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새 25% 하락… 온스당 1200~1400달러 ‘박스권’ 진입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던 금(金)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트로이온스당 1714달러를 기록했던 금값은 지난 11월 13일 기준으로 1271.1달러까지 뚝 떨어졌다. 1년간 무려 25% 이상 하락한 것이다. 가격 변동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15일 금값은 하루 만에 9.4%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만약 주식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공황’이 일어날 수도 있는 수준이다. 대신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연간 기준으로 금값이 이렇게 많이 떨어진 것은 16년 만에 처음이다.

지금까지 금에 대해 안전 자산이라고 말한 이유는 역사적으로 볼 때 화폐가치의 하락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의 수익률은 경제 위기 때마다 수익률이 대폭 높아진다. 경제 위기가 생기면 투자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에 대해 불신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작년까지 금값은 지칠 줄 모르고 올랐다. 2008년 11월 15일 트로이온스당 705달러에 불과했던 금값은 2012년 11월 15일까지 4년간 트로이온스당 1714달러까지 치솟았다. 유럽의 재정 위기가 부각되던 2011년 9월 9일에는 트로이온스당 1899달러를 기록하며 역사상 최고치를 찍기도 했다.

그러면 올 들어 금값이 연일 곤두박질친 이유는 뭘까. 가장 단순하게 보면 달러의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달러는 미국의 화폐이자 또 다른 안전 자산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달러와 금덩어리는 그 나라의 화폐와 맞교환할 수 있다. 그래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이의 대체재인 금값이 올라가고 달러의 가치가 올라가면 금값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달러의 가치’ 유지된 게 폭락 주요인
금값이 금융 위기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던 이유는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예상 때문이다. 2008년부터 미국은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른바 ‘양적 완화’라는 방식으로 돈을 찍어 풀어댔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달러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며 금을 사들였다. 단순히 선물용 돌 반지 값을 좀 덜 들이기 위한 개인 투자자들부터 미국 금융 위기를 예상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던 존 폴슨과 같은 세계 헤지 펀드의 거물까지, 나아가 한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앙은행들마저 금을 사들였다.

그런데 투자자들의 예상과 다른 엉뚱한(?) 결과가 발생했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통해 돈의 가치를 낮추자 실물경제가 살아났다. 돈을 들고 있으면 가치가 떨어질 게 뻔하니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양적 완화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그런데 실물경제가 살아나자 달러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됐다. 경제가 살아나자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머니 인사이드] 믿었던 ‘금의 배신’…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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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가치 상승은 금값의 하락을 의미한다. 금값 하락의 결정타는 ‘테이퍼링’, 즉 ‘양적 완화 축소’가 날렸다. 테이퍼링은 최근 글로벌 자산시장의 가장 큰 화두다. 앞서 말했듯이 양적 완화는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테이퍼링은 그간 달러의 가치를 떨어뜨리던 노력을 점점 줄이겠다는 의미다. 당연히 테이퍼링이 이어지는 동안 달러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같은 움직임 때문에 최근 대다수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세계경제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있었던 금값의 드라마틱한 상승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게 대세다.


금값, 거의 생산원가 수준으로 떨어져
그렇다면 앞으로 금값이 올해처럼 계속 떨어지기만 할까. 애널리스트들은 당분간 금값이 상승하기는 어렵더라도 크게 떨어지지는 않고 온스당 1200~1400달러의 이른바 ‘박스권’을 형성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값이 이제 거의 ‘원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황병진 이트레이드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주요 금 생산 업체들의 평균 생산원가(All-in Cost)는 트로이온스당 1100달러에서 1200달러 수준이다. 황 애널리스트는 “금값이 평균 원가 이하로 진입하면 생산 업체들의 신규 프로젝트는 축소, 연기 또는 취소될 수밖에 없고 결국 금 수급 상황은 타이트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대의 금 생산 국가 중 한 곳인 남아프리카공화국 광산협회는 “2013년 6월 가격 수준에서는 자국 금 광산의 약 60%가 수익성이 없어 감산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금값은 트로이온스당 1200~1400달러 구간에서 움직였다.

금이 역사적으로 돈을 대신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물질, 즉 ‘썩지 않는다’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금은 전체 공급량 중 30%가 ‘재활용 물량’이다. 그런데 최근 금값이 떨어지자 재활용 물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톰슨로이터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금 스크랩은 1324톤이 공급돼 전년 대비 16.6%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톰슨로이터는 또 2014년 금 스크랩 공급은 전년 대비 9.9% 줄어든 1192톤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는 금값이 떨어지자 공급의 60%를 차지하는 신흥국에서 금 스크랩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금값이 가파르게 올랐던 이유는 안전 자산의 가격 상승에 베팅했던 헤지 펀드의 대규모 투자가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금 ETF의 급락 등에서 보듯 최근 상당 부분의 ‘투기적 수요’는 이미 금시장을 떠나갔다. 실제로 존 폴슨이 운영하는 헤지 펀드 업체 폴슨앤드코가 지난 6월 말 기준 세계 최대 금 ETF인 ‘SPDR 골드트러스트’에 투자한 금액은 12억 달러로, 3월 말의 34억 달러에서 64.7%나 줄었다.

현재 금의 가장 큰 소비자는 각국의 중앙은행과 신흥국 투자자들이다. 서지영 대신경제연구소 애널리스트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 보유 비중이 하락하긴 했지만 아직도 금 매입세는 유지되고 있다”면서 “2013년 2분기 금값이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금 매입 기조는 유지된 점을 볼 때 중앙은행의 금 매매가 매각으로 돌아설 우려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신흥국 역시 금 매입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점도 더 이상의 가격 하락을 제한하는 요소다. 신흥국은 선진국과 달리 투자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자본시장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아 부를 쌓는 수단이 부동산이나 금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인도의 금 수입관세는 거듭 인상됐고 루피화의 환율은 계속 상승해 2위 금 소비국인 인도의 금 소비량은 매우 부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013년 인도의 금 소비량은 1분기와 2분기 각각 전년 대비 27.35%, 70.05% 늘어났다.

1위 금 소비국인 중국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서 애널리스트는 “2013년 중국 경제는 소비 둔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1분기 금 소비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 늘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며 “2분기는 전 분기 대비 둔화되긴 했지만 전년 동기비로는 88.2%나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금 투자의 정석’은 DLS
<YONHAP PHOTO-2342> An employee picks up a gold bar at the Austrian Gold and Silver Separating Plant 'Oegussa' in Vienna August 26, 2011. Oegussa processes some 100 tons of various precious metals and generates a turnover of 300 million euros a year.  REUTERS/Lisi Niesner (AUSTRIA - Tags: BUSINESS)/2011-08-26 23: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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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mployee picks up a gold bar at the Austrian Gold and Silver Separating Plant 'Oegussa' in Vienna August 26, 2011. Oegussa processes some 100 tons of various precious metals and generates a turnover of 300 million euros a year. REUTERS/Lisi Niesner (AUSTRIA - Tags: BUSINESS)/2011-08-26 23:10:59/

금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투자 상품 중 하나다. 이 때문에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도 금 투자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박스권의 가격 등락이 예상되는 금에 금 ETF 등을 활용해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 파는 투자 전략을 시도해 보거나 금 현물을 사서 10년 이상 장기 보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는 리스크가 너무 크고 후자는 매수•매도에 제약이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 투자에 가장 좋은 형태는 금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다양한 파생결합증권(DLS)을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금 DLS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런던 금값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DLS 발행 금액은 지난 7월 690억 원에서 8월 1507억 원, 9월 2163억 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DLS는 기초 자산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금리를 지급하는 상품이다. 예를 들면 금값이 온스당 1270달러 수준인 지금 최초 가격 50% 이상에 수익률을 보장하는 DLS에 가입한다면 만기 때 온스당 635달러 이상이기만 해도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