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기간 맞춰 직급·임금 오르는 체제는 지속 불가능

[신현만의 CEO 코칭] ‘연봉 9000만 원 경비원’우리 회사엔 없을까
Q
저는 중견기업의 인사 담당 임원입니다. 머지않아 정기 인사를 해야 하는데, 매번 인사 때마다 늘 같은 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대부분이 장기근속자입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나이가 많고 직급과 연봉도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회사는 몇 년 전부터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매출이나 조직 규모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나이와 재직 기간에 걸맞게 직급이 높아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외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은 직급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직급을 계속 높이다간 ‘전 직원을 임원으로 만드는 상황’을 걱정할 것 같습니다. 또 승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보상에 대한 기대도 부담스럽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A 몇 년 전 감사원이 상당히 충격적인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운전사와 경비원의 평균 연봉이 6000만 원대이고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받는 직원의 연봉이 무려 9100만 원에 이른다는 것이었죠. 당시 한국은행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어떻게 운전사나 경비원 같은 단순 업무 종사자에게 1억 원에 가까운 연봉을 지급할 수 있느냐’며 한국은행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현실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행은 공공기관의 특성상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재직 연수가 25년을 넘어서면 정규직 청원경찰의 경우 연봉 수준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물론 직무 특성상 하는 일은 입사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호봉은 매년 높아졌을 것이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직급도 올랐을 것이기 때문에 재직 기간이 긴 직원은 연봉이 많아졌겠죠.

운전사나 경비원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어 그렇지 우리 주변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입사 후 줄곧 같은 일을 해도 직급이 오르면서 연봉도 따라 올라가는 현상을 아직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겁니다. 그러나 경영 차원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직원의 조직 기여도는 커지지 않는데 연봉이나 복리후생에 따른 비용만 늘어난다면 기업의 부담이 커지게 됩니다. 만약 이런 직원이 상당수에 이른다면 회사가 경쟁력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조직 기여도 커지지 않는데 비용만 늘어나
귀하의 고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직원들은 재직 기간이 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승진과 연봉 상승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의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승진과 연봉 상승이 계속되면 회사의 경영 사정은 어려워질 겁니다. 그렇다고 직원들의 승진과 연봉 상승 기대를 마냥 억누르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다간 우수한 인재들이 이탈하면서 회사가 흔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글로벌 기업에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에선 같은 자리에서 승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똑같은 업무를 하면서 직급이 높아지고 연봉이 늘어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승진하면 업무량이 늘고 업무 범위도 넓어집니다. 따라서 직원이 승진하려면 업무 역량이 높아져 있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에서 승진을 꿈꾸는 직원들이 자기 계발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업무에 따라 직급이 정해져 있습니다. 홍보 직무를 예로 들어 봅시다. 어떤 글로벌 기업은 국내 홍보의 신문 담당은 차장이, 국내 홍보 총괄은 부장이, 회사 전체 홍보 총괄은 상무가 맡고 있습니다. 또 홍보와 대관(對官),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는 임원은 전무입니다. 따라서 이 회사의 홍보 담당 차장이 국내 홍보의 신문 담당으로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장으로 승진하기 어렵습니다. 승진하려면 국내 홍보를 총괄하는 자리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잡지 등 국내 미디어 전반에 대한 안목과 네트워크를 갖춰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장이 상무로 승진하려면 국내는 물론 해외 홍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만약 넓은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승진이 불가능합니다. 그는 재직 기간이 늘어도 같은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의 회사에 대한 기여도 평가는 바뀌지 않습니다. 당연히 연봉도 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글로벌 기업은 직원이 장기근속하더라도 한국 기업처럼 회사의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더구나 글로벌 기업에선 같은 자리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고 승진이 안 되면 그 직원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떠나게 됩니다. 승진하지 않으면 떠나야지 한국 기업처럼 승진도 못하면서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귀하의 회사도 이런 시스템을 도입해 보십시오. 물론 도입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입니다. 내부 저항이 적지 않겠죠.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런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회사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시도하는 것, 그래서 직원들의 생각과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성과 보상으로 승진시키면 조직 망친다
승진과 관련해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 목적만으로 직원을 승진시키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는 가끔 탁월한 성과를 내서 승진한 직원이 조직의 책임을 맡았다가 낙마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조직의 책임자로서 적합한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성과는 조직 책임자의 리더십 크기에 비례합니다. 이에 따라 어떤 조직 책임자가 부진한 성과를 거뒀다면 그는 리더십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성과는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까요. 성과급이나 연봉입니다. 어떤 직원이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면 그에 따른 성과급을 주고 다음해 연봉을 올려주십시오. 그러나 거기에서 그쳐야 합니다. 그를 승진시켜서는 안 됩니다.

승진은 언제 시키냐고요? 리더십이 확인됐을 때 하십시오. 어떤 차장이 많은 성과를 만들어 냈지만 부장급에 필요한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다면 성과급 지급과 연봉 인상에 머물러야 합니다.

성과는 연봉으로 보상하고 리더십은 승진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성과를 잘 냈다는 이유만으로 직원을 승진시킵니다. 일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성과급이나 연봉만으로 성과를 보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승진을 성과 보상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직 책임자들의 리더십 때문에 조직 운영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의 주요 선발 기업들도 이미 성과와 승진을 직접 연계하지 않습니다. 성과는 승진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기업들은 간부를 육성하기 위해 유능한 직원을 핵심 인재로 선발해 별도의 리더십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군대에서 장교를 따로 뽑아 지휘관 교육 훈련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선발된 핵심 인재들은 성과가 아니라 리더십으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