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에크발 H&M코리아 지사장

[김나영의 패션 비즈] “패션은 돈 있는 일부만 누리는 게 아니죠”
한경비즈니스는 이번호부터 방송 예능인에서 연예계 대표 패셔니스타로 변신한 김나영 씨와 패션 브랜드 최고경영자(CEO)와의 시리즈 인터뷰를 진행한다.

김나영 씨는 지난해 세계 4대 패션쇼 중 하나인 ‘2014 SS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해 10여 군데 이상의 해외 유명 패션 매거진 홈페이지의 메인을 장식했고 각종 패션 화보가 화제를 모으며 ‘웃기는 여자’에서 ‘옷 잘 입는 여자’로 거듭났다. 현재 자신만의 패션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지난 2월엔 그녀의 스타일링 노하우를 담은 에세이 ‘마음에 들어’를 출간해 작가로서의 타이틀도 얻게 됐다.

이처럼 패션을 통해 자신만의 유니크한 런웨이를 걷고 있는 그녀가 처음 만난 인터뷰이는 스웨덴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인 H&M의 필립 에크발 한국 지사장이다. 그는 지난해 H&M 파티에 참석했던 김나영의 과감한 스트리트 패션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며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H&M의 국내시장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2010년 한국에 진출한 H&M은 지난 회계연도(2012년 12월~2013년 11월)에 전년 대비 36.3% 증가한 매출 1226억 원을 기록했다. 4년 새 3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지난 2월 19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H&M 쇼룸에서 진행된 이번 인터뷰에서 김나영 씨는 자신이 아끼는 H&M의 롱 슬리브 재킷을 ‘센스 있게’ 입고 와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김나영의 패션 비즈] “패션은 돈 있는 일부만 누리는 게 아니죠”
김나영 지난해 H&M 파티에서 봤던 게 기억나요. 지사장님이 키도 크고(그는 185cm에 슬림한 몸매의 소유자다) 스타일리시해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거든요.

에크발 저도 나영 씨의 패션 스타일을 주목하고 있었어요. 항상 과감한 믹스 맥치로 ‘쿨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나영 이건 부끄럽지만 제가 직접 쓴 책이에요.

에크발 (책을 넘겨보더니) 디테일에 관한 부분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도 무척 인상 깊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스타일에 대해서는 과감한 편이 아니지만 컬러는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나영 씨의 책이 많은 영감을 줄 것 같은데요.



한국 진출 4년 만에 매출 1000억 원 돌파

김나영 영광이에요. 요즘 소비자들처럼 저도 SPA 브랜드를 자주 찾는 편인데요, 한국에서 H&M·자라·유니클로와 같은 브랜드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크발 우선 한국은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패션에 관심이 무척 많습니다. 세계시장에서 SPA가 강세이기 때문에 패션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또한 이를 발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죠. 자신들만의 패션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브랜드라면 한국은 (진출하기에) 완벽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H&M은 최고의 패션, 좋은 품질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 기본적인 경영 이념이자 최고의 강점으로 손꼽힙니다. 우리는 전 세계 3100여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큰 기업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패션과 품질은 절대로 낮은 수준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한 원칙 때문에 큰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김나영 지금 여기 쇼룸에 있는 옷들은 아직 매장엔 나오지 않은 ‘신상’이잖아요. SS(봄·여름) 시즌의 콘셉트는 뭔가요.

에크발 지난 FW(가을·겨울) 시즌에 선보인 ‘보헤미안’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작년 가을에는 ‘파리지엔 스트리트 시크’가 강세였다면 이번 봄 시즌은 도회적인 느낌에 모로칸(북아프리카 모로코의 민족 의상에서 모티프를 얻은 스타일)이나 오리엔탈 무드의 색다른 터치가 가미됐어요. 그리고 (나영 씨가 입은 가죽 아우터를 가리키며) 이미 나영 씨가 봄 시즌의 대표 소재를 간파한 것 같은데요. 이번 봄에는 가죽을 많이 선보일 것이고요. 남성복은 시원해 보이는 프린트가 있는 저지 소재의 블루종(점퍼 스타일의 짧은 상의) 재킷, 여성복은 스웨이드 블루종 재킷 등이 핵심 아이템으로 출시됩니다.

김나영 에크발 지사장님은 서울 생활 8개월 차인데요. 한국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 어때요?

에크발 한국인들은 모두가 무엇을 입어야 할지, 어떻게 입을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는 게 눈에 보입니다. 또 여성이 패셔너블한 나라는 많지만 남성들도 패션 감각이 뛰어난 나라는 많지 않은데, 한국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옷을 잘 입어서 놀라웠습니다.

김나영 그래서 지사장님은 한국에 와서 긴장을 좀 하셨나 봐요? (좌중 웃음)

에크발 아마도요. (웃음)



‘이자벨 마랑’ 한정판에 수백 명 줄 서

김나영 그나저나 제가 쇼핑을 다니면서 정말 궁금했던 것인데요, H&M은 명동에도 가까운 곳에 매장이 2군데나 있고 압구정동이나 가로수길에도 서로 멀지 않은 곳에 매장이 있어요. 왜죠?

에크발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는 모든 고객들이 굳이 먼 길을 가지 않더라도 H&M을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핵심 입지 내에 여러 개의 점포를 엽니다. 스톡홀름에 가보면 가까운 코너마다 H&M 매장이 늘어서 있는 거리도 있어요.

김나영 H&M은 2004년 샤넬의 칼 라거펠트를 시작으로 스텔라 매카트니, 빅터앤롤프, 로베르토 카발리, 지미 추, 랑방, 베르사체 등 매년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컬래버레이션)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있죠. 작년엔 한국에서도 이자벨 마랑 한정판 컬렉션을 사려고 새벽부터 수백 명이 매장 앞에 줄을 섰는데요, 인기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에크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그동안 갖고 싶던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 제품을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인기가 많습니다. 매년 11월마다 선보이는 컬래버레이션은 더 많은 고객들에게 최고의 패션을 쉽게 전달하고 싶다는 우리 브랜드의 기존 취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패션은 일부 돈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게 아니고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우리 브랜드의 경영 이념이 잘 반영된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매우 뿌듯합니다.

김나영 저는 작년에 파리 패션위크에 가기 위해 하던 일도 그만뒀고 적금 통장도 깼어요. 옷을 사려고 차도 팔았고요. 어렵게 번 돈을 옷에 다 쓴다고 다른 사람들은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제가 이토록 좋아하는 패션을 위해 제 전부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랬는데요. 지사장님도 패션에 미쳐서 ‘올인’했던 경험이 있나요.

에크발 나영 씨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롭네요. 전 패션을 위해 차를 팔지는 않았지만 저 또한 꽤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해 산다기보다 너무 좋아 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해 사는 경우가 많아요. (웃음) 단지 패션이 좋다는 그 이유만으로요. 그 덕분에 제 옷장은 항상 꽉 차 있지만 모두 좋아하는 옷들이라 버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옷이란 건 음식과 비슷해 한동안 주력해 찾게 되는 아이템이 있거든요. 잘 안 입게 되는 옷이라고 해도 1, 2년 후엔 또 입고 싶어지기 때문에 늘 보관해 둡니다.

김나영 H&M은 해외시장에서 성공한 의류 회사잖아요. 국내 기업에게 해외 진출 팁을 주자면요.

에크발 H&M도 단기간에 성공한 회사가 아니에요. 1947년에 첫출발했어요. 제가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유행이나 소비자가 원하는 것만 고민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더 집중하는 게 중요합니다.

김나영 끝으로 한국에서 H&M의 향후 사업 계획은 무엇인가요.

에크발 앞으로 매장을 더 확대하고 성장을 강화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이고요. 자매 브랜드인 ‘COS’와 ‘H&M 홈(Home) 라인’도 상반기 중에 론칭할 예정입니다.


돋보기 | 비즈니스맨을 위한 스타일링 노하우
“트렌드만을 따르지 말라.”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바이어를 만날 때마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늘 고민하는 직장인을 위한 필립 에크발 지사장의 조언이다. 그는 “블랙 슈트와 스트라이프 슈트 등의 유행 공식을 따라 하기보다 과감하게 자신을 표현하라”며 “양말과 슈즈의 매치, 벨트 활용, 블레이저 포켓의 무늬나 색상, 행커치프 등을 통해 간단하지만 특별한 룩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에크발 지사장은 “매우 클래식한 슈트에 평범한 넥타이를 매치하는 대신 아주 좁고 샤프한 타이를 매는 것만으로도 룩이 확 달라진다. 다양한 소재와 컬러의 셔츠, 타이만으로도 충분히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정리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