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민국] ‘제3의 산업혁명’ 이끌 마법 상자 전면 등장

3D 프린터 대중화…글로벌 분업 네트워크 해체될 수도

최근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두개골 임플란트를 환자에게 삽입하는 수술이 성공리에 이뤄졌다. 또 독일에서는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는 초대형 3D 프린터가 등장했다. 또한 네덜란드의 한 건축가는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 이 밖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피부와 장기·음식·지구 밖의 물질 등 상상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3년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강조했던 대로 ‘제3의 산업혁명’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3D 프린터 살펴보는 관람객들 (서울=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지식재산대전'에서 관람객들이 3D프린터를 살펴보고 있다.이 행사는 '대한민국 발명특허대전'과 '서울국제발명전시회', '상표·디자인권전시회'를 통합해 열리며 독일 등 31개국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명품이 전시된다. 2013.11.29 leesh@yna.co.kr/2013-11-29 13:48:30/ <저작권자 ⓒ 1980-2013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3D 프린터의 대중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3D 프린터는 비싼 가격 때문에 영세기업과 일반 가정 등이 가지기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100만 원대의 저렴한 3D 프린터도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초정밀 인쇄 작업이 가능한 기업용 프린터도 수년 내 200만~3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대 걸림돌이었던 가격 문제가 해결되면서 보급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3D 프린팅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각종 조사 기관의 전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사 기관인 가트너는 3D 프린터 산업이 2012~2016년 연평균 16.8%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맥킨지의 2013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3D 프린터는 2025년 4조 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3D 프린터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기술이 단순한 제조 기술의 혁신뿐만 아니라 기존의 제조업과 관련한 생태계 전체를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완전 맞춤형 개인 생산’ 눈앞에
먼저 ‘개인 생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소품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넘어 완전한 맞춤 생산, 개인 생산으로 산업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제조 설비가 무용지물이 되는 대신 디자인과 특이한 소재가 비싼 가격에 팔릴 것이다. 콤팩트디스크(CD)와 대형 음반 매장이 쇠퇴하고 MP3 형태로 음악이 직접 소비되듯이 대형 매장과 공장이 사라지고 디자이너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홍일선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런 시대가 되면 제조업은 일반적 제품을 저가에 대량생산하는 기업과 고도의 창의성을 가진 디자인 기업으로 나뉠 것”이라면서 “그 중간에 위치한 기업, 적당 수의 품종을 고가로 생산하는 기업은 매우 위험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뿐만 아니라 3D 프린터와 소재가 새로운 산업으로 대두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만약 3D 프린터가 보편적으로 보급된다면 그것은 마치 TV·냉장고·세탁기처럼 기본 가전제품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장은 선도 브랜드도 없고 경쟁도 없는 아직은 완전히 빈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누군가 시장을 형성하면서 선점하는 사업자의 등장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산업 생태계 차원으로 눈을 돌려 보면 먼저 제품 유통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아프리카 법인에서 수리용 부품이 소량 필요할 때 지금은 한국 등 생산국에서 배나 비행기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프리카 법인에 3D 프린터를 몇 대 가져다 놓고 다양한 모양의 부품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면 된다. 프린터·원료·설계도만 같다면 어디서든지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R&D 및 디자인, 제조업 경쟁력 핵심으로
특히 기존의 지역 간, 국가 간 제조업 경쟁력의 재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제조업은 저렴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지로 이전돼 왔다. 실제로 2002년 중국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58센트로, 미국 생산직 근로자 임금의 2.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이들 지역에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저렴한 노동력에 바탕을 둔 경쟁 우위가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2000년 대비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아웃소싱에 드는 물류비 비중도 높아졌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쓰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전엔 복잡한 모양의 제품을 제조하려면 여러 부품을 만들어 조립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하지만 3D 프린터는 어떤 모양의 제품도 조립 없이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다. 값싼 임금의 이점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등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강점인 연구·개발(R&D) 역량을 중심으로 3D 프린팅 기술을 발전시켜 자국의 제조업 부흥을 이끌어 나가는 동시에 기업들의 U턴을 촉진, 자국 내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특히 노동력의 비중이 큰 산업보다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주력할 전망이다. 일례로 미국의 비행기 제조업체인 보잉에선 복잡한 형상의 부품을 만드는 데 3D 프린터를 쓰고 있다.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중국과 같은 ‘세계의 공장’뿐만 아니라 한국과 같은 ‘중간재’를 생산하는 국가들도 위험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R&D 능력과 원료만 확보할 수 있다면 ‘부품’의 제작 자체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3D 프린팅 기술은 국가 간 무역수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진국에서도 생산 공정이 점차 자동화·고도화되면서 자국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아웃소싱하는 것보다 저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조사 기관 트랜스포트 인텔리전스는 3D 프린팅과 같은 차세대 생산기술이 오늘날 생산과 소비가 분리됐던 글로벌화를 역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금과 운송비 간 실익을 따져봤을 때 이제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게 경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변혁이 가져 올 환경적 변화에 대한 우려도 많다. 무엇보다 산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지면서 그동안 제조 기업들이 창출해 온 고용,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순기능을 마비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D 프린터 보급이 가속화된다면 자동차·전자제품·조선해양 등 각 산업 부문에 특화된 거점 도시들이 ‘슬럼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울산·거제와 같은 ‘자동차·조선해양의 메카’는 급격하게 그 힘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