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로 계약을 파기하는 정부와 투자 계약을 하고 싶은 투자자는 드물 것이다. 투자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겼다. 서울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더니 결국 맥쿼리를 쫓아내고 서울시가 요금 결정권을 가져왔다. 지하철 9호선의 주주는 맥쿼리에서 현대로템 등의 지하철 9호선과 직접 관련이 있는 기업들로 교체됐다. 박 시장이나 시민들은 승리로 보겠지만 투자했던 맥쿼리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당한 것이다. 물론 교체된 새로운 주주들로부터 대가를 받고 넘긴 것이기는 하지만 계약을 파기 당했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선례가 생겼으니 지자체들의 민간투자(민자) 사업 계약 파기가 줄을 이을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들마다 예전에 맺은 민자 사업 최소 수입 보장 계약 때문에 막대한 재정자금이 들어가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그 돈을 주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일 터다. 지자체들이 그렇게 하면 국제적인 체면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던 국토교통부마저 민자 국책 사업에서 똑같이 나올지 모른다.

이것은 잘하는 일일까. 사업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지하철 9호선만 놓고 보자. 지하철 9호선에서 맥쿼리를 쫓아낸 건 박 시장 측의 말대로 시민의 승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당장은 이익일 수 있지만 조금만 지나면 오히려 시민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길게 보면 크나큰 악수를 둔 것이 될 것이다.

당장은 이익일 수 있다고 한 것은 맥쿼리의 지분 가치를 싸게 인수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9호선의 당초 수익률은 8.9%였다. 그런데 박 시장이 새로운 주주들에게 보장한 수익률은 4.8%다. 새로운 주주들이 맥쿼리의 지분을 인수하며 지불한 7464억 원은 연수익 4.8%에 대한 대가다. 8.9%와 4.8%의 차이만큼 맥쿼리는 손해를 봤고 서울시는 일차적인 이익을 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래를 서울시의 이익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새로운 주주들과의 계약이 수입이 아니라 ‘이익’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맥쿼리에는 운임 수입만 보장해 주면 됐다. 즉 비용엔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주주들에게는 서울시가 4.8%의 이익을 보장해 줘야 한다. 비용이 높아지면 그것을 모두 서울시가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기료가 올라도, 파업으로 노동비용이 올라도 모두 서울시가 재정으로 채워 줘야 한다. 새로운 또 하나의 공기업을 떠안게 된 셈이다. 구체적으로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걱정은 서울시,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의 신용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계약을 파기하는 정부와 투자 계약을 하고 싶은 투자자는 드물 것이다. 투자하더라도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것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민자 사업들의 수익률은 시장금리에 장기 투자에 따른 위험 프리미엄을 더한 수준에서 결정됐다.

한국은 개방된 국제 자본시장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국제적 고립에 이르는 길로 들어섰다. 선진국이라면 이처럼 막무가내로 계약을 파기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민자 사업 계약의 파기를 중단해야 한다.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
1956년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2000년 숭실대 법학 박사.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7년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2004년 자유경제원 원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현). 프리덤팩토리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