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돈 쌓아 두고도 회사채 발행…고세율로 송금 회피

세계 최대 ‘현금 부자’ 애플이 올해 또다시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애플은 4월 29일(현지 시간) 120억 달러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뉴욕 월가의 기관투자가들은 ‘좋은 물건’이 나왔다며 환호했다. 채권 입찰에 400억 달러가 넘는 수요가 몰려 큰 인기를 과시했다. 지난해 4월 170억 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할 때에도 500억 달러어치 이상의 주문이 몰렸다.
<YONHAP PHOTO-0184> A customer uses cash to pay for new Apple Inc. iPads at the Apple store on 5th Avenue in New York, U.S., on Friday, March 16, 2012. Apple Inc. started selling its new iPad today, betting on a sharper screen and faster chip to extend its lead over Google Inc. and Amazon.com Inc. in the growing market for tablet computers. Photographer: Scott Eells/Bloomberg
/2012-03-17 08:10:17/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customer uses cash to pay for new Apple Inc. iPads at the Apple store on 5th Avenue in New York, U.S., on Friday, March 16, 2012. Apple Inc. started selling its new iPad today, betting on a sharper screen and faster chip to extend its lead over Google Inc. and Amazon.com Inc. in the growing market for tablet computers. Photographer: Scott Eells/Bloomberg /2012-03-17 08:10:17/ <저작권자 ⓒ 1980-2012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애플은 올해 자사주 매입 규모를 당초 600억 달러에서 900억 달러로 확대하기로 했다. 회사채 발행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은 그러나 150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 그런 애플이 이자비용을 지불하면서 회사채를 발행한 이유는 뭘까.

애플은 보유 현금 1500억 달러 가운데 90% 정도인 1300억 달러를 해외에 두고 있다. 해외 자회사 등이 벌어들인 이익을 미국 본사로 송금하지 않고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등에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법인세율은 35%인 반면 아일랜드는 12.5%다.

애플이 해외 보유 현금을 본국으로 송금하려면 최대 35%의 세금을 내야 한다. 애플이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은 이번에 3년, 5년, 7년, 10년, 30년 만기의 고정 금리 채권을 발행했는데 10년 만기 회사채의 발행 금리는 연 3.46%였다. 해외 현금을 35%의 세금을 떼고 들여오는 것보다 회사채를 발행해 이자를 지급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의 높은 세율 때문에 미 기업들의 해외 보유 현금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제 신용 평가 회사 무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미국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규모는 전년 대비 12% 증가한 1조6400억 달러로, 이 가운데 9470억 달러를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다. 해외 보유 현금은 전년보다 13% 늘어났다.


팀 쿡, “35% 세율 너무 높아”
이처럼 미국 기업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빚은 오히려 늘고 있다. 해외에 풍부한 현금을 쌓아 두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이 애플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대기업(금융회사 제외) 1100곳의 재무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09~2013년 사이 기업들은 평균 1달러씩 벌어들일 때마다 부채를 3.67달러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1100개 기업의 작년 말 현재 현금 보유액은 총 1조2300억 달러로 3년 동안 2040억 달러 증가했다. 이 기간 중 부채는 7480억 달러 늘어났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주로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사용됐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5월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정치권에 세제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그는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 둔 현금을 미국으로 가져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해외 수익을 국내로 송금하려면 35%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이는 분명히 너무 높은 세율”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 장진모 한국경제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