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수입액 연평균 60%씩 상승…‘식량 자급’ 외쳐도 공허할 뿐

중국이 올 들어 ‘식량 안보’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해마다 처음 발표하는 정책 문건인 ‘1호 문건’을 1월 20일 냈다. 올해는 ‘식량 안보 확보’를 첫째 지시 사항으로 못 박았다. 이 문건은 “새로운 정세 아래 국가 식량 안전 전략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며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받쳐 들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치국(治國)의 오랜 기본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 12월 13일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2014년 경제정책의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식량 안보 확보를 꼽았다. 같은 달 24일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에서도 “중국인의 밥그릇은 중국인의 양곡으로 충당돼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가 식량 안보 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식량 부족’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인구(2013년 말 기준 13억6072만 명) 대비 경작지 면적이 부족하다. 중국의 1인당 경작지 면적은 1000㎡로, 세계 평균인 225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도시화에 따른 토지의 용도 변경,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과일과 채소 등 다양한 작물의 재배로 최근 곡물 경작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1978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쌀의 재배 면적은 12.5%, 밀은 16.5%가 감소했다.


1인당 경작지, 세계 평균의 절반
반면 중국의 곡물 소비량은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인구 증가는 물론이고 육류와 식용유를 비롯한 단백질 섭취량 증가 및 가공식품의 소비 증가로 크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곡물가 폭등, 재앙은 시작됐다] 중국, 세계 농산물의 ‘블랙홀’ 되나
중국의 최근 5년산 식용 곡물 소비량은 연평균 2.2%씩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곡물의 간접 소비 역시 덩달아 늘고 있다. 또 곡물을 이용한 가공식품의 소비 역시 함께 늘고 있다. 최근 5년간 사료용과 가공용 곡물 소비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7.9%와 9.7%에 달한다.

중국은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곡물 수급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중국은 곡물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특히 2012년에는 쌀·옥수수·밀 등 주곡을 중심으로 수입량이 크게 늘었다. 중국 해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1~11월 기간 중 곡물 전체 수입량은 1342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0.7% 증가했고 수출량은 95만 톤으로 오히려 14.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쌀 수입량은 215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1.1% 증가했고 수출량은 26만 톤으로 43.5% 감소했다. 옥수수 수입량은 494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7.4% 증가했고 수출량은 25만 톤으로 88.2% 증가했다. 밀 수입량은 369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5.3% 늘어났고 수출량은 26만 톤으로 12.5% 줄어들었다. 수출량이 늘어난 것은 주곡 중 옥수수가 유일하다.

소비량의 급증을 수입으로 대체하면서 중국의 곡물 자급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2007~2011년 국내 곡물 생산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3.3%이고 같은 기간 국내 곡물 소비량의 연평균 증가율은 4.0%다. 2009년부터 중국이 곡물 수입국으로 전환됐으니 소비량과 생산량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지성태 농협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곡물을 포함한 식량 전체 자급률은 국내 생산량의 4배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두로 인해 중국 정부에서 설정한 식량 자급률의 마지노선인 95%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특히 2012년 중국의 대두 수입량은 5838만 톤으로 역대 최대였지만 생산량은 1280만 톤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물론 당장 중국의 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단위면적당 농산물 생산량은 늘었고 2013년 중국의 식량 작물 생산량은 10년 연속 증가, 사상 처음 6억194만 톤을 달성했다.


중국 기상 악화에 국제 곡물가 ‘널뛰기’
중국 정부 역시 식량 자급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11년 수리 시설 확충 등 농업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10년간 4조 위안을 투자하기로 했다. 또 곡물 생산 보조금을 꾸준히 확대 중이다. 2011년 기준 정부의 곡물 생산 보조금은 1조1600억 위안으로 2006년에 비해 4배나 늘어났다. 이는 농가 전체 소득의 8%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결국 중국의 인구 증가와 생활 개선, 이에 따른 식량 소비 증가로 중국은 향후 주요 곡물을 포함한 식량의 수입 의존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중국의 식량 수입 증가는 국제 식량 가격의 상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중국에는 전 세계 20%의 인구가 살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쌀·옥수수·밀의 교역량은 아직 중국 소비량의 22%, 58%, 126%에 불과하다. 중국 내 소비량이 세계 전체의 교역량을 훨씬 넘어서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정진우 KOTRA 베이징무역관 과장은 “중국의 곡물 순수입 확대는 국제 곡물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한국과 같이 주요 곡물의 자급률이 현저히 낮은 국가의 식량 수급에 큰 위협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중국이 기상 악화로 급격히 수입량을 늘리자 전 세계 곡물 가격일 미친 듯이 상승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9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무려 79.2% 상승했고 대두 선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68%나 치솟았다.



매섭게 M&A 추진하는 중국 식품 기업

중국 대표 기업 ‘코프코’, 글로벌 곡물 메이저로
[곡물가 폭등, 재앙은 시작됐다] 중국, 세계 농산물의 ‘블랙홀’ 되나
중국 식품 기업들이 무서운 속도로 해외 식품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대표 곡물 기업인 중량그룹(中粮 코프코)은 28억 달러를 들여 아시아 최대 곡물상 노블그룹 지분 51%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 곡물 업계 사상 최대 M&A 건이다. 코프코는 지난 3월 28일 약 100년 전통의 네덜란드 곡물 회사 니데라의 지분 51%를 약 13억 달러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들어 코프코는 카길·아처대니얼스미드랜드(ADM)·벙기·루이드레퓌스·가낙 등 글로벌 곡물 메이저가 주무르는 농수산물 유통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코프코는 2015년까지 1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M&A 5개년 계획을 지속할 예정이다. 또한 2012년 거래 가능 물량을 5000만 톤에서 2015년까지 7700만 톤으로 늘리는 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세계 식품 시장 경쟁에 뛰어든 중국 기업은 비단 코프코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엔 중국 육류 가공 업체 솽후이가 미국 최대 육가공 업체인 스미스필드 푸드를 71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중국 기업의 미국 기업 M&A로는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중국 유제품 기업인 광밍그룹은 이스라엘 최대 유제품 기업인 트누바 식품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밍식품이 현재 트누바의 자산을 실사 중이며 인수 가격은 26억 달러(약 2조76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광밍그룹은 앞서 2012년엔 영국 시리얼 업체 위트빅스 푸드 지분 60%를 인수했다.

블룸버그통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식품, 농업 기업의 글로벌 M&A 규모는 169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2년 24억 달러의 7배가 넘는 수준이다.

중국이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해외 식료품 곡물 기업을 사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자국의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중국은 올해 농업정책의 주요 목표로 국가 식량 안보 확보를 제시했다. 특히 경작지 감소와 황무지화, 노동인구 감소 등 중국의 식량 안전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이홍표 기자 haw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