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이번스 구단주·경제연구소 부회장 올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새로운 분야에서 뛰기 시작해 관심을 끈다. 최 부회장은 지난해 9월 SK건설 부회장직을 내려놓았지만 올해부터 그룹의 심벌 격인 SK와이번스의 구단주를 맡게 됐고 싱크탱크인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으로도 선임됐다. 기존에 SK케미칼·SK건설·SK가스 계열사에 한정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이 때문에 최 부회장이 계열 분리에 나서기보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해석이 흘러나온다.
최 부회장은 최 회장의 사촌 동생이자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현재 SK케미칼과 SK가스의 부회장 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최 부회장은 사실상 ‘SK케미칼 소그룹(SK케미칼·SK가스·SK건설)’을 독립 경영해 왔다. 최 부회장이 10% 정도의 개인 지분을 가진 SK케미칼을 통해 SK건설과 SK가스를 지배하면서 독자적으로 기업을 이끌어 온 것이다.

2012년엔 최 부회장이 이끄는 소그룹을 아우르는 가상 지주사(VHC:Virtual Holding Com pany) 개념을 도입해 3개 회사 간 기업 문화·인사·지역 등 3단계 통합 과정을 주도했기 때문에 당시 계열 분리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최 부회장이 지난해 9월 SK건설 부회장직을 내놓자 몇 년간 탄력을 받아 오던 SK그룹의 ‘계열 분리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분위기다.

최 부회장은 부회장직을 내려놓자마자 회사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 보유 중인 SK건설 주식 132만5000주(560여억 원어치)도 SK건설 법인에 무상 증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최 부회장의 SK건설 지분율은 9.61%에서 4.0%로 낮아졌다.


야구단 신년회 참석, 대외 활동 시동
SK건설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적자는 3000억 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건설 경기의 불황이 심화되자 자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최 부회장이 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 한때 알짜 계열사였던 SK건설의 자리를 내던지고 그룹으로부터 증자 받자 건설 계열사에 대한 최 회장의 지배력은 더 커지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일단 적자가 큰 건설 부문을 그룹에 털어내 홀가분할 것”이라며 “부회장직과 지분까지 내놓는 등 SK건설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선 현명한 선택인 듯하다”고 말했다.

SK건설의 부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계열 분리 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그 대신 최 부회장의 역할은 다른 쪽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해 마지막 날 SK그룹은 최 부회장을 야구단인 SK와이번스의 신임 구단주로 선임했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 회장을 대신해 정만원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아 왔는데 정 부회장이 퇴임했기 때문이라는 게 표면상의 배경이다. 최 부회장은 지난 1월 6일 SK와이번스 신년식에 참석하는 등 본격적인 대외 활동에 돌입했다. 그간 SK그룹의 얼굴은 최 회장이라는 생각 때문에 언론 노출 등 외부 접촉을 극도로 삼갔던 최 부회장의 평소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 부회장은 신년식에서 “구단주가 돼 무척 기쁘다. 난 심각한 야구팬이자 SK와이번스의 열혈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례적으로 언론 앞에 섰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는 야구선수가 되려고 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공부를 안 하고 계속 야구만 봐서 부모님이 걱정하셨을 정도”라며 야구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이어 “결혼식 전날에 야구장을 다녀왔고 결혼식이 끝나고 또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작년에는 류현진 선수의 경기를 보러 미국에도 다녀왔다. 그 정도로 야구광”이라고 말했다.

또한 SK그룹은 최 부회장에게 그룹의 싱크탱크인 SK경영경제연구소 부회장 자리도 맡겼다. 삼성경제연구소·LG경제연구원 등이 대외 경영, 경제 보고서를 발간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면 SK경영경제연구소는 그룹 내의 중·장기 과제를 연구하고 계열회사의 경영 컨설팅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 2002년 6월 설립된 SK경영경제연구소는 산하에 정보통신실·전자산업실·에너지화학실·경제연구실·경영연구실·글로벌기업분석실을 두고 있다. 특히 지난해 SK그룹의 새로운 지배 구조 모델인 ‘따로 또 같이 3.0’을 SK경영경제연구소가 주축이 돼 진행해 왔다.
그룹 관계자는 “이론과 실무에 밝은 최 부회장이 연구소의 기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그는 2002년 구조조정추진본부 재직 당시 SK증권 산하의 경제연구소를 SK경영경제연구소로 확대, 개편한 주역”이라고 말했다.

과거 연구소의 산파 역할을 한 그가 올해부터 연구소의 부회장직을 맡게 된 이상 ‘제2의 도약’을 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룹 경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싱크탱크를 맡게 된 이상 그룹 내 그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기대감에도 무게가 실린다.


‘행복’에 관심…인문학에도 조예 깊어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외부 노출이 적었던 최 부회장은 어떤 스타일의 경영자일까. 일찍부터 최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명석한 두뇌를 활용할 줄 아는 ‘기획통’으로 유명했다. 특히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에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한동안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계열사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서울대 심리학과와 미국 미시간대 MBA를 졸업한 뒤(석사 학위는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1994년 그룹 경영기획실로 첫발을 내디뎠다.

1996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기획관리실장으로 있을 때는 한국 최초로 명예퇴직제를 도입해 SK케미칼 직원을 3분의 1로 줄여 화제가 되기도 했고 쉐라톤워커힐호텔과 SK상사에서도 잇따라 명퇴를 통한 감량 경영 바람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한때 그룹 내에선 ‘구조조정의 리베로’, ‘다운사이징 전도사’로 통했고 이러한 업적 덕분에 최 부회장은 최 회장에게 능력 있는 경영자감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측근은 “최 부회장은 평소 ‘화안애어(和딁愛語)’를 추구하고 ‘호리지차 천지현격(毫釐之差 天地縣隔)’을 철학으로 삼는다”고 했다. ‘화안애어’, 즉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따뜻한 말로 상대방을 대한다는 것이고 ‘호리지차 천지현격’은 ‘털끝만큼의 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차이가 난다’는 뜻으로, 최 부회장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날마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임원들에게 종종 말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근면한 평화주의자’인 것이다.

또한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용타 스님이 만든 마음 수련 프로그램인 ‘동사섭’을 접한 후 30대 이후부터 깊게 빠져 수련을 빼놓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려 행복을 찾아 준다는 명상법에 감동받은 최 부회장은 경상남도 함양군의 동사섭 문화센터를 건립하는 데 30억 원의 기금을 출연하기도 했고 2012년엔 SK건설 빌딩 내에 서울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밖에 인문학·예술 등에 관심이 많아 연세대 김상근 교수가 주축이 된 플라톤 아카데미를 후원하거나 서울대 후배인 최인철 교수의 서울대 행복연구센터를 후원하고 청소년에게 가르칠 ‘행복 교과서’ 집필에도 연구비를 지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 부회장은 치열한 경쟁보다 행복 전파 등에 관심이 더 많은 편이며 최근 맡게 된 역할도 그룹의 핵심인 에너지·통신 부문이 아니라 비핵심 부문이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SK그룹은 현재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의장을 맡아 수펙스추구협의회의 집단 경영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협의회는 김 의장, 하성민 SK텔레콤 대표 등 최고경영자 6인으로 구성돼 있다. 일상적인 사업 전개는 집단 경영 체제로 큰 문제가 없지만 오너 공백 2년 차를 맞아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거나 대형 프로젝트 등은 사실상 유보된 상황이다.

지난 1월 2일 김 의장은 최 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신년사를 발표하며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가는 시기, 최 회장의 경영 공백이 아픔을 더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최신원·최창원 등 창업주 아들들의 그룹 내 지분율은 극히 낮으며 오너 대체 인물과 관련된 이슈는 논의된 바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