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싱크탱크를 가다 -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해외에서 더 유명한 ‘강소 연구소’… 네트워크형 모델로 재정 한계 극복
[스페셜 인터뷰] “한국 재단도 싱크탱크 후원에 나서야죠”
2002년 김병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동아시아연구원’ 간판을 처음 내걸 때만 해도 성공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형 국책 연구소와 대기업 연구소 틈바구니에서 독립계 싱크탱크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부친인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의 기금 출연으로 일단 연구소를 열었지만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가장 큰 난제였다. 김 교수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이 문제에 도전했다. 중견 기업가를 중심으로 후원 회원을 모집하고 해외 재단의 프로젝트 공모에 적극 참여해 연구 지원금을 따냈다. 연구원 운영도 네트워크형 모델을 채택했다. 상근 연구자를 최소화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외부 학자들을 묶어 연구를 진행한 것이다.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외국에서 더 주목받는다”며 “펜실베이니아대가 실시한 ‘2012년 글로벌 싱크탱크 조사’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에 이어 한국 3위를 차지한 게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김 교수가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외교안보수석에 발탁되면서 원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난 1월 8일 을지로4가 삼풍빌딩 9층 연구원에서 이 원장을 만났다.


독립 민간 싱크탱크 중 드물게 자립에 성공했는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모든 독립계 연구소의 가장 큰 고민은 재원 확보입니다. 국책 연구소처럼 정부가 보조해 주지도 않고 대기업 연구소처럼 돈이 많지도 않거든요. 연구원을 세운 김병국 전 원장은 창의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분이죠. 큰 기업은 아니지만 탄탄한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국제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을 모아 후원 조직을 만들었어요. 현재 연구원 1년 예산이 20억 원 정도인데 이 중 3분의 1을 후원금으로 충당합니다. 적게는 1만 원부터 후원금을 주는 개인 회원도 많죠. 중견 기업가와 일반 회원을 합해 250명쯤 됩니다.


후원 회원에 어떤 혜택을 줍니까.
매년 회원을 위한 포럼을 3번 개최합니다. 토론도 하고 여행도 함께하면서 왜 연구원을 후원해야 하는지 스스로 느끼게 하는 거죠. 2개월에 한 번씩 사랑방 모임을 열어 강연도 열고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공적인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볼 기회가 적거든요.


후원금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요.
연구원 수입 중 해외 후원금 비중이 매우 높아요. 2012년에 30% 정도였죠. 한국에는 싱크탱크를 지원해 줄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외국으로 눈을 돌린 결과예요. 일종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죠. 외국 재단의 프로젝트 공모에 신청해 지원금을 따내는 겁니다. 2008년 미국 맥아더재단의 ‘아시아 안보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에 핵심 기관으로 선정돼 3년 동안 지원을 받았어요. 2013년 중진국 외교 전략 연구 프로젝트에도 선정됐고요. 맥아더재단은 시카고에서 보험업으로 거부가 된 존 D. 맥아더가 만들었어요. 미국 10대 재단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크죠. 미국은 이런 공익 재단들이 민간 싱크탱크와 대학 연구소들을 거의 먹여 살립니다. 한국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걸 전부로 생각하죠. 아직은 돈 가진 사람들이 연구를 지원한다는 개념이 없어요.


정부에서 만든 한국연구재단은 도움이 됩니까.
규제를 조금 풀긴 했지만 여전히 대학을 우선합니다. 한국은 국책 연구 기관이 많고 덩치도 크다 보니 따로 싱크탱크에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안 해요. 민간 연구소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저도 몇 차례 찾아가 이야기했지만 잘 바뀌지 않아요. 대학 연구소와 경쟁할 때 보면 여전히 대학을 더 선호하거든요. 오히려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 그리고 몇몇 기업가들의 개인적인 연구 후원이 더 도움이 됩니다. 정부 연구 용역은 금액이 적어 큰 의미가 없고요. 그나마 정부에서 중·장기 정책이나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가 필요해 발주할 때가 있는데 그건 괜찮습니다.


“국책 연구소들은 세계적으로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문제는 고객이 정부이기 때문에 독립성과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민간 재단들은 어떻습니까.
SK그룹에서 만든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밟는 유학생 지원 사업이 중심이죠. 최근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포럼을 개최하고 중국 학자도 많이 초청하고 있어요. 한국 싱크탱크에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봤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있죠.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장학금 지원만 하고요. 민간 재단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싱크탱크를 지원하는 곳이 거의 없죠.


연구원 운영 방식이 특이합니다.
상근 직원이 11명뿐이죠. 100명이 넘는 연구원을 거느린 국책 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소규모예요. 연구원의 핵심 연구 분야는 외교·안보와 한국 거버넌스죠. 여론분석센터가 이 둘을 지원하고 연결해 줍니다. 여론분석센터는 자체 연구 인력을 두고 자체 콘텐츠를 생산해요. 나머지는 모두 네트워크로 움직이고 상근 직원들은 이를 지원하는 일을 하죠. 그동안 교수들이 리드하는 연구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 놓았어요. 국가 안보, 일본 연구, 중국 연구 패널을 매년 구성해 운영합니다. 핵심 교수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나 활동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의견을 냅니다. 중요 이슈가 있을 때는 3~6개월 단위로 단기 패널도 구성하고요.


한국 싱크탱크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국책 연구소들은 세계적으로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비슷한 수준이에요. 문제는 고객이 정부이기 때문에 독립성과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거죠. 또 전부 한국 지향적인 연구만 합니다. 민간 연구소들이 이를 보완해 줘야 하는데 재정이 약해 제대로 활동을 못하죠. 그동안 동아시아연구원이 규모는 작지만 나름대로 그런 역할을 잘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발전 방향은 무엇입니까.
독립적인 싱크탱크라는 게 연구원의 가장 큰 강점이죠. 정치적으로도 초당파적이고요. 그동안 네트워크 모델로 성공했는데 이제는 규모를 좀 더 키우고 싶어요. 상주 연구원도 늘리고 점차 외부 학자의 의존도를 줄여야죠. 재정 문제가 걸림돌이에요.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해외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협력 제안이 와요. 앞으로는 미국 중심에서 벗어나 유럽 쪽을 강화하고 싶어요.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