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확 바꿔 살아남은 일본의 사례 참고할 때

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펴낸 ‘위기의 증권 산업 진단’을 선정했다. 서 애널리스트는 강력한 구조조정 없이는 증권업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는 1970년 이후 증권업의 구조조정 스토리가 꼼꼼히 담겨 있다.
기온이 뚝 떨어진 2일 오후 시민들이 여의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91102
기온이 뚝 떨어진 2일 오후 시민들이 여의도에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091102
찬바람 부는 여의도 증권가. 증권맨들의 관심은 단 하나, ‘위기 극복’이다. 증권주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주식시장에서 가장 소외됐다. 증권주를 고민하다 보니 다운사이징과 구조 재편이라는 가장 민감한 이슈를 언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듯하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해 2013년 전망 자료에서 한국 증권업의 흥망성쇠를 분석, 제시했다. 당시의 결론은 증권업의 수익 구조와 경쟁 구도가 유지된다면 코스피 지수가 3000에 도달해도 증권업의 수익성 개선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시점에서도 이 의견은 변함없다.

이대로는 어렵다. 틀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틀을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희생과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달갑지 않은 이슈 제기는 그저 피하고 넘어가는 게 상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안 제시가 어렵더라도 현상 파악과 문제 인식은 필요하다.
[화제의 리포트] 벼랑 끝에 선 증권업…‘이대로는 다 죽는다’
일 거래액 8조 미만 시 구조조정 효과 커
증권업에서 다운사이징을 단행한 대표적인 시기는 2002~2005년까지 3년간이다. 당시 판매관리비 비율(판매관리비÷순영업수익)은 80%를 웃돌았다. 판매관리비를 줄이기 위해 증권사들은 인원을 감축했다. 3년의 기간 동안 증권사 인원수는 19.8% 줄어들었다. 이후 주식시장이 상승하고 주식거래 대금이 증가하면서 감원된 만큼 인력은 다시 충원됐다. 그리고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2010년 유럽 재정 위기 기간에도 인력은 계속 충원됐다.

2012년 이후 증권업의 수정 판매관리비 비율은 80%를 웃돌았다. 이에 따라 다시 다운사이징이 진행되고 있다. 2013년 6월 증권업의 인력은 2012년 말 대비 5.4% 줄었다. 이유는 2012년 기준 판매관리비 중 인건비(59%)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되는 다운사이징을 반영하면 2013년 말에는 2012년 말 대비 10% 이상의 감원이 예상된다.

증권업에서 인력 증감은 시장점유율의 변동으로 즉시 반영된다. 하지만 증권사의 매출액은 시장점유율뿐만 아니라 주식거래 대금의 수준에 따라서도 크게 변한다. 이에 따라 인력 증감, 시장점유율 변동, 주식거래 대금 수준을 함께 고려해 증권사의 손익을 분석할 수 있다.

유진투자증권의 분석 결과 주식거래 대금이 일평균 8조 원 미만에서는 인력 감축을 통한 비용 절감의 긍정적 효과가 매출 감소의 부정적 효과보다 크게 나타난다. 참고로 지난 2분기 국내 주식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5조7000억 원 수준이다. 즉 그간 증권업은 판매관리비 비율이 80%를 웃돌 시기에 통상 20%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다운사이징이 진행됐다.

결국 현 상황에서 증권업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대대적 구조조정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증권업의 자생적 구조 재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대부분의 증권사가 산업자본인 대그룹 혹은 금융자본인 은행 및 보험에 소속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증권사 라이선스를 필요로 하고 있어 경영권에 대한 확실한 니즈가 있다. 또 증권사 간 합병은 시너지가 별로 크지 않다. 아울러 증권사 수는 자생적으로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당국의 기본 방침이 산업의 대형화와 구조 재편을 유도하려는 흐름은 지속 중이다.

다만 정책 의도대로 증권 산업 내에서 경쟁은 이미 충분히 촉발됐지만 실제로 증권업이 구조 재편은 의도만큼 쉽지 않았다.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에 신규 비즈니스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정책으로 대형화를 유도했지만 자본을 확충한 증권사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게 2013년 현시점이다. 즉 ‘산업의 경쟁력 약화→경쟁을 촉진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마련→산업의 수익성 악화→구조 재편의 부진→산업의 경쟁력 약화’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화제의 리포트] 벼랑 끝에 선 증권업…‘이대로는 다 죽는다’
희망이 있다면 일본의 증권업의 사례다. 올해 11월 초 기준 일본 증권주는 전저점(2006년 1월) 대비 평균 29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일본의 증권주가 급등한 원인은 닛케이225 지수가 2012년 12월 1만을 돌파하며 거래량이 증가한 것과 함께 사전적 다운사이징으로 이익 창출력을 확보한 것에 있다.


‘천수답 수익 구조’ 폄훼 안 돼
일본 증권업은 2007년 이후 5년간 판매관리비 26% 절감, 임직원 16% 감원 등 전사적 비용 절감을 단행했다. 이로써 100%를 넘던 일본 증권업의 판관비율은 80% 이하로 개선됐다. 적자를 거듭하던 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012년 7.9%를 기록했고 2013년은 비록 단기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15%를 웃돌 수 있었다. 특히 2013년에는 오랜 기간의 다운사이징 이후 증시 활황을 맞아 몇 년 치의 순이익을 1년 만에 번 셈이 됐다.

사실 한국 증권업도 저성장?저금리?고령화 등 한국 증권업도 일본과 비슷한 환경을 맞았다. 이에 따라 한국 증권사들은 자산 관리, 투자은행(IB) 등의 특화 전략에서 길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일본 증권주를 견인한 실질적 모멘텀은 사전적 다운사이징과 거래량 증가였다. 즉 일본 증권사의 브로커리지 위주의 수익 구조를 ‘천수답 수익 구조’라고 폄훼하기보다 비용 절감을 통해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의 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천수답 옆에 저수지를 파 놓은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증권주가 호우지시절이라면 한국 증권주는 이를 기다리며 저수지를 만드는 중에 있다. 그리고 언제 저수지가 완성될지 또는 언제 좋은 비가 내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베스트 케이스는 회사 내 다운사이징으로 비용 구조 슬림화, 회사 간 인수?합병(M&A) 활성화, 주식시장 활황으로 증권사 영업이익 급증 등의 시나리오다. 현재 증권주의 주가순자산배율(PBR)은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치는 평균 0.55배로, 절대적 저평가 수준에 있다. 베스트 케이스가 실현된다면 주가 상승의 조건을 충족한 셈이다.

그러나 증권 산업의 다운사이징과 구조 재편은 현재 진행형이다. 경쟁의 강도가 완화되지 않았고 수익성 개선을 위한 전제 조건(비용 절감 이후 증시 호조)도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현시점에서 증권주를 포트폴리오에 의미 있게 보유할 필요는 없다.


정리 이홍표 기자 hawlli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