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목표를 정하고 여러 사람과 힘을 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때 비로소
과거의 잘못이 사라지고 새로운 오늘이 내게 온다.
압구정동 성당 신부님 말씀이다. “여러분은 누구에게서 위로를 받아요?” “하나님이요.” 신부는 웃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세요. 내 가슴을 만지면서 자신을 위로하세요. 칭찬도 그래요. 하나님에게서 칭찬 받기 전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자기 자신을 칭찬하세요.”
새해가 시작됐다. 위로는 반성에서 시작된다. 2013년의 반성은 작년 말까지뿐이다. 반성은 잠깐 하면 된다. 고등학생 때 교무실에 꿇어앉아 매일 반성문을 썼다. 3일 동안 반성문을 썼더니 더 쓸 것이 없었다. 이외수 작가는 “잘못한 자를 비웃지 마라. 그는 지금 반성하고 있다”고 편을 들어 준다. 그렇다. 나는 이미 반성했다. 사람들이 나를 비웃어도 좋지만 나는 이제 나를 비웃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나는 다시 할 것이다. 여러분들과 함께. 그럼 되었지, 어떻게 똑같은 반성을 매일 하라는 것인가. “이제 반성할 것이 없는 데요.” 선생님은 “아직도 반성을 하지 못하였구나. 1주일 더 정학 처분이 내려질 줄 알아.” “우라질, 반성 다 했다니까요.”
과거의 실수와 판단 착오가 반성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경우는 없다. 다시 목표를 정하고 여러 사람과 힘을 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때 비로소 과거의 잘못이 사라지고 새로운 오늘이 내게 온다. 반성만 하고 있는 것은 꿈만 꾸고 있는 것과 같다. 꿈만 꾸고 싶으면 자야 한다. 잠 속에서 꿈꾸고 깨어서 또 졸면 그것이야말로 반성할 삶이다.
그 신부는 “자기 전에 잘될 거야, 잘될 거야, 잘될 거야”를 세 번 스스로에게 외치라고 조언한다. 길을 걸으면서도 “잘될 거야”. 정말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 미국에 있는 50대 초반의 산악 후배가 편지를 보냈다. 달러도 없고 직장도 잃었다. 이제 비자 기간도 끝나간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곧 비워 주어야 할 방구석에서 울고 있다. 이것이 최악인가. “이것이 최악이라면 좋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니.” 그러나 그것은 말장난이다. 남에게서 위로를 받아 보았자 기분만 더 잡친다. 좌절할 시간이 그에게는 없다. “잘될 거야”를 허파 속으로 구겨 넣으면서 일자리를 찾아 뛰는 그 후배의 모습에서 8000m의 얼음과 바위를 오르던 그때 그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는 외쳤다. 사라지면 안 된다. 슬쩍 꺼지면 안 된다. 안 보이면 안 된다. 활화산이 되자. 타다가 없어지자. 해야 할 것을 하다가 타버리자. 그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다. 지상이든, 허공이든, 매달리든, 기어오르든, 사라지지는 말자. 기름진 육신을 남겨 놓으면 안 된다. 육신을 소진하는 게 생명의 의무다.
오늘(1월 2일) 아침, 270명의 사원에게 2014년도 사업 계획을 발표한 자료는 55장이다. 그중 2013년의 반성문은 두 장이었다. 모두 내 탓은 아니지만 결국 내 탓이었다. 탓하고 있으면 뭐하랴.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인데. 다시 시작함 속에 허상을 지우고 말장난 없애고, 가슴속에서 외치는 소리 그대로(참됨),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착함),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면(아름다움) 되는 것이다. 나는 용감한 사람은 못 되지만 다시는 비겁한 짓을 하지 않겠다. 이보다 더한 반성이 무엇이 있겠는가.
노익상 한국리서치 대표
1947년생. 1971년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1973년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 석사. 2002년 고려대 사회학 박사. 1978년 한국리서치 설립, 대표이사 사장(현). 2007년 대한산악연맹 부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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