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완화 축소는 경제 활력 회복 신호, 금리 인상까지는 시간 걸릴 듯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양적 완화(QE) 정책이 축소된다. 2013년 마지막 열렸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회의에서 2014년 1월부터 매월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매입 규모를 100억 달러 줄일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출구전략(exit strategy)의 첫 단추가 끼워진 셈이다.

2013년 내내 양적 완화 축소 문제가 계속해 나온 것은 2012년 12월에 도입됐던 ‘고용 목표제(employment targeting)’ 운용 방식 때문이다. Fed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되는 이 정책을 운용할 때 기준 금리 변경은 고용과 연계했지만 양적 완화는 연계하지 않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양적 완화를 축소 혹은 종료할 수 있다는 의미도 함축돼 있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시작된 출구전략… 유동성 장세 정말 끝났나
2014년 세계와 한국 경제에 최대 이슈가 될 출구전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 많이 알려진 대로 ‘위기에서 빠져 나오는 대책’으로 이해된다면 위기 이후 추진했던 각국의 대책들이 모두 출구전략에 해당한다. 출구전략을 ‘위기 이후 상황을 겨냥한 선제적인 정책’으로 그 범위를 제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후자의 개념을 정립한다면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과 추진하는 시기는 구별된다. 모든 정책의 시차를 감안하면 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는 상황에서 출구전략을 논의하고 마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빅 스텝’ 금리 인하, 양적 완화 등으로 상징되는 이번 대책이 워낙 강도가 있었던 만큼 상황이 닥쳐 마련한다면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구전략이 마련됐다고 해서 곧바로 추진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제 경기 회복의 ‘싹이 돋는 단계(green shoots)’에서 한 나라 경제의 거름에 해당하는 돈을 거둬들인다면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했던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를 들 수 있다.


큰 목표는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
이 때문에 미리 마련된 출구전략을 언제 추진하느냐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출구전략 추진 시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는데, 전기 대비와 전년 동기 대비로 산출되는 성장률이 2분기 연속 ‘플러스’로 돌아서고 그 수준이 잠재성장률에 근접할 때를 택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도 인플레와 자산 부문의 거품이 우려된다. 앞으로 출구전략을 추진한다면 기준 금리를 곧바로 올리는 방안은 바람직하지 않다. 통화정책에서 기준 금리를 변경하는 것은 급진적인 정책에 해당한다. 경제 주체들이 처한 개개의 사정과 책임에 관계없이 기준 금리를 변경한다면 경제 전반에 동일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시작된 출구전략… 유동성 장세 정말 끝났나
대규모 금융 위기 이후 거론되는 출구전략은 과잉유동성에 따른 인플레와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낄 거품 우려를 불식하는 것에 목표를 둬야 한다. 보통 때처럼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배경에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미국이 처한 여건과 앞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단계별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요인 등과 같은 위기 대책과 관계없이 출구전략을 빨리 가져가게 할 수 있는 착시적인 여건부터 걷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등 선진 신흥국 부상
그 후 계속해 인플레이션과 자산시장에 거품이 우려된다면 이 단계에서는 기준 금리를 올리기보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이나 ‘리버스 오퍼레이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공개시장 조작을 할 때 장기채 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내려 기업의 설비투자 증대 등을 통한 실물 경기 회복과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해 나가되 그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은 중앙은행이 보유한 단기채를 매도해 흡수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출구전략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 된다면 그때 가서 기준 금리 인상과 같은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할 것을 예상된다. 이때도 미국처럼 한 나라의 금리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국가에서는 기준 금리를, 중국처럼 은행 위주의 금융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고 있다.

양적 완화 축소 방침 발표를 계기로 급부상하고 있는 출구전략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추진될 것인지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감을 잡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출구전략은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본질을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출구전략도 지속 기능한 경기 회복 기반을 마련하는 데 본래 목적이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되면 글로벌 증시에서는 ‘유동성 장세’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종료설은 몇 가지 오류가 있다. 무엇보다 출구전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출구전략이 정책 수단 면에서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 놓은 정책을 말한다면 경기뿐만 아니라 증시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출구전략을 추진할 정도로 경기가 회복되면 설령 정책적으로 유동성이 흡수된다고 하더라도 퇴장되거나 부동화됐던 자금들의 기회비용이 늘어 증시와 실물경제에 유입되게 된다. 이러면 증시 가용 자금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 금리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기 이전에는 증시 가용 자금은 더 늘어나는 것이 종전의 경험이다. 경제와 증시 활력 지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대표적인 증시 활력 지표는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를 꼽는다. 통화유통속도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유통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돈이 잘 유통돼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금융 위기 이전에는 선진국들은 신흥국들보다 더 안전하다고 인식됐다. 이 때문에 선진국 자금들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 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 자금이 없을 때에는 금리 차를 이용한 캐리 자금 형태로 개도국에 유입된다. 반대로 개도국 자금은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중시해 선진국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정형화된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위기가 연속되면서 국제 간 자금 흐름의 메커니즘이 크게 흐트러졌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한국 등 선진 신흥국들은 선진국의 수익성 추구 자금과 개도국의 안정성 추구 자금의 공동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선진 신흥국에 속하는 국가들의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국 통화 절상 폭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밖에 출구전략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늦게 추진될 것으로 보이는 금리 인상에 대한 정확한 해석도 필요하다. 단순히 기준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경기나 증시 입장에서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섰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정책 기조가 ‘완화’냐 ‘긴축’이냐는 적정 금리 수준으로 파악해야 한다.

2009년 2분기 이후 유동성 장세가 지속돼 온 점을 감안하면 이제 막 시작된 출구전략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출구전략을 추진한다고 해서 곧바로 주가가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시적인 충격은 있을 수 있어도 출구전략을 추진할 만큼 경기가 회복되고 달러 강세에 따라 환율 전쟁이 누그러지면 주가 상승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