협력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미래잠재형인 우수 유학생 유치를 위해서는 정부 초청 장학생 교류 사업을 2013년 827명에서 2017년 1000명, 전략 산업 맞춤형 인재 및 자원 강국 우수 유학생 규모를 2013년 336명에서 2017년 650명으로 늘리고 연간 80여 명인 재외 동포 장학금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해외 우수 인재에게 제공하는 근로조건이나 복지 혜택이 그렇게 경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KOTRA가 2010년 국내 기업 1만 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필요한 해외 고급 인력은 3266명이었는데, 이 중 77.2%만 채용할 수 있었다. 국내 고급 인력은 필요 인력 대비 92.4%를 채용할 수 있었던 것과는 대비된다. 조사 대상 기업의 44.4%가 높은 인건비와 체류비 등 직접 경비 부담을 해외 인력 채용의 가장 큰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삼성·LG·현대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고용 조건이나 평판은 이웃 중국에도 밀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국의 주거 여건이나 교육 환경이 열악한 것도 해외 인재 유치의 걸림돌이다. 미국에 체류하는 국내 과학자의 10명 중 7명이 한국에 귀국할 의사가 없다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과 높은 집값이 귀국할 수 없는 사유로 제시했다.

학벌 중심 연공서열 위주의 폐쇄적 한국의 조직 문화도 유능한 해외 인재뿐만 아니라 국내의 인재들이 한국 근무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글로벌 기업의 해외 현장에는 낮은 학벌로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역량과 성과에 의해 평가되는 해외에서는 고급 인재로 자리 잡은 한국 인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잦은 야근 등의 근무 관행과 스펙을 차별하는 한국 노동시장 관행도 해외 인재 유치를 위해 개선돼야 할 과제다.

탁월한 글로벌 인재 1명이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말대로 한국의 향후 먹을거리는 이번에 정부에서 발표한 해외 인재 유치 전략과 목표가 제대로 추진돼 바라는 성과가 달성되느냐의 여부가 상당 부분 좌우된다.



박영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