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 카이스트에 215억 원 기부…전세 아파트서 노년
벤처 대부로 불리는 정문술(76) 전 카이스트 이사장이 215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하며 ‘부 대물림 끊기’ 약속을 지켰다. 정 전 이사장은 1월 10일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카이스트에 215억 원을 기부하기로 하는 약정식을 가졌다. 2001년 당시 개인 기부액 최대인 300억 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정 전 이사장은 “카이스트가 기부금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미래 전략 분야와 뇌과학 분야의 세계적 주도권을 잡는 데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215억 원은 현금 100억 원과 115억 원 상당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부동산이다. 이로써 총 515억 원을 대학에 기부하게 됐다. 정 전 이사장은 평소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그는 이광형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를 통해 기자에게 보낸 글에서 “재산을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고 기부함으로써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이번 기부로 정 전 이사장은 개인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게 됐다. 현재는 전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미래를 개척하는 인생 여정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정 전 이사장 슬하에는 벤처기업을 운영하거나 회사에 다니는 5남매를 두고 있다.
카이스트는 이번 기부금과 2001년에 기부한 금액 중 남은 140억 원을 합쳐 제2 정문술 빌딩을 세우고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 ‘뇌인지과학’ 대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정 전 이사장은 전북 임실 출신으로 익산 남성고와 원광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했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983년 경기 부천시에서 반도체 검사 장비 제작 업체인 미래산업을 세워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한 벤처 1세대다. 1990년대 말 벤처기업 10여 개를 세우거나 출자해 ‘한국 벤처 업계의 대부’로 불렸다. 2001년 아무 혈연관계가 없는 직원에게 미래산업의 경영권을 내주고 스스로 물러났다.
카이스트와의 인연은 이광형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카이스트는 정 전 이사장이 2001년 기부한 300억 원으로 교내에 정문술 빌딩을 짓고 생명공학기술(BT)과 정보통신기술(ICT)이 합쳐진 한국 최초의 융합학과 바이오 및 뇌공학과를 개설했다.
카이스트는 이번 기부금과 2001년에 기부한 금액 중 남은 140억 원을 합쳐 제2 정문술 빌딩을 세우고 바이오 및 뇌공학과에 ‘뇌인지과학’ 대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또 미래 전략과 과학 저널리즘, 지식재산권 프로그램을 통합 관리하는 ‘미래전략대학원’을 독립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기로 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처럼 한국의 장기 전략을 세우는 ‘싱크탱크’로 키우고 뇌인지과학 석·박사 과정 개설과 교수 충원에 쓸 계획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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