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현명한 결정이 오늘날의 인천공항을 만든 것처럼 20여 년 후 세계적으로도 모범이 될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몇 주 전에 대만을 다녀왔다. 우리로 치면 안전행정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 공무원 대상의 특강이 있었다. 여러 차례 대만을 방문했었지만 이번 방문은 의미가 남달랐다. 대만 공무원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특별 강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관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에서의 특강이다 보니 필자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었다.
우리처럼 대만도 저출산과 급속한 인구 고령화라는 해결하기 힘든 공통의 고민거리가 있다 보니 우리의 노후소득보장제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 년 만에 연금액의 43%를 삭감한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개혁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공무원연금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해 했다.

낮은 출산율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지만 대만은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심각한 것 같다. 한때 합계출산율(TFR)이 1 이하로 떨어졌었다니 말이다. 다시 1 이상으로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인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2.1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아서다. 최근 들어 중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금년 대만의 경제성장률이 2%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0년 후면 연금 기금이 바닥을 보인다고 하니 대만 정부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정부 재정 여력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쓸 데는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중소기업이 탄탄하다고 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롤 모델 국가로 자주 언급되던 나라가 대만이다. 어느 나라건 개혁에 대한 반발이 크다 보니 우리나라의 개혁이 어떻게 가능했고 앞으로 추가적인 개혁이 있을지에 대해 많이 물어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둘러싼 비화가 떠올랐다. 공무원 두세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는 인천공항.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현실성이 없는 미친놈들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심한 반대 속에서도 집요하게 추진해 얻은 결과가 지금의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이 건설되지 않았더라면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확장할 공간 제약으로 인해 아마도 타오위안 공항 규모로 김포공항이 확장됐을 가능성이 높다. 대만의 타오위안 공항은 면적이 김포공항의 1.5배, 인천공항의 20% 규모다. 제때 인천공항이 건설되지 않았더라면 늘어나는 수요와 신공항 건설 부지 선정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무척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초연금 도입,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공무원연금 개혁 필요성 등으로 노후 소득 보장 구축에서의 기로에 서 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정책을 도입하거나 개혁해야 할 시점에 있는 것이다.

개편의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20년도 안 돼 판가름 날 것이다. 20여 년 전의 현명한 결정이 오늘날의 인천공항을 만든 것처럼 20여 년 후 세계적으로도 모범이 될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사회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냉철함과 소신이 필요한 이유들이다.
[경제 산책] 타이베이에서 돌아본 한국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

1961년생. 1988년 고려대 경제학과 석사. 1997년 미국 텍사스 A&M대 경제학 박사. 2004년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조정실장. 2009년 고려대 경제학과 겸임교수(현). 201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