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 출구전략으로 외환·금융시장 동요 가능성
정책과 투자 관점에서 한 나라의 경제 성과를 성장률, 물가 상승률, 실업률, 경상수지를 축으로 하는 사사분면의 모양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자주 활용된다. 마름모(◇) 꼴로 균형이 잡히면 ‘긍정적’, 일그러지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8% 내외로 추정되고 경상수지 흑자는 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로 안정되고 실업률은 3%대로 다른 국가에 비해 낮았다. 사사분면에 그대로 찍어보면 4대 거시경제 목표 간에 비교적 균형이 잡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책 당국(한국은행 포함)이 내놓은 올해 한국 경제의 모습은 더 나아진다. 가히 ‘이상적’이란 표현이 어우릴 만하다. 성장률은 4%에 근접하고 실업률은 3% 내외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로 오르고 경상수지 흑자는 500억 달러 내외로 줄어들어 각각 ‘디스인플레이션(D) 공포’, 과다 논쟁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업과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체감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세계시장과 달리 한국만 좋지 않은 ‘디커플링 현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흔히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꽃은 활짝 피어야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경제학에서 외부경제를 설명할 때 꽃밭을 자주 예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꽃밭을 만들 때 드는 사적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지난해 세계 증시는 평균 15% 이상 올랐지만 코스피 지수는 2012년 말 수준보다 더 떨어졌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와 증권인 그리고 증시 관련 이해관계인이 죽어가는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과 함께 이제는 투자자마저 증시를 떠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었다.
진짜 새벽이 온 것인가
올 들어 부동산을 중심으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의미다. 물가도 그렇다. 최근 1년간 한국의 성장률은 올라가는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 일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떨어지는 원인에 대해 민간에서 우려하는 총수요 부족이 아니라 원자재 값 하락 등과 같은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준금리 변경과 관련해 이 논쟁은 아주 중요하다. 총수요 부족에 있다면 부동산 경기 등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 반대로 공급 측 요인에 있다면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지금처럼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원자재 값만 오르면 곧바로 물가가 올라갈 소지가 높기 때문에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업률에 대해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보다 엄격한 의미의 국제노동기구(ILO) 개념을 적용해 한국의 실업률을 재산출하면 현 수준의 4배에 달할 것이라는 추계도 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은 ‘네오 러다이트(첨단 기술 수용을 거부하는 반기계 운동)’를 전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경상수지 흑자도 많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6%(GDP 대비)에 달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회담에서 우리가 제안했던 ‘4% 룰’에 스스로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는 경쟁국의 원화 절상 요구에 맞설 근거가 약해져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는 적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한 때가 됐다는 의미다.
닭은 새벽에 울어야 한다. 한밤중에 울어 ‘가짜 새벽(false dawn: 혹자는 잘못된 새벽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리면 잠을 설쳐 더 오래 자야 하거나 일어나더라도 몸이 개운하지 않다.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냄비 속 개구리의 교훈(boiled frog syndrome)’을 계속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가·물가·체감경기 ‘불안정’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당면 과제는 테이퍼링(tapering:양적 완화 규모 축소)을 첫 단추로 시작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출구전략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이 약 3조5000억 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한국 경제 곳곳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미국의 시장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5월 말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출구전략 가능성을 처음 언급한 이후 미국의 시장금리가 일제히 올랐다. 기준금리를 올리기 이전이더라도 출구전략만 시작되면 대표 금리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명목성장률 수준(현재 4% 내외) 만큼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 흐름이 각국 간 금리 차에 따른 캐리 자금의 성격이 짙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달러 강세가 예상된다. 출구전략이 처음 언급된 이후 신흥국 환율이 급등했다. 출구전략 추진만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하락 요인도 만만치 않아 그 폭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재정환율 성격상 분자인 원·달러 환율보다 분모인 중국을 제외한 신흥국 환율이 더 오른다면 원화 가치는 절상된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테이퍼링 추진 이후 대내외 금융시장이 작은 변수에도 크게 흔들리는 ‘와블링 이코노미(wobbling economy)’와 오를 때 더 올라가고 내릴 때 더 내려가는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이 심해지고 있는 점이다. 외환시장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잔물결 효과(riffle effect)’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기업들이 효과적인 환 위험 관리 방안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환 위험으로 또 한차례 어려움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 위기 이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환 위험 관리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한다.
용어 설명
잔물결 효과(riffle effect)는…
호수에 큰 돌을 던지면 한 차례 큰 파동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호수 가장자리에까지 이어지는 작은 파동을 말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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