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기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

일요일 밤 온 가족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는 KBS 2TV 개그 콘서트(개콘). 몇 해 전 ‘두 분 토론’이란 코너가 있었다. 여기에서 ‘남하당(남자는 하늘이다 당)’ 박영진 대표는 ‘여당당(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김영희 대표와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설전을 벌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어르신’이란 인기 코너도 있었다. 여기에서는 노인으로 분장한 김대희가 “소고기 사묵겠지~”라며 사투리가 섞인 우스꽝스러운 말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했다.

강성기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개콘의 두 유행어 “소는 누가 키우느냐”와 “소고기 사묵겠지~”였다.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질문을 던지면 바로 “제가 키웁니다”란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나이를 예측하기 어려운 당당한 체격과 부리부리한 눈이 그랬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살짝살짝 비치는 눈웃음에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가 “소고기 사묵겠지~”로 친근하게 다가왔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한국인 육류 소비량 아직 한참 부족하죠”
강남에 판매가 20~30% 싼 직거래 매장 열어
무엇보다 ‘한우 자조금’이란 단어가 무척 생소했다.
“자조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우 자조금은 한우 농가들이 스스로를 돕기 위해 만든 자금입니다. 농가에서 한우를 정성스럽게 키워 높은 등급의 소를 생산하더라도 시장에서의 소비가 없으면 한우 값은 떨어지게 되고 농가의 소득 감소로 이어집니다.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광고나 홍보가 절실한데, 한우 농가 개개인이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도축장에 한우를 출하할 때 마리당 2만 원을 갹출해 그 돈으로 다양한 소비 촉진 활동을 합니다.”

안전하고 투명한 자조금 사용을 위해 ‘축산 자조금의 조성 및 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5년 5월 관리위원회까지 구성된 것이다.

강 위원장은 2012년 4월부터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 2년여 동안 청계광장에서 한우 시식회와 직거래 장터를 수시로 열며 한우 팔기에 앞장서고 있다. 올 들어서는 ‘국민 남동생’ 이승기를 한우 지킴이로 위촉해 더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 위원장이 한우 일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말이다. 그전에는 남들처럼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과수원을 비롯해 해보지 않은 농사가 없었다.

“주변 친구의 권유로 축산 분야의 일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한우를 키우게 됐죠. 어릴 적 누렁이에게 꼴을 먹이는 일도 무척 즐거워 제가 전담했는데, 직업으로 소를 키우는 일 역시 자식 키우는 일만큼 애정이 가고 행복했습니다.”

열정적으로 한우를 돌본 덕에 큰 아들을 결혼시키고 둘째 딸은 대학원 공부까지 시킬 수 있었다. 2012년 4월 위원장직을 맡고 서울을 오가다 보니 김해를 자주 비운단다.

딱 걸렸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돌본단다. 결혼한 아들과 한우 키우는 일을 함께하는 게다. 얼마 전까지 200여 마리를 돌보느라 상당히 분주했는데, 인근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100여 마리로 줄이고 이전할 곳을 찾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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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땐 호주산 생고기의 수입이 결정된 2010년이다. 강 위원장은 이때 호주산 생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주도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25톤 트럭과 대치할 땐 ‘정말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불안감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물러서면 한우의 미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버텼지요.”

그래도 호주산 생고기의 수입은 저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노력으로 호주산 생고기가 소비자들에게 직접 도달하는 것은 막았다. 강 위원장은 “이 일이 본격적으로 한우의 경쟁력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한우에 대한 열정을 싹트게 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40대 중반 뒤늦게 시작해 20년도 채 안 돼 한우를 대표하는 인물이 된 비결을 물었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누구나 인정받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주변 사람들이 실패하도록 구경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도 무척 중요합니다.”

강 위원장은 사투리가 센 경상도 남자다. 부엌에 들어가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남자다. 물론 결혼 생활 30년이 넘도록 밥 한 번, 설거지 한 번 안 한 나쁜(?) 남자다. 그런 그가 요즘 달라졌다. 부엌에 스스럼없이 들어간다. 그리고 커피를 내려 아내에게 바친다.

“원두커피 맛을 알고 나서 손수 핸드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마십니다. 내리는 김에 두 잔을 내려 아내와 함께 마시는 거죠.” 말을 해놓고 무척 민망한 모양이다. 부인 자랑이 이어진다.

“우리 집사람은 음식을 굉장히 잘합니다. 소문난 음식점에 가 봐도 집사람이 만든 음식만큼 맛있지 않아요.” 이건 팔불출급이다. 주특기를 물었다. 쇠갈비찜·육개장·갈비탕이란다. 하나하나 기가 막힌다고 했다. 그런데 전부 쇠고기 요리다.

개인적으로는 한우 부위 중 경상도 사람들이 ‘안거미’라고 하는 토시살을 좋아한단다. 소 한 마리에 800g밖에 나오지 않는데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최고라고 했다. 특히 가을에 제철 송이버섯과 먹는 맛은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다고 칭찬한다.

강 위원장은 한우의 우수한 점이 많은데도 단지 ‘육식’이란 이유만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누구나 인정받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노력하면 주변 사람들이 실패하도록 구경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건 서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육류 소비량이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니 걱정하지 말고 채소와 함께 먹으며 균형적인 식습관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우 유통의 문제도 꼬집었다. 산지 한우 가격이 폭락해도 소비자들이 마트에서 사는 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 강 위원장은 유통 업계에 도전장을 낸다. 한우 직거래 판매장을 서울 강남 요지에 개설하는 것이다. 산지 가격에 운영비 정도만 더해 한우의 소비자가격을 대폭 낮춘다는 계획이다.

“올해 시범 점포를 하나 해보고 반응이 좋으면 내년에 점포망을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 근본적으로 유통 업계의 폭리에 제동을 걸면서 소비자가를 대폭 낮춰 한우 소비를 촉진하자는 겁니다. 대략 우리 판매장에선 20~30% 정도 싼값에 똑같은 한우를 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국민 모두가 ‘소고기 사묵겠지~’, 아니 ‘한우 사묵겠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