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미루는 것은 신중함보다는 핑계

Q 우리 회사는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지난해 사장을 맡은 이후 각종 경영 통계를 꼼꼼히 들여다봤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생산성 지표가 훨씬 낮았습니다.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경쟁 회사들과 비교해 봤는데 업종 특성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올해부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회사 차원의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생산성이 현재처럼 낮아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엇부터 그리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임원들에게 생산성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현재 방식으로 일해 와서 그런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A ‘강소기업’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창안한 개념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몬 교수는 독일의 중견·중소기업 2000여 곳을 조사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1200여 기업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총매출이 40억 달러 이하이며 세계 시장점유율이 3위 이내 이거나 소속 대륙의 시장점유율이 1위였습니다.

한국 정부도 국가 경제 차원에서 강소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청은 2011년부터 ‘월드 클래스 300’ 육성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33개 기업을 추가해 현재까지 모두 100개 기업을 선정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성장성과 수익성에서 일반 기업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강소기업은 일반 기업과 다른 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속도입니다. 2010년 6월 한국중소기업학회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제출한 ‘강소기업의 특성과 육성 전략 및 중진공의 역할’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보면 강소기업의 최대 특징 중 하나는 속도였습니다. 강소기업들을 실증 조사한 결과 이들은 소규모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해 시장 변화에 따른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속도’라는 특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생산성에서도 속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속도는 투입량, 업무 완성도 등과 함께 생산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업무 속도에 무심합니다. 저생산성 조직의 공통점 중 하나는 업무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조사나 분석이 느리고 의사결정도 더딥니다. “업무를 종료하고 퇴근을 결정하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느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실행도 느립니다. 그런데 속도를 높이지 않고 생산성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신현만의 CEO 코칭] 보스의 속도가 조직의 생산성을 결정한다
마냥 손 놓고 기다리는 직원들
생산성이 낮은 회사의 직원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의사결정과 실행을 미루려고 합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즉각 결정하고 즉각 실행할 뿐 보통은 나중에 결정하고 이후에 시행합니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은 회사에선 직원들이 특별한 경우에만 의사결정과 실행을 뒤로 미룰 뿐 대부분은 즉각 결정하고 즉각 실행합니다.

따라서 귀하가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한다면 먼저 회사의 업무 처리 속도부터 높이기 바랍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의 의사결정과 실행은 조직 전체의 업무 처리 속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보스가 의사결정을 미루면 부하 직원들은 그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물론 기다리는 동안 다른 업무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일손을 놓고 기다립니다. 따라서 보스가 의사결정을 빨리 하면 부하 직원들의 업무 처리 속도는 그만큼 빨라지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생산성도 따라서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보스들이 의사결정을 미룹니다. 자신의 판단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어 좀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토대로 정확한 결정을 내리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보스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의사결정을 미룬 뒤 정보를 취득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결정의 합리성을 강화하기 위해 고민을 더 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결정하나 1주일 뒤에 결정하나 달라질 것이 없는 데도 자신이 없기 때문에 결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미룹니다. 그러다가 마감 시간이 되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정을 내립니다. 즉각 결정했을 때와 차이가 없으니 시간만 허비할 뿐입니다.


속도 늦춘다고 완성도 올라가지 않아
문제는 자신의 시간만 버린 게 아니라 이것과 관련된 부하 직원들의 상당수가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기업의 CEO가 의사결정을 미루면 관련 조직 전체가 일손을 놓게 됩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의사결정을 계속 미루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때론 즉각 결정하고 실행하면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기업에서 CEO는 정보가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느냐에 따라 조직의 성과가 달라지고 기업의 성장 발전이 좌우되기 때문에 결정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습니다. 조직에 리더가 필요하고 기업에 CEO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안목이 뛰어나고 배짱이 두둑한 CEO라고 해도 그의 결정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또 결정에는 방향만이 아니라 시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아무리 올바른 결정을 해도 때를 놓치면 의미가 없어지고 맙니다. 그런 점에서 결정과 관련해 중요한 판단 기준은 ‘결정이 얼마나 완벽했느냐’가 아니라 ‘올바른 결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업무 완성도를 높이려면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속도를 늦춘다고 해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속도를 늦춰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것은 대부분이 핑계에 가깝습니다. 설령 완성도가 높아지더라도 속도가 늦어져 생기는 문제와 부담을 감안하면 속도를 늦추는 것은 결코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업무 완성도를 끌어올리려고 한다면 속도를 유지하면서 완성도를 높여야 합니다.

고객 역시 거의 모든 면에서 빠른 것을 선호합니다.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요청을 빠르게 수용하고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길 원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속도가 느리면 고객의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속도를 높이는 겁니다.

조직 전체의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이려면 CEO부터 속도를 중시해야 합니다. 보스의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가 조직의 생산성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십시오. CEO가 결정해야 하는 사안 가운데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더 심사숙고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스의 책상 위에 쌓인 결재 서류는 신중함이 아니라 무능함의 징표로 간주하도록 조직 문화를 바꿔 보십시오. CEO부터 사원들까지 누구든지 의사결정을 미룰 때는 그에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조직 전체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생산성도 눈에 띄게 높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