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조업 부활로 보호무역 강화 가능성… 성급한 출구전략 우려도

2014년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예측 기관 대부분의 시각이다.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게 되면 큰 영향을 미치는 ‘테일 리스크(tail risk)’가 그 어느 해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학에서 자연·사회·정치·경제 현상들을 대개 특정한 평균치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발생 확률이 낮아지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로 설명한다. 하지만 발생 확률이 적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빈도가 정규분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커져 꼬리가 굵어지면 테일 리스크가 발생한다.

최근에는 정규분포의 꼬리가 너무 두터워져 평균에 집중되는 확률이 낮아 예측력이 떨어지는 팻 테일 리스크(fat tail risk)가 대두되고 있다. 꼬리 부분이 두껍지 않아야 평균값의 의미가 강해지고 통계학적 예측력이 높아지는데 꼬리가 두꺼워지면 평균값의 의미가 떨어져 예측이 어려워진다.

2010년 이후 세계경제는 저물가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주요국들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푼 자금에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유럽·일본 등의 양적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가계 부문의 부채 때문에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은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오히려 물가가 떨어지는 현상으로,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은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인 2.0%에 크게 못 미치는 1.0%대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2분기 이후 성장률이 0%대에서 2%대로 회복되고 있지만 같은 기간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에서 0%대로 떨어졌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14년 세계 강타할 ‘팻 테일 리스크’
새해 최대 화두는 ‘D’공포
2014년 가장 먼저 팻 테일 리스크로 꼽는 ‘D’ 공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까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다. 다른 하나는 경기가 회복되는데 물가가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이다. 아직까지 디스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이나 성장률까지 떨어뜨려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된다면 세계경제는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2013년 하반기 이후 월마트의 주도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운동이 전개돼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팻 테일 리스크로 꼽고 있다. 이 운동은 현재 민간이 주도하고 있지만 교역 상대국들은 오바마 정부의 제조업 부활 정책과 국가 주도 수출 진흥 정책(NEI)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은 2009년에 통과된 법안으로, 미국 정부가 경기 부양 자금으로 추진하는 공공사업은 자국산 철강과 공산품만 사용하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이를 계기로 국제 통상 환경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인접국의 피해를 주는 근린 궁핍화(beggar-thy-neighbor)로 인해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허버트 후버 미 대통령이 경제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세를 인상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 전 세계 무역량이 4년간 60% 감소했던 전례가 있었다.
<YONHAP PHOTO-0869> A boy runs past a shop sign advertising a "mega sale" in Sydney November 20, 2008. Australian shares fell as much as 4.4 percent to a four-and-half year low on Thursday amid concerns about a prolonged global recession.  REUTERS/Tim Wimborne   (AUSTRALIA)/2008-11-20 13:26:40/<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 boy runs past a shop sign advertising a "mega sale" in Sydney November 20, 2008. Australian shares fell as much as 4.4 percent to a four-and-half year low on Thursday amid concerns about a prolonged global recession. REUTERS/Tim Wimborne (AUSTRALIA)/2008-11-20 13:26:40/<저작권자 ⓒ 1980-200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2014년에는 6년 전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 위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어 향후 시장에 풀린 자금 향방에 따른 리스크에 주의해야 한다. 금융 위기 극복 정도를 감안하면 8부 능선에 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기를 계속해 부양해야 하느냐, 금리를 올려야 되느냐 등에 대한 논쟁이 격렬한 상황이다.


‘지브리의 저주’ 징크스 반복하나
미국은 1930년대 중앙은행이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인플레 안정을 목적으로 자금을 회수해 경기가 재둔화돼 대공황을 맞게 됐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의장이었던 매리너 에클스가 성급하게 추진한 출구전략으로 인해 경기를 망친 것을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라고 부른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과정에서 ▷정책 함정 ▷유동성 함정 ▷구조조정 함정 ▷불확실성 함정 ▷좀비 함정이란 5대 함정의 저주에 빠졌다. 최근에는 ‘지브리의 저주’가 지난 11월 아베 정부의 참의원 선거 압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저주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어 국제 금융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브리의 저주’는 일본의 지브리스튜디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뒤 주가 등 금융시장 지표가 난기류를 보이는 현상이다. 특히 이 저주는 엔·달러 환율과 비교적 상관관계가 높은데, 2013년 7월에 실시됐던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부가 압승을 거둬 원래대로라면 아베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가 약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아베 정부 압승 이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금융시장이 아베노믹스의 의도대로 가지 않고 있다. 일본 증시가 참의원 선거 이후 많이 상승하지 못했는데 일본 국민들의 지지도까지 55% 이하로 떨어지면서 ‘지브리의 저주’란 징크스가 다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아베노믹스가 추진된 지 1년이 되는 2014년의 또 하나의 팻 테일 리스크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14년 세계 강타할 ‘팻 테일 리스크’
유럽과 관련해 2014년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선행의 역설(Kind act’s Paradox)’이다. 선행의 역설은 좋은 의미로 행동한 것이 도리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기부할 때 기부의 순수성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측면을 생각하는 것을 전형적인 선행의 역설로 볼 수 있다.

현재 유럽의 위기가 극복돼 경기가 회복되는 추세를 보이며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나 한국 경기 입장에서 유로화 강세로 유럽 위기가 극복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유로존 17개국 중 비우량국(bad apples)에 속하는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은 유로화 강세로 경제가 더 어려워져 선행의 역설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14년 세계 강타할 ‘팻 테일 리스크’
이 밖에 2014년에 예상되는 팻 테일 리스크로는 ▷출구전략 추진에 따라 신흥국에서 외국 자금의 대규모 이탈(great exodus) ▷국제 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사망 ▷비이성적 과열에 따른 미국 주가 20% 폭락 우려 ▷항로와 자원 확보를 위한 북극 전쟁 가능성 ▷외화 조달 실패로 북한의 붕괴 시나리오 등이 꼽힌다.


용어 설명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은…
미국이 달러의 지나친 해외 유출을 막고 미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실시하는 정책으로 미국 정부 기관이 물자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미국 업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말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