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 고급화 흐름 타고 인기, 백화점 업계 매장 확대 경쟁

서울 서초구 신사동에 사는 김민정(31) 씨는 1주일에 두세 번은 꼭 백화점에 들른다. 그가 찾는 곳은 다름 아닌 지하 식품 매장 디저트 코너. 10여 가지 종류의 전문 디저트 숍이 있어 퇴근길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는 특히 스페인 간식인 추로스를 즐겨 먹는다. 시나몬 향과 달달한 맛이 특징이다. 김 씨와 같은 미각 취향을 가진 이들이 늘면서 최근 이 매장은 갤러리아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정식 매장으로 확장 오픈했다. 그 옆에 있는 한 치즈 케이크 매장은 1일 매출액이 1000만 원을 육박하며 ‘줄 서서 먹는 치즈 케이크’로 유명세를 탔다.

맛을 찾아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미각 노마드’족의 관심은 디저트로 옮겨오고 있다. 식사 후 곁들이는 간식에 불과했던 디저트가 맛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밥보다 비싼 디저트’… 불황 속 고성장
‘양보다 질’ 추구하는 미식가들 열광

고급 디저트 시장의 격전지는 단연 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5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식품관을 리뉴얼하면서 ‘베이커리 박스 조닝’을 만들었다. 디저트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에는 약 10%였다면 리뉴얼 오픈하면서 전체 식품관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매장을 확대했다. 331㎡(100평) 규모에 총 30여 개 디저트 전문 브랜드가 자리하고 있다.

효과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이 올해 백화점 대표 상품군의 연관 구매율을 조사한 결과 델리의 경우 65.2%의 연관 구매율을 보이며 전체 상품군 중 1위를 차지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고메이494’라는 맛집 편집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 리뉴얼을 통해 디저트 브랜드 면적을 약 25% 확대했고 이후 전체 매출액이 약 38% 신장되는 성과를 얻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특히 최신 트렌드 디저트를 선보이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매달 다른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고 추로101을 비롯해 모리나·노이하우스초콜릿·빙빙빙·플로레스타 등 브랜드를 유치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 박보영 바이어는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디저트 시장만은 신장세에 있다는 판단에 따라 디저트 강화에 나섰다. 특히 젊은 여성을 공략,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저트가 인기를 끌면서 신세계백화점도 ‘스위트 존’을 강화했다. 이태원의 유명 파이 전문점 ‘타르틴(Tartine)’은 루바브·레몬머랭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식재료를 사용한 파이로 유명하며 ‘빌리엔젤(Billy Angel)’은 트렌디한 디저트 편집매장으로 홍대와 대학로 등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유명 맛집이다. 또 초콜릿을 주원료로 버터와 우유 등을 첨가해 만든 부드러운 캐러멜인 퍼지를 판매하는 ‘더 퍼지’도 6월에 처음 선보인 이색 디저트이고 손으로 만드는 수제 디자인 캔디인 ‘파파버블’은 매장에서 직접 만들 수 있는 실연 매장을 설치하는 등 그 규모를 확장했다. 8월에는 일본의 유명 파티시에인 몽슈슈를 입점시켰다. 몽슈슈는 오픈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오후 2시면 모든 상품이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백화점 내 고급 디저트 시장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슈니발렌(망치로 깨 먹는 디저트)’은 독일 정통 디저트인 슈니첼의 국내 버전으로 개당 3500원에 판매됐다. 박보영 바이어는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마카롱은 한 입 사이즈에 3500원, 치즈케이크 한 조각이 8800원이지만 갈 때마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라며 “밥보다 비싼 디저트가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디저트의 인기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관계가 있다. ‘먹방’의 인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맛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미각 취향이 정교화되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재료, 푸드스타일링까지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면서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이 바로 디저트다.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미식가들은 하나를 먹더라도 최고급 식재료와 식감을 즐기기 위해 화려한 디저트를 찾아 나선다.


디저트로만 구성한 코스 요리도
디저트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변화는 디저트 카페와 디저트 뷔페의 등장이다. 여기에 정점을 찍는 것은 ‘디저트 코스’ 요리다. 애피타이저·메인 디시·후식의 개념을 디저트에 접목해 디저트만으로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가게가 백화점 섭외 1순위로 떠올랐다. 디저트리의 이현희 오너 셰프는 “디저트 하면 단맛을 생각하지만 단지 디저트만으로도 맛의 에이투지(a to z)를 경험할 수 있다”며 “차가우면서 따뜻하고 딱딱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을 모두 한 코스에서 맛볼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급 디저트의 인기는 유학파 셰프들의 연이은 창업이라는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현희 오너 셰프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파티시에가 등장한 후 실제로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고 저 또한 프랑스에서 5년간 유학과 경력을 쌓은 뒤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식품 기업에서는 대표적으로 SPC가 이태원 패션파이브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고급 디저트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디저트 갤러리를 통해 신제품을 내놓고 인기를 끄는 제품은 자사 브랜드인 파리크로아상에 다시 선보이며 히트 상품은 다시 파리바게뜨에 출시하고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밥보다 비싼 디저트’… 불황 속 고성장
매일유업은 브랜드를 직접 개발하지 않으면서도 디저트 특수를 누리는 곳이다. 최근 ‘소프트리’라는 벌꿀 아이스크림 가게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원료가 매일유업이 운영하는 상아목장의 원유다. 소프트리가 ‘40분 줄 서서 먹는 디저트 가게’로 유명해지면서 납품 수량도 매달 100%씩 늘어나고 있다. 매일유업 또한 자회사를 통해 폴바셋이라는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 판매하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올여름 출시 이후 매달 30~40%씩 판매량이 늘었다.

또한 카페 아티제는 고급 디저트 시장을 겨냥해 기존에 한국에서 생산하던 마카롱을 올해 5월부터 프랑스 직수입 프리미엄 마카롱 ‘비주 드 파리’로 선보였고 메드 포 갈릭으로 유명한 선앳푸드는 디저트가 세분화되는 추세를 반영해 토마토 디저트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처럼 고급 디저트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 유명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박보영 바이어는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프랑스 유명 디저트 브랜드가 먼저 러브콜을 보내고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내한하는 등 프랑스·홍콩 등의 유명 디저트 브랜드들이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일본이나 홍콩보다 한국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디저트 유행이 빠르다는 점도 트렌드다. 당장 올 초 전국 백화점에 고급 디저트 열풍을 불러일으킨 ‘슈니발렌’은 인기 정점을 찍고 매출이 하락하면서 관련 업체는 미국 뉴욕의 인기 디저트인 크로넛(크로아상과 도넛을 합친 베이커리)의 한국 버전을 개발해 다시 한 번 흥행을 노렸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금세 철수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디저트 시장의 우상향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프랑스·일본·홍콩 등은 디저트가 관광 상품이 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현희 오너 셰프는 “프랑스에 비하면 이제 막 디저트 문화가 싹트고 있는 단계”라며 “다채로운 디저트의 화려한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