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아해’로 은둔 생활…“사업가보다 교주에 가깝다” 증언도

[이 주의 인물]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미스터리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세월호 침몰 사고로 대한민국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사고 이후 단연 주목받는 이는 유벙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이다. 사태 이후에야 그가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유병언 전 회장은 1997년 세모그룹 부도 뒤에 관심 밖으로 사라졌던 인물이다. 1987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수사를 받았던 그는 1991년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신도들의 헌금에서 11억여 원을 끌어다 쓴 사기 혐의로 구속돼 4년간 복역했다. 최근 공개된 유 전 회장의 강의에서 그가 말한 “4년을 공짜로 뺏겼다”는 말의 배경이 되는 부분이다. 오대양 사건 당시 유 전 회장을 직접 조사한 수사 검사들은 그를 가리켜 “사업가가 아니라 교주가 더 어울렸다”고 입을 모은다. 한 고위 변호사는 “유 회장은 달변이면서도 겸손한 사람으로 기억한다”며 “하지만 (구원파)신도들은 유 회장을 스쿠알렌(건강보조식품) 제조에서부터 유람선 설계까지 할 수 있는 구원자로 여겼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신도들이 집 담보대출까지 받아가며 돈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유 전 회장은 사업가라기보다 교주에 가까웠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여전히 목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 전 회장은 어떻게 종교에 발을 들였을까. 그는 194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한국에 건너와 대구에서 성장한 그는 대구 성광고를 졸업하고 ‘딕 요크’라는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처음 종교 생활을 시작했다. 장인이 된 기독교복음침례회 창설자 고(故) 권신찬 목사도 이곳에서 만났다. 이후 유 전 회장은 1962년 대구의 한 가정집 구석방에 예배방을 차리고 권 목사와 함께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구원파의 시작이었다.


1997년 부도 딛고 화려하게 부활
실질적인 교회의 리더 역할을 해온 그가 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1976년 부도회사였던 ‘삼우트레이딩’를 인수하면서다. 이때부터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시작된다. 1979년 주식회사 세모를 설립하고 건강식품, 선박 제조, 자동차 부품, 건설 등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종합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86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한강유람선 사업권을 취득, 주목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80년대 초 유 전 회장이 통 큰 불우이웃돕기를 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경호 인력을 지원해 줄 정도로 전 전 대통령과 가까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든든한 배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1990년 한강유람선 사고로 직원 15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연루돼 구속 수감된 시기도 이쯤이다. 출소 이후 다시 경영에 복귀한 유 전 회장은 1995년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해 자회사 세모해운을 설립했다. 세모해운은 대한민국 최대의 연안 여객선 업체로 성장했지만 무리한 투자 후유증으로 경영난을 겪다가 1997년 2000억 원대 부채를 안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중 한강유람선 운영사인 세모유람선은 1999년 세월호를 운항하는 청해진해운에 인수됐다.

유 전 회장이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세모그룹 부도 이후다. 그리고 좀처럼 재계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기억 속에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유 전 회장의 근황이 속속 공개돼 적지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일가가 ‘아이원아이홀딩스’를 통해 국내외에 3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경영 자문 컨설팅 업체인 아이원아이홀딩스그룹의 총자산은 5844억 원으로, 아워홈그룹보다 앞선 재계 순위 310위를 기록했다. 1997년 세모그룹 부도 이후 17년 만에 공개된 화려한 성적이다.

그룹의 사업 영역 역시 문어발 양상이다. 해운을 중심으로 자동차 부품 제조, 건강식품 판매, 부동산 개발, 방송 콘텐츠 제작, 외식 사업 등이다. 아이원아이홀딩스그룹은 지주사 아이원아이홀딩스를 정점으로 10개의 외부감사 기업을 지배하고 있으며 해외 계열사는 (주)세모를 통해 운영 중이다.

눈여겨볼 점은 유 전 회장이 1997년 이후로는 어떤 법인의 대표이사도 맡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는 “그는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기 위해 유령같이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에 유 전 회장 명의의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찾아보기 힘들다.
<YONHAP PHOTO-0621> <세월호참사> 청해진해운 관련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압수수색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회사를 수사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찰수사관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에서 압수물품을 박스에 담아 자택을 나오고 있다. 2014.4.23

    hihong@yna.co.kr/2014-04-23 14:15:38/
<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세월호참사> 청해진해운 관련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압수수색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세월호의 선사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회사를 수사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검찰수사관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자택에서 압수물품을 박스에 담아 자택을 나오고 있다. 2014.4.23 hihong@yna.co.kr/2014-04-23 14:15:38/ <저작권자 ⓒ 1980-201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이원아이홀딩스는 유 전 회장의 아들인 유대균(44)·유혁기(42) 씨가 각각 19.44%씩 지분을 갖고 있으며 계열사인 한국제약의 김혜경 대표가 6.2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두 아들이 다판다·트라이곤코리아 등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대개 40% 안팎이다. 나머지는 제3자가 대주주이거나 계열사 간 출자 방식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는 일부 주주 역시 구원파 신도로, 사실상 유 전 회장 일가의 주식을 차명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 역시 이 부분에 집중해 수사 중이다. “특히 유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사인 등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아 수사가 힘들었다”는 게 1991년 오대양 사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인천지검 관계자 역시 “유 전 회장 자산이 전 세계에 산재해 있고 국내 관계사들의 지분 관계도 복잡해 재산 규모 파악이 쉽지 않다”며 “주요 경영진 및 직원들도 과거 간부 및 신도 출신이 많다”고 전했다.


해외 언론 ‘억만장자’로 소개하기도
하지만 유 전 회장의 실제 모습은 유령과는 거리가 멀다. 기업인, 유기농 전문가, 발명가, 사진작가 등으로 신분을 바꿔 가며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특히 그는 영문명으로 ‘아해(Ahae·兒孩:아이의 옛말로 유 전 회장의 호)’라는 이름을 쓰며 ‘얼굴 없는 억만장자 사진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해 왔다.

유 전 회장은 4년 전부터 사진작가로 변신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주로 주변 풍경을 담은 사진 260만여 장을 촬영했다. 2011년 4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역에서 ‘나의 창밖으로(Through my window)’란 이름으로 첫째 초대전을 열었다. 2011~2013년 런던·프라하·베네치아·파리 사진전을 잇달아 개최했다. 특히 지난해 6월 파리 베르사유궁 오랑주리 박물관 전시회에선 1993년 영화 ‘피아노’로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받은 유명 작곡가 마이클 니먼과 함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까지 초청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한국의 은둔형 억만장자 사진작가의 기행’이라는 내용을 지면에 보도하기도 했다. 유 전 회장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얼굴과 본명을 철저하게 숨겼다. 차남 혁기 씨가 전시회 기획자 겸 대변인으로 언론 인터뷰를 대신했다.

그림·사진 전시를 활발히 하고 있는 A갤러리 관장은 “몇 년 전 파리에서 아해라는 한국 사진작가가 돈을 펑펑 써가며 전시회를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대전이라는 것은 작품을 파는 데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재력이 뒷받침돼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아해’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긁어모으기도 했다. 2012년 5월 프랑스 남부의 면적 10만㎡, 상주인구 150여 명의 쿠르베피 마을을 법원 경매를 통해 52만 유로(약 7억7300만 원)에 통째로 매입했다. 1990년대 이미 600여만 달러(약 70억 원)에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라벤더 농장을 포함한 하이랜드 스프링스 리조트(364만㎡)를 사들였다. 이 밖에 차남 혁기 씨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은 70억 원에 달한다.

세월호 선사 비리 수사에 착수한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의 칼날은 유 전 회장 일가를 향하고 있다. 유 씨 일가가 오너로서 경영을 총괄한 만큼 그 책임을 묻는 수순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유 전 회장 일가가 설립한 관계사와 구원파 간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