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일한 경쟁자…전기차·ESS 등 결합 모델 개발해야

[태양광 화려한 부활_다시 짜는 성장 전략] 가격에서 ‘솔루션’으로 경쟁 축 이동
태양광 시장의 패권을 쥐었던 곳은 정부 주도의 보조금 정책이 활발했던 곳이다. 시작부터 그랬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해답으로 신·재생에너지가 떠올랐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력·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체계를 태양광·풍력·바이오매스 등 신·재생에너지로 재편해야 한다는 당위성 아래 정부 주도의 시장이 생겨났다. 특히 태양광은 해가 비치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설치할 수 있어 부지 선정에 자유롭다는 게 장점이다. 유럽에서 지붕과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발전을 설치하는 붐이 일었고 상용화되면서 산업 또한 성장했다.

유럽은 2012년까지 많게는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부동의 1위였다. 발전 가격과 소매가격 차이를 보전해 주는 보조금 정책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유인책이었다. 특히 이탈리아와 독일이 적극 나섰다. 정부 지원이 성장을 주도하며 시장 선도 기업들은 높은 수익률과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8년까지 폴리실리콘 생산 기업들은 5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발전 사업이라는 태양광 특성상 로컬 업체들이 다운스트림 시장을 주도하며 수익의 과실을 가져갔다.

보조금으로 시장을 키운 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2009년부터 재정 위기로 보조금 규모를 축소하거나 지급을 중지했고 시장의 판도는 서서히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미국으로 넘어갔다. 현재 세계 태양광 시장을 이끄는 국가는 중국·일본·미국 등 3개국이다. 2013년 기준으로 전체의 59%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새롭게 동남아·아프리카·중동·동유럽·남미 등으로 시장이 점차 다변화되는 추세다. 발전소 설치 시장을 놓고 경쟁이 점차 뜨거워지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보호무역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서로 태양광 모듈과 폴리실리콘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일본은 인증 진입 장벽을 높이면서 자국 태양광 기업을 보호한다.

시장을 주름잡는 글로벌 선도 기업들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태양광의 밸류 체인을 이해해야 한다. 태양광 산업은 크게 소재, 전지 및 모듈, 발전소 설치, 사후 서비스 등으로 구분된다. 모래에서 규소를 정제한 폴리실리콘이 핵심 소재이자 가장 밑단에 해당한다. 돌멩이 상태의 폴리실리콘을 가공한 원판 상태가 웨이퍼이며 여기에 회로를 가공하면 태양전지가 된다. 태양전지는 출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를 묶어 패널을 만들며 이를 모듈이라고 부른다. 여기까지가 제조 시장이다. 모듈을 지붕 등에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사후 서비스는 설치 시장에 속한다.


가격만으로 중국 이길 수 없어
태양광 기업은 주로 폴리실리콘과 모듈을 중심으로 얘기한다. 제조의 맨 밑단인 폴리실리콘은 중국의 GCL, 미국의 핸록, 한국의 OCI, 독일의 바커 등 4강 체제로 구성돼 있다. 제일 윗단인 모듈에서는 중국의 잉리솔라·트리나솔라·캐너디언솔라, 일본의 샤프 등이 있으며 한국의 한화솔라원도 생산량 기준으로 글로벌 톱10에 포함된다.
[태양광 화려한 부활_다시 짜는 성장 전략] 가격에서 ‘솔루션’으로 경쟁 축 이동
제조 시장 전반적으로 60% 이상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모듈만 하더라도 상위 10개 중 6개는 중국 기업이다. 교세라와 샤프를 앞세운 일본과 퍼스트솔라를 가진 미국이 그 뒤를 잇고 있으며 한국은 모듈 생산량 기준 넷째로 규모가 큰 국가다.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중국을 제외하면 미국·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실질적인 경쟁자는 중국뿐이라고 봐도 된다”며 “중국 기업을 이길 경쟁력을 갖춰 가면서 중국 독점 시장에서 30%만 가져와도 수출액이 400억 달러 정도다. 단기간에 이 정도로 수출액을 늘릴 수 있는 분야는 태양광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태양광 시장 규모는 300MW 수준으로, 전 세계 45GW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태양광과 자주 비교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에선 이미 글로벌 1위의 영광을 차지한 한국 아닌가.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한국은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국가다. 그런데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 에너지 분야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공급과잉의 시대가 가고 태양광의 제2차 성장기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이 점프할 수 있는 기회이며 기로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강정화 연구원은 “태양광 시장의 부활은 장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결국 발전은 친환경과 분산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흐를 텐데, 태양광은 둘 다 해당한다. 신·재생에너지와 셰일가스가 세계 전력의 판도를 바꿀 것이며 미래 성장 산업 중 규모와 성장성 측면에서 최고의 사업 중 하나”라고 말했다. 1000억 달러가 넘는 산업 중 2020년까지 연평균 20%씩 성장하는 유일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가 600억 달러 시장인데, 그보다 더 크다”며 “태양광이 아직 성숙한 산업이 아니고 한국 기업들이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한국 기업들이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추가 진출 가능성도
과거 2008~2010년 사이 한국에서도 한차례 태양광 붐이 분 적이 있다. 정부의 녹색 성장 기조 아래 제2의 반도체를 키우겠다는 가열 찬 목표로 국내 4대 대기업들이 모두 뛰어들었다. 하지만 반도체의 ‘황의 법칙’처럼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고 기술 장벽이 낮아 한국 고유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고 때마침 글로벌 공급과잉 시기를 맞아 가동률이 급감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기 전에 발을 빼거나 투자를 보류했다.

태양광의 또 다른 특성은 투자가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장비를 확보하고 단기간에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시 한국 기업들이 태양광에 눈을 돌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성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오랜 기다림 끝에 한화나 OCI 등이 대박이 나게 되면 투자를 멈췄던 대기업도 다시 뛰어들 여지가 있다”며 “특히 일본 시장에서는 중국 제품보다 품질이 좋은 한국 제품의 선호도가 높아 경쟁력이 있다. 또 중국과 미국이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점 또한 한국 기업엔 기회”라고 말했다.

태양광 산업의 패러다임이 서비스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기회 요인이다. 각국의 보조금이 축소되고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태양광 기업들의 저수익 구조가 고착화됐다. 더 이상 제조만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최근 태양광 기업들은 발전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한국이 강점을 가질 수 있다. 강정화 연구원은 “단순히 가격 싸움으로 제품만 판매해서는 중국을 이기기 쉽지 않다”며 “단순 제조 및 설치가 아니라 서비스 업체로서 종합 솔루션을 통해 고객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비스의 한 예로 태양광 자회사 솔라시티를 운영하고 자체 전기차 충전 시스템을 갖추며 고객을 유인하는 미국의 테슬라 모델을 들 수 있다. 기존 B2B 사업인 대형 발전소에서 가정용 소비자 태양광, B2C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점 또한 한국 기업엔 긍정적인 신호다. 고객이 매장에서 태양광 패널을 선택하는 시대가 가까워지면서 태양광이 전자제품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때 전기를 저장해 필요할 때 사용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ESS)와 연계, 다른 에너지와 하이브리드 연계, 스마트 그리드의 적용, 분산 전원 개발과 같은 차세대 에너지 기술이 필요하며 한국이 이 시장을 주도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시각이 최근 한국 태양광 시장에 훈풍처럼 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투자가 이뤄질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시장 선도 관점에서 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당장 중국과의 가격 경쟁력 싸움에서 버틸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한국이 태양광 산업을 제패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급선무는 수요 창출이다. 내수 시장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거나 혹은 해외 발전소 건설에서 한국 기업들이 선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다리 역할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산업계는 입 모아 얘기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