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법인 10년 차로 업그레이드 시점… 주재원·현지인 역할 재정립 필요
올해도 어김없이 ‘글로벌’은 한국 기업들의 신년 사업 계획에 중요한 전략 테마로 인식되고 있다. 글로벌 사업 거점의 이동, 해외 목표 시장에 대한 보다 섬세한 탐색, 글로벌 관점의 최적화된 소싱(sourcing) 체계 구축 등 새해 각 기업들이 풀어야 할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의 고민은 다양성과 깊이가 과거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오히려 ‘안’과 ‘밖’은 공간적 의미만 있을 뿐 전략적 중요도에 있어서는 구분의 의미가 크지 않다. 많은 이슈들 속에서도 기술력이 뒷받침된 좋은 제품, 현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흥미를 끌어 정착된 가치 있는 브랜드 등 우리 기업들이 그간 해외에서 거둔 성과는 현지 진출 기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글로벌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인재의 체계적 관리 시스템에 대한 높은 관심은 우리 기업들의 확장 속도를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새해를 맞아 한국 기업의 글로벌 사업 체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할 몇 가지 포인트를 제시한다.글로벌 경영 중요성 더 커질 듯
먼저 현지화는 속도보다 일관된 개념의 공유가 우선이다. 현지화는 해외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에는 일종의 ‘꿈꾸는 영역’으로까지 목표화돼 있다. 현지 중심으로 전략과 관리 체계가 집중돼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고 무엇보다 효율적이기까지 한 현지화의 과실은 생각만 해도 달콤하다. 유수의 베스트 프랙티스는 이러한 현지화의 이점을 여러 장면에서 입증해 낸다. 우리 기업들도 해외 법인의 현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재원 규모와 역할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현지인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하지만 일부 기업들을 제외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의 현지화 점수를 높게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본사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조직 내 현지화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설정돼 있지 않은 곳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현지화에 대한 본사와 현지법인의 시각차는 다양한 장면에서 가치 충돌에 따른 상호 불신을 야기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해외 사업의 실행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현지화에 대한 기회와 위협 환경이 급속히 조성되는 10년 내외 해외 법인 업력을 지녔을 경우 더욱 유의해야 한다. 이 즈음에는 사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시기이며 동시에 인재 관리, 조직 문화 등 그동안 미뤄둔 기반적 요소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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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화 욕구 폭발 시점 들어서
현지화가 이렇게 단계적 특성을 보이는 것은 본사와 현지의 가치가 어느 정도 이해를 통한 ‘합의’에 이르는 데 소정의 절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현지화를 보다 합리적으로 달성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관점의 인재 관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특히 현지화에 대한 기회와 위협 환경이 급속히 조성되는 10년 내외 해외 법인 업력을 지녔을 경우 더욱 유의해야 한다. 이즈음에는 사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시기이며 동시에 인재 관리, 조직 문화 등 그동안 미뤄둔 기반적 요소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다. 법인 설립 시 채용한 신입 현지인이 이직하지 않았을 때 중간 관리자 후보가 되기 시작하기도 하며 주재원은 3기 내외, 즉 동일 부서에서 같은 일을 했던 2명의 주재원이 거쳐 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기에 본사의 현지화 ‘욕구’가 폭발적으로 표현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공교롭게 한국 해외 법인의 상당 규모가 이때(2000년대 초 진출)에 속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기업의 평균 주재원 재임 기간은 4(+1)년이다. 대부분의 주재원은 파견 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로 현지 도착 후 업무를 통해 경험적으로 체득해 가고 있다. 노력은 해보지만 여전히 현지 문화와 언어는 현지에서의 ‘삶’을 불편하게 만들고 항상 납기가 ‘내일’인 본사가 요구하는 현지 현황 보고서는 다양한 부서에서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로 요구된다. 본사에서의 방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업무와 의전을 넘나든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본사는 주재원이 그들이 기대하는 역할에 미치지 못하며 이를 더딘 현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소통 창구는 여러 면에서 제한적이다.
주재원에 대한 여러 논문을 참고하면 대체로 다양성과 모호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주재원의 중간자적 특성은 공간적으로 본사와 현지 사이, 과업적으로 업무·성과 창출과 가치·역량 강화 사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재원은 아래 네 가지 영역을 다양한 구성으로 수행하고 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가 담당한 업무에 얼마나 부합하는 역할을 수행하느냐 여부다.
본사 전략 실행 점검 역할(Monitoring):현지 관리·통제 및 소통 채널 역할을 통해 본사 글로벌 사업 전략의 효과적 지원
본사 가치 전파(Visioning):본사 핵심 가치 및 경영 방침의 지속적 전파 역할을 통해 본사에 대한 문화적 일체감 유지
현지 사업 역량 제고(Developing):현지 경영 기반 구축과 육성 역할을 통해 현지 사업 성과의 지속 가능한 창출 지원
현지 사업 성과 창출(Executing):현지법인 사업 전략의 실행 역할을 통해 진출 목적을 달성하고 그룹 글로벌 경영 성과에 기여(그림 1)
필자가 만난 많은 주재원들은 파견 국가·산업·부서·직급 등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monitoring)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요하면서 동시에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역할로 인식하고 있다. 주재원의 역할을 시급히 파악해 비핵심 업무 비중을 줄이고 현지화에 대비한 역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현재 주재원이 수행하는 업무를 현지인이 누수 없이 혹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를 기대한다면 이러한 주재원의 역할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는 현지 인재의 역할을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하는 현지화 노력의 일환인 것이다.
![[경영전략 트렌드] 인재 관리가 글로벌 현지화 성패 가른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102/AD.25481671.1.jpg)
저임금의 좋은 관리자는 없다
예를 들어 저직급이 많은 10년 미만 업력을 지닌 현지법인은 아마 지금까지 현지인 승진 결정에 큰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인력 부족이 심한 신흥국 진출 법인에서는 거의 자동 승진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중간 관리자급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 이들에 대한 직책 보임 의사결정이 과거에 비해 중요한 의사결정 중 하나가 된다. 대체로 주재원이 각 기능의 주요 부서장 역할을 하는 한국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업무의 안정, 장기적으로 현지화를 염두에 두더라도 좋은 현지인 리더를 선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내부적 변화를 감지하면 기존 승진 제도에서 더 나아가 이를 판별하는 평가 제도를 매년 재점검하고 개선하는 것이 좋다.
이런 내부적 변화뿐만 아니라 개별 국가의 노동환경 특성을 면밀히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중국은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최근 들어 이렇게 비워진 자리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좋은 현지 관리자를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때 채용, 혹은 보상 정책이 이러한 노동환경에 유연하지 못한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헤이그룹 조사에 따르면(그림 2) 중국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받는 급여의 편차가 서구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중국 현지 직원들은 이직을 통해 업무는 동일한데 급여는 지금의 3배 가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이직 직원을 원망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저직급에 비해 고직급으로 갈수록 승진에 대한 급여 상승 폭이 중국은 브릭스 국가들과 함께 서구에 비해 대폭 확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 기업의 보상 정책이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좋겠다. 중간 관리자급 이상 인재를 놓치면 외부에서 데려올 때에도 높은 급여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인재는 사람 많다는 중국에서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저직급의 임금 수준은 해당국의 국내총생산(GDP) 수준과 상관관계가 높지만 고직급으로 갈수록 개별 인재의 특성이 커지면서 해당국의 GDP 수준과 크게 상관이 없다. GDP가 낮은 개도국에서 팀장급 현지인 채용 시 주재원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해 채용을 주저하는 것이 그 예다. 우리 기업 관계자들이 이러한 곳에서 여전히 저임금의 좋은 관리자를 찾는다면 희망적이지는 않다.
한국 기업들은 새해에도 글로벌 확장이라는 큰 틀 속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도전적인 상황에서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해 내야 할 수도 있다. 기존의 글로벌 인재 관리에 대한 접근을 주재원 처우나 본사 제도의 단순한 이식 수준으로 한정해 왔다면 시급히 글로벌 사업 전략과 연계를 모색해야 한다. 현지 진출 초기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점차 법인이 안정화돼 갈수록 미숙한 현지 인재 관리가 주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새해에는 이런 노력으로 한국 기업의 글로벌 사업 체질이 건강해질 것을 기대한다.
이세희 헤이그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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