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차익 환원 세일로 재미 본 기업들 울상…부가 기능 개발 등 자구책

[GLOBAL_일본] 엔고 시대 적응 힘겨운 가격 파괴 업체
한때 저가 경쟁은 마케팅의 전부였다. 일본에선 얼마 전까지 10~20% 가격 인하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파격적인 출혈·충격 할인이 일상다반사였다. 하나라도 더 팔자면 어쩔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디플레였다. 물가가 되레 떨어지니 손해는 아니었다. 여기에 엔고는 저가 경쟁을 한층 부채질했다. 수입 비중이 높은 업계라면 엔고의 환차익만도 상당했다. 엔고 환원 세일은 그 결과다. 선두 주자는 외식 체인과 의류 판매 등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원재료의 해외 조달이 많아 ‘디플레+엔고’의 수혜를 고스란히 받으며 할인 경쟁의 수위를 높여 갔다. 요컨대 불황을 먹고살던 업종이었다. 언론은 이들을 ‘디플레 시대의 승자들’이라고 규정했다.

디플레가 인플레로 바뀌어
이젠 상황이 변했다. ‘디플레→인플레’를 위해 이(異)차원적인 실행 정책의 총동원령을 내린 아베 정권의 등장 이후부터다. 인플레와 돈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금융 완화와 재정 투입은 물론 경기 확장용 성장 전략까지 내놓았다. 100엔대로의 엔저 유도는 그 결과다. ‘디플레·엔고’가 ‘인플레·엔저’로 바뀌면서 내수·수출 부문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그간 잔치를 즐겼던 디플레의 승자들은 거세진 인플레의 공격 앞에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환차익만큼 앉아서 챙겨 왔던 불로소득이 이젠 정반대의 날 선 부메랑으로 되돌아 온 결과다.

디플레의 승자 중 변신이 빠른 회사는 홈 인테리어 전문 업체 ‘니토리’다. 그간 회사의 상징 문구는 ‘가격 인하 선언’이었다. ‘니토리헌법’으로 불리는 회사 방침 중 1번, 2번, 3번이 모두 ‘싸다’일 정도로 강력하게 추진한 가치였다. 엔고 시절, 툭하면 가격을 낮춰 주목 받은 이유다. 1만 개 진열 제품 중 80%가 수입품이어서 가능한 수혜였다. 그랬던 게 올해엔 1번 ‘싸다’에 그쳐 강조 정도가 대조를 이뤘다. 언론 인터뷰에서 사장은 “싸다는 것에 너무 치중한 것을 지금은 반성 중”이라고 말했다. 1엔의 엔저로 13억 엔의 손실이 발생하니 당연지사다. 일단 조달비용을 낮추는 게 급선무가 됐다. 해외의 위탁 생산을 자사 생산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동시에 동일 제품의 가격 인하가 아니라 기능을 더 얹은 상품을 개발해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또 평균 구매 수를 3.5개에서 4개로 늘리는 것도 포인트다. 온 김에 더 사게 만드는 동반 판매 자극 전략이다.

국민 음식인 규동도 엔저가 야속하다. 가령 업계 선두 주자인 요시노야는 규동에 쓰이는 쇠고기 전량을 미국에서 수입한다. 엔고였던 시절엔 그만큼 가격 할인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엔저 유도가 시작된 2013년 4월 저가 우위로 수익 회복을 노리기 위해 규동(보통) 값을 100엔(380엔→280엔)이나 깎아 줬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가격 인하 규동은 다 팔았지만 원가율은 되레 4% 올랐다. 결국 2013년 3~8월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72%나 급감했다. 결국 회사는 올 4월부터 다시 300엔으로 값을 올렸다.

엔저 역풍을 맞기는 맥도날드도 마찬가지다. 맥도날드의 약진 무기는 2005년 판매한 ‘100엔 맥’으로 저가 전략이 체화된 히트 상품이었다. 동시에 최근 10년 동안 약 6회나 가격 조정을 실시해 전체로는 되레 20%의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전략을 폈다. 저가를 내세워 집객한 후 그 이면에서 메인 메뉴와 한정품 등으로 벌어들이는 구조였다. 다만 인플레는 매서웠다.

2013년 하반기 수익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이다. 미국 본사에서 급파된 신임 사장의 대항 카드는 저가였다. 간판 상품인 햄버거를 120엔에서 100엔으로 떨어뜨렸다. 증세까지 감안해 싸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 대신 고가(799엔)의 아침 메뉴를 새롭게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