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구성 바꾸고 배달 서비스까지…중·고령 점원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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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에게 생활 자립은 꽤 힘든 문제다. 무연 사회가 안착된 일본에선 특히 그렇다. 그 결과물이 노인 위주의 ‘구매 난민’이다. 구매 난민은 필요할 때 생필품을 사지 못하는 이를 뜻한다. 최소한의 기본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다. 신선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일본에선 ‘또 하나의 노인 문제’다. 빈곤과는 큰 관련이 없다. 돈이 있는 거동 불편 고령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노인들이 최소 600만 명에서 최대 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생활 주변의 생필품 판매처가 급감한 결과다. 교외 입지의 서구식 대형 점포가 전통의 골목 상권을 고사시켰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편의점의 존재감이다. 편의점의 전략 변화와 개혁 조치가 구매 난민의 대량 양산을 일정 부분 막아주고 있다. 편의점의 변신이 노인 가계의 ‘먹는 문제’에 타깃을 맞춘 덕분이다. 구매 난민에겐 단비나 마찬가지다. 인스턴트보다 신선식품을 우선하는 등 노인 건강의 위협 요소에서 지원 우군으로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즉 도시락을 필두로 외식과 내식의 경계선인 점심을 강화해 홀몸노인의 생활 자립을 돕는다.


잘나가던 편의점 업계는 장기 침체로 1990년대 이후 적잖이 위축된 상태다. 이 와중에 노인 인구에 눈높이를 맞추면서 불황 탈출의 힌트를 얻었다.


그 덕분에 업계도 숨구멍이 뚫렸다. 잘나가던 편의점 업계는 장기 침체로 1990년대 이후 적잖이 위축된 상태다. 덩치는 커져도 이윤이 줄었다. 이 와중에 노인 인구에 눈높이를 맞추면서 불황 탈출의 힌트를 얻었다. 저가의 자체 상품(PB)으로 가격 장벽을 낮추고 특화된 상품·서비스를 다양화하면서 노인 인구를 단골손님 명단에 넣기 시작했다.

원래 편의점의 주력 고객은 어렸다. 청년 입맛에 맞는 상품·진열·입지 선택을 고수하는 게 원칙이었다. 직장 생활 중 야간 활동이 잦은 30~40대 남성이 충성 고객으로 분류됐다. 한때 고객 비율의 70%까지 점했다. 하지만 최근 타깃 고객이 바뀌었다. 크게 노인·여성·10대가 잠재 고객 그룹이다. 이 중 공을 들이는 타깃은 고령자다. 전체 인구의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이니 자연스러운 타깃 전략이다. 노인 그룹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유통 채널로 변신하려는 아이디어 싸움도 거세다. ‘어른’을 모시려는 업계의 유치 경쟁은 서서히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노인 고객의 충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객은 최근 확실히 고령화됐다. 실태 조사에선 1989년 9%였던 50대 이상 고객이 최근 30%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20대는 28%에서 9%로 줄었다(세븐일레븐). 특히 남성 고객이 압도적이다. 미혼 남성(36%), 기혼 남성(28%), 기혼 여성(19%), 미혼 여성(17%)의 순서다(2011년). 재택·근린 지향성 등 노인 인구의 라이프스타일에 편의점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음식 구매와 관련해 활용 빈도가 늘어난 루트는 편의점을 포함해 인터넷·동네슈퍼마켓뿐이다.


노인들, 편의점 ‘큰손’으로 떠올라
이는 노인 인구 중 인터넷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세간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반면 백화점 구매 빈도는 줄었다. 패밀리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에도 발길이 끊기는 추세다. 외식의 하락세다. 집에서 식사하는 내식(內食)·점심의 대체 결과다. 실제로 편의점은 훌륭한 대안이다. 편의점을 통한 식사 대용의 자녀 독립, 정년 은퇴 후의 부부·단신세대에게 경제적 합리성이 높다. 간편하고 저렴하며 다양한 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인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은 편의점의 일등 공신은 단연 식품이다. 50세 이상이 즐기는 편의점 식품 중 히트 상품 1위는 ‘주먹밥’이다. 중·고령 고객 3명 중 2명은 주먹밥 때문에 편의점에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오토나컴비니연구소). 응답자의 66%가 평소 주먹밥을 사며 20%는 앞으로도 살 것이라고 답했다. 2위는 ‘빵’이다. 52%가 편의점 방문 이유로 빵을 꼽는다. ‘도시락’이 3위다. 49%가 주먹밥을 사기 위해 점포에 들른다. 이 밖에 냉동조리·디저트·만두·어묵 등의 순서다. 외식에서 점심으로의 뚜렷한 변화다. 귀찮고 힘들어 주먹밥·도시락·샌드위치 등 (반)조리된 음식을 사 먹는 트렌드다. 대세는 혼합형이다. 집의 밥·반찬에 편의점 메뉴를 조합해 즐기는 형태다. 특히 남편 은퇴 후 편의점을 활용하는 60대 여성이 많다. 50대보다 60대가 앞선다. 고령 남성일수록 신선식품 구매 목적으로 편의점을 찾는 비율이 높다.

편의점의 눈높이 변신은 일상적이다. 신선식품 중심의 라인업 강화가 대표적이다. 노인이 선호하는 도시락과 반찬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노인을 위한 점심 메뉴가 강화되는 추세다. ‘남자 독신의 길’이란 책은 이를 ‘도시락 업계의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다양화다. 당뇨식·저염식·기자미(잘게 쓴 재료)식·환자식 등 광범위한 제품 출시가 특징이다. 인스턴트의 집산지라는 오명 탈피에도 열심이다. 유기농은 물론 인접 지역에서 재배된 농수산물을 재료로 잘 계산된 영양분을 반영해 건강 음식을 내놓는 추세다.


저염식 등 신선식품 라인업 강화
구매 난민의 최대 약점은 빈약한 근접성이다. 일본 전역을 기준으로 500m에 점포 1개는 있다는 편의점이지만 문밖 출입이 힘들면 그것도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나온 게 택배·배송 서비스다. 즉 현장 판매에서 배송 서비스로 연결된 것도 일종의 혁명이다. 도시락을 비롯한 냉동식품의 즉각적인 배달 서비스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신문 판매점과 제휴해 택배 서비스에 나선 사례가 재미있다(패밀리마트). 상품은 있는데 전달 체계가 없는 편의점과 발은 있는데 수익 구조가 마땅치 않은 신문 보급소의 만남이다. 애초 기업 고객만을 위한 택배 서비스에 한정했지만 최근 개인 고객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이동판매도 있다. 식품·일상품을 실은 이동판매 차량 도입이다(세븐일레븐). 구매 난민의 잠재 파워에 주목한 것이다. 아직은 농촌 지역이 실험 무대지만 점차 도시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원래 이동판매는 생활협동조합·동네상점가 등이 잘 활용했었다. 전국에 산재한 개별 점포를 기지로 쓰면 세밀한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동판매의 원조는 로손이다(2008년). 로손은 대지진 이후 재해 현장에 이동 차량을 배치해 화제를 모았다.

아예 편의점을 노인 점포로 개편한 케이스도 있다. 노인 친화적인 점포 숫자를 장기적으로 전체의 20%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다(로손). 실험삼아 운영해 보니 꽤 짭짤한 경영 성과가 나온 덕분이다. 틀니 세정제와 염색약 등 신규 상품 진열이 부쩍 늘었다. 노인 점포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이아웃을 노인 친화적으로 바꾸는 점포는 많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넓히고 진열 선반을 낮추는 흐름이다. 쇼핑 중 휴식을 위한 안마 의자까지 설치한 곳도 있다. 소외·고립의 심리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편의점에 대화(담화) 공간도 만든다. 재래시장 단골손님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혈압계를 준비해 언제든지 쓸 수 있다.

문의·민원을 듣고 직접 해결·중개하는 서비스도 있다.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중·고령 점원을 배치한다. 상품을 배달할 땐 의도적으로 고객의 신변잡사와 관련된 대화 주제를 만들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도록 교육하는 편의점도 있다. 점포 내부에 쇼핑 카트를 배치하는 곳도 많다. 행정 서비스(증명서 신청, 세금 납부 등)를 비롯해 관심사인 간병 정보 등도 강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있다. 고령 서비스의 최대 단점은 채산성이다. 추가적인 노력·비용 투입으로 인테리어를 바꾼다면 상당히 부담이 된다. 한정 공간에 고령 상품이나 서비스가 확충되면 다른 고객을 위한 진열을 줄일 수밖에 없다. 고객 이탈 우려다. 실제로 이동 서비스만 하더라도 원가 확보가 힘든 게 사실이다. 보관 온도 차이 등으로 트럭 한 대에 이종 상품을 배치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때문에 독자 설계의 차량 개조가 불가피한데다 연료비도 부담스럽다. 그래도 많이 팔면 좋은데 문제는 매출이다. 통상적인 이동 매출이 운반 재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업계가 잠재 수요와 사회 공헌 등의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골머리를 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