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식 사고로는 문제 원인 파악·대응 어려워, 기득권 버리고 변화 나서야
세상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결정과 행동이 현실 배경에서 종종 어긋나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칸막이 세상에서는 문제의 원인 규명이 비교적 수월했다. 많은 경우 원인에 대한 대응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원인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설사 원인을 규명하더라도 대응책을 구사하기 힘들다.가장 비근한 예로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이상기후와 얽힌 거대 재난에도 불구하고 정작 원인 제공 국가들의 환경보호 노력은 미흡하다. 관련 국제 협약의 비준이나 기구 운영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작 한 나라에서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조정비용이 수반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공히 모두가 다른 국가들이 먼저 나서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중국의 미세 먼지 문제도 따지고 보면 글로벌 차원의 공공재 공급 부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수의 삶이 직결돼 있는 주요 결정에서 세상 전체를 설득하기 어려운 현실 제약에 따라 실제 행동과 결정은 점차 지엽적이고 개인적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환경 자체를 제어할 수 없다면 당연히 환경 변화에 걸맞은 체제와 규범 그리고 시장 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 반면 관련된 결정과 가시적 결과를 이끌어 낼 국가 단위의 리더십은 갈등 요인 관리에 사로잡히는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단임제나 연임제는 세계적 공공재에 진정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이기 어렵다. 분명하고도 엄연한 사실은 글로벌 차원의 굵직한 위험 요인들을 파악하고 관리해야 민간 주체들도 시장에 참여할 수 있고 제대로 눈치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들조차 본연의 기업 활동 대신 엄청난 현금 보유에 열을 올리는 현실은 그만큼 위험 파악과 관리가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만 해도 4조 달러 이상의 현금이 기업과 은행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돈이 흐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거대 위험 요인들이 누적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글로벌 차원의 경제적 경색 현상을 타개할 리더십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사불란한 글로벌 공조 사라져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일사불란한 정책 공조 이후 주요 국가들은 심각한 대결 구도에 진입한 지 오래다. 엄밀히 말해 문제를 알고도 대응하지 못하는 속수무책과 자가당착의 상황이다. ‘국익이 먼저다’라고 하지만 통합 환경에서의 국익 증진은 바로 주변에 대한 영향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국익 우선 정책 결정과는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표방하는 방향과 실제 행동 간의 괴리가 점차 커져만 가고 있다. 오히려 혼란의 틈을 타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이익 추구의 결정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각자의 삶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려워진 마당에 무슨 공공 목표에 신경을 쓰느냐고 항변하는 것이 현실이다.
금융 부문의 난맥상도 여전하다. 무엇보다 복잡해진 환경과 허점투성이 지배 구조 하에서 전개되고 있는 최근의 국제적인 금융 규제 관련 논의를 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많은 논의들이 실천되기 어려운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금융 시스템의 과부하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복수 기축통화 체제라든가 은행 간 시장의 효율화 대신 손발이 묶여 있는 은행들에 대한 규제만 강화되고 있다.
반면 섀도 뱅킹(shadow banking)으로 불리는 규제 밖의 세상은 사실상 우후죽순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정작 보호되고 규제되고 있는 은행 분야는 점차 축소되고 있는 반면 규제 밖의 세상은 지금도 관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 상장을 발표한 중국의 알리바바는 알리페이를 통해 고수익 상품을 판매하는 등 자산 운용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인터넷 통신회사가 은행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규제의 비용을 감안하면 납세자들의 세금은 골동품 가게를 지키는 데 할애되고 있으며 금융 소비자들은 보호막 없이 일방적으로 금융 서비스 회사들에 포획되게 된다. 금융 서비스를 제대로 접근할 수 없는 계층마저 조만간 고수익의 대가로 돌아오게 될 턱없는 고지서 청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금융 안정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되는 ‘개별적으로 타당하지만 전체적으로 무의미한 규제 감독 체계’가 자리 잡고 있는 반면 풍선효과로 커지기만 하는 섀도 뱅킹에 대한 파악조차 미흡한 상태다. 그래서 오늘도 체제적 위험은 걸러지지 않은 채 누적되면서 우리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환경·금융과 마찬가지로 안전사고도 원인 처방에 관련된 노력들이 제때에 시장에서 평가되지 못하는 현실과 직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세월호의 사건은 예견된 재앙이었다.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담보로 한 과도한 사적 이익 추구에 대해 모두가 눈을 뜬 채 방관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시스템 차원의 작동이 각자 처한 시장 환경에 노출되고 평가되기보다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한 상부 지배 구조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주요 결정을 내리고 이행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지도층이 우선적으로 각성해야 하는 이유다. 마치 신흥국의 자금 조달 창구를 효율화하는 대신 에어백과 같은 보호 장치만 잔뜩 강화하는 현 국제적 규제 감독 체제의 방향과 흡사하다.
그러나 선도 계층에 속한 인적 풀 만큼 바뀌기 어려운 존재도 없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시스템 자체의 개혁에 주력해야 한다. 성과에 직결된 업적 평가는 단순한 이익의 개념보다 포괄적인 공공재 공급에 대한 사회적 기여도가 반영돼야 한다.
정작 문제는 ‘그 밥에 그 나물’ 격인 상부 계층의 인적 교체에 앞서 시스템 개선에 필요한 적극적 자세다. 정말 어려운 문제는 현재의 상부 지배 구조 하에서 정작 해결의 주체가 민간 시장 참여자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연결된 환경에서는 소수의 획기적 변화만큼이나 조금씩이라도 모두 같이 변화하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전체를 일거에 움직일 수 있는 리더십이 없다면 각자가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야 한다.
포괄적 시각 갖춘 국제기구 역할 중요
결론적으로 첫째, 침묵의 다수는 이제부터라도 주어진 환경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 만들어지는 여론의 공감대는 자칫 쏠림 현상을 가속화해 돌이킬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배는 복원력을 상실한다. 따라서 당장 거슬리더라도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공히 필요하다.
둘째, 지켜지지 않는 안전 수칙은 수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모두가 각자의 편협한 이익 추구를 위해 한곳만 바라보는 환경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득권들도 정작 자신들의 자산을 지키는 일련의 사안들이 바로 주변과 이웃의 상태라는 점을 인식할 때가 됐다. 그리고 환경 변화에 합당한 지배 구조와 시장 기구를 조속히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
셋째, 포괄적 시각이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시장과 기구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국가 단위의 결정이 우선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역 단위, 세계 차원의 공공재를 생산하고 지키려는 주체도 분명히 있어야 한다. 실질적인 역할과 책임이 주어지는 독립된 재원의 명실상부한 국제기구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러한 준비 과정 없이 국가 차원의 노력만 강조한다면 크게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익은 지킨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이익을 지킬 수 있는 환경과 체제 그리고 의식이라는 점을 모두가 공감하기를 기대해 본다.
워싱턴(미국)=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IMF 방문연구원
선도 계층에 속한 인적 풀 만큼 바뀌기 어려운 존재도 없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시스템 자체의 개혁에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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