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펀드의 왕’ 화려하게 귀환…지난해 6조 원 수익

[트렌드] ‘세 수 앞 내다보는’ 조지 소로스 투자 저력
“정확한 예측 아닌 불확실에 베팅하라.” 세계적 투자가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인간의 오류와 불확실성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투자나 사업, 삶 자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냉철한 투자가의 말이라기보다 철학자의 주장으로 보일 법한 이 말은 소로스 회장의 투자 철학을 함축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를 덮친 후 투자가들이 대부분 안전 자산을 찾을 때 그는 자신의 투자 철학에 입각해 위험 자산으로 일컬어졌던 미국 주식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는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소로스 회장은 지난해 55억 달러(5조9000억 원)의 수익을 올려 ‘헤지 펀드의 왕’ 명성을 되찾았다. 퀀텀펀드의 창립자 소로스 회장은 2011년 이미 은퇴를 선언, 자신의 자금만 굴리고 있는 가운데 다시 한 번 건재를 과시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소로스 회장은 금융회사의 자기자본 거래 규정을 강화한 ‘도드-프랭크 법’을 피해 2011년 말 가족 자금으로만 운용하는 펀드를 출시했다. ‘퀀텀인다우먼트펀드’는 보유한 투자 자산을 매일 사고팔아 (자금)회전율을 높였다.


워런 버핏 뛰어넘는 수익률
소로스 회장은 지난해 일찍이 미국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한때 금융 자본주의의 총아로 각광받던 헤지 펀드가 추락한 가운데 퀀텀인다우먼트펀드의 작년 미국 주식 투자수익률은 32%를 기록했다. 소로스 회장의 펀드는 1973년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총 396억 달러를 벌어 헤지 펀드 업계 1위를 기록했다. 지난 30년간 그가 거둔 수익은 5.3배 수준으로 사실상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을 능가하고 있다. 현재 28.66%의 연간 수익률로 버핏 회장의 24.7%보다 앞서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글로벌 투자가들이 소로스 회장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하며 투자의 혜안을 얻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그가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주식은 올해 가장 좋은 투자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소로스 회장은 주가 상승이 한창이던 지난해 4분기에 시장 흐름과 정반대로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


소로스 회장은 시장의 먹을거리를 아주 잘 찾아다니는 여우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소로스 회장은 투자할 때 가설을 세운 다음 시장에 살짝 발을 들여 놓아 본 후 움직임을 보면서 그 가정을 확인하는 전략을 취한다. 즉 시험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시장의 상황을 살피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이를 철회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가설에 대해 완전히 확신이 들고 매입을 결정지었을 때 소로스 회장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소로스 회장의 투자처를 분석한 현대증권의 ‘조지 소로스 포트폴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소로스 회장의 펀드는 정보기술(IT) 업종 투자 비중이 18.7%로 가장 높았다. 상장지수펀드(ETF)와 옵션 투자 26.2%로 포트폴리오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에너지 15.4%, 경기 소비재 8.4%, 필수 소비재 8.1%, 통신 7.9%, 기초 소재 4.4%, 산업재 4.2%, 헬스 케어 4.2%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현재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특징은 다수의 종목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트폴리오 내 비중 1위 종목은 테바와 2위인 허벌라이프를 포함한 상위 6대 종목(나머지 페덱스·핼리버턴·Eqt·아데코아그로)의 비중은 50%를 넘지 않는다. 그만큼 다양한 종목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총액은 약 117억 달러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세계 1위 제네릭 제약 기업인 테바에 대한 투자를 주목할 만하다. 소로스 회장은 지난 4분기 동안 테바의 주식 570만 주를 추가 매입해 총 3억7000만 달러어치, 포트폴리오의 4% 수준까지 그 비중을 점차 확대해 가는 양상이다. 테바는 주력 상품인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인 ‘코팍손’의 특허권이 2014년 5월 만료될 예정으로 투자자들의 우려가 지속됐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테바는 기존에 매일 투여하던 제품을 주당 3회만 투여하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특허권을 2030년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기존 환자들이 새 제품 이용으로 전환해 매출 하락을 상쇄했다. 2월 초 발표한 테바의 지난 4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5.5% 수준의 순이익 개선을 보였고 일부 일회성 항목을 제외한 순이익 역시 주당 1.42달러로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결과를 내놓았다.


시장 관심 쏠리면 과감히 매도
소로스 회장이 최근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한 곳 중 하나는 에너지 기업인 아데코아그로다. 이 회사는 남미에 약 28만 헥타르의 농지를 소유하고 옥수수·밀·대두 등의 농작물을 생산하며 브라질 등에 에탄올을 팔아 매출을 늘렸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24% 늘었고 영업이익은 364% 증가했다. 소로스 회장은 이곳에 21.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운송 업체인 페덱스 역시 소로스 회장은 역발상의 투자 기법을 발휘했다. 페덱스 배송사업부는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수요의 변화로 지속적인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다. 하지만 소로스 회장은 지난 3분기 동안 페덱스에 대한 롱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152만 주를 사들이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페덱스는 연료 효율이 높은 항공기로 대체하며 비용을 줄이고 배송 부문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자상거래 부문이 페덱스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소로스 회장은 희망을 갖고 계속 매입하고 있다.

반면 소로스 회장은 시장의 관심이 쏠린 주식들은 과감히 처분하며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건강보조식품 판매 기업인 허벌라이프,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매도 대상이다. 허벌라이프는 소로스 회장이 지난해 8월 주식을 대규모로 매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자 소로스 회장은 500만 주까지 늘렸던 허벌라이프 주식을 최근 들어 320만 주로 줄였다. 또한 소로스 회장은 JC페니의 지분을 매입해 4대 주주로 올라서 시장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실적 부진과 경영진 교체 갈등으로 얼룩진 JC페니의 주식을 지난해 4분기 동안 전 분기 대비 30% 정도 비중을 줄였다. 한편 소로스 회장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 차지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도 매도 대상으로 분류돼 주식을 처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로스 회장의 시장과 반대로 가는 역발상은 최근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연말 S&P500 기준으로 1690선에서 1840선까지 9.9% 상승세를 보인 까닭에 미국 주식은 올해 가장 좋은 투자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소로스 회장은 주가 상승이 한창이던 지난해 4분기에 시장 흐름과 정반대로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헤지 펀드는 지난해 4분기에 S&P500 ETF에 대한 풋 옵션 포지션을 전 분기 대비 154% 늘렸다. 풋 옵션은 해당 자산이 제한된 시간 내에 특정 가격으로 떨어질 경우 이 자산을 매도할 수 있는 권리로, 통상 특정 자산 가격의 하락세를 예상할 때 사용한다. 소로스 회장은 지난 1월 중국발 위기 가능성을 지적하며 글로벌 주식시장의 하락세가 예상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소로스 회장의 펀드는 시장의 대세와 정반대로 혹은 세 수 앞서 움직이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이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이유다. 현재 지난해 연말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가 무엇을 보유했는지 현재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가 제출한 투자 보고서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올해 1분기 역시 소로스 회장이 무엇을 사고팔았는지 알려면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가 다시 투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동물적 감각으로 투자한다”는 소로스 회장의 투자 일거수일투족을 많은 이들이 주시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