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무대는 동남아?…국내 복귀 ‘글쎄’

“에이, 그런 것 없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3월 22일 1년여 만에 공개 석상에 나타났다. 3월 22일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다. 김 전 회장은 최근 사업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 강하게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그가 사면 받은 지 5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다. 대우그룹의 모태 대우실업을 설립한 건 1967년, 김 전 회장이 서른한 살 때다. 1960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6년간 한성실업에서 샐러리맨으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자본금 500만 원으로 창업했다. 봉제품을 생산해 동남아 미국 등지에 수출하기 시작했던 대우실업은 파죽지세로 외형을 불렸다. 이를 토대로 그는 대우건설·대우증권·대우조선 등 24개의 주력 계열사를 거느리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몰락하기 시작했다. 외환 위기로 국가 신용 등급이 추락하며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압력이 심해졌고 당시 부채비율이 600% 이상이던 대우그룹은 결국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들의 기업 개선 작업(워크아웃)에 돌입했다. 견디다 못한 김 전 회장은 그해 10월 중국 옌타이 자동차 부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이후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해외를 정처 없기 떠돌기 시작했다.

5년 8개월 동안 해외 생활을 마치고 2005년 6월 귀국, 검찰 조사를 받은 김 전 회장은 2006년 11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분식회계 및 사기 대출, 횡령 및 국외 재산 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에 벌금 1000만 원, 추징금 17조9253억 원의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를 포기하고 복역하다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2월 31일 특별 사면됐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부암동 AW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행사'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3.3.22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2일 서울 부암동 AW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 46주년 기념행사'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3.3.22
아직 건재한 대우맨의 ‘정신적 지주’
대우의 몰락에는 김 전 회장과 회사 측에 일차적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와 정치권의 오판이 있었다는 시각도 꽤 된다. 일각에서는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대우 출신 인사들은 지금도 “조금만 도와줬으면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우인들 중 상당수가 새 정부 들어 국회는 물론 청와대 핵심 요직에 대거 앉았다. 박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인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전 대우경제연구소장이었고 백기승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대우그룹 홍보담당 임원이었다. 여기에 안종범·강석훈·정희수 새누리당 의원은 모두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다.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김 전 회장의 연세대 경제학과 후배다.

실제로 2010년부터 매년 대우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온 김 전 회장은 기존 대우 임원 친목 모임인 대우인회를 발전시켜 대리급 이상의 직원들도 합류하도록 한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의 행사에도 꼬박꼬박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직도 대우맨들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인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김 전 회장의 선친 고 김용하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은사였다. 30대의 청년 김우중은 1967년 대우실업을 창업했고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는 전자와 중공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대우를 재계 2위의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다. 이후 김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에게 EG그룹(옛 삼양산업) 인수를 위한 자본금 9억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단지 이런 ‘정황’뿐만 아니라 김 전 회장이 직접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G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도 ‘재기설’을 주장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증거’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은 해외시장 개척과 경영에 관심 있는 국내 대학 졸업생 30~40명을 선발해 1년 동안 교육을 통해 실전형 인재를 키우는 과정이다. 지난해 베트남 국립 달랏대에서 이 과정을 마친 1기생 33명 전원이 연봉 2만~3만 달러를 받으며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포스코·CJ푸드빌·한솔 등)에 취업했다. 올 12월 중순이면 약 36명의 2기 연수생이 배출될 예정이며 3기부터 박근혜 정부의 K-무브(Move) 사업 지원을 받으며 그 규모가 2배로 커진다. 이 프로그램에는 전 회장을 비롯해 장병주 세계경영연구회 회장(전 대우그룹 무역부문 사장) 등 대우그룹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강사로 직접 참여하고 있다.


여든 다 된 나이가 가장 큰 걸림돌
실제로 김 전 회장이 재기한다면 지역적 기반은 베트남 및 동남아가 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GYBM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김 전 회장은 베트남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베트남 국토 개발 사업을 자문하면서 쌓은 인맥이 아직 상당하고 현지에서 대우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좋아 언제든지 그의 복귀 시나리오는 현실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다. 베트남·중앙아시아 등에서 그는 여전히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대우’라는 브랜드도 현지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8월 4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의 3남 선용 씨가 2009년 베트남의 ‘하노이시티 콤플렉스’ 개발 사업권을 한국의 롯데그룹에 매각, 수백억 원의 이익을 내기도 했다. 하노이시티 콤플렉스는 하노이 중심가에 사무실·쇼핑몰·영화관 등이 들어가는 65층 건물(고도 195m)을 짓는 사업이다. 이 빌딩 부지는 하노이 중심가에 있고 완공된다면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돼 사업 전망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이유가 가장 첫 번째다. 지난 3월 행사에서 김 전 회장은 복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건강’을 언급하며 “한 달에 한 번 (건강을) 체크한다”며 “건강이 좋아져야 뭘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심장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고 지난해 대우그룹 창립 기념식에서는 보청기까지 착용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미 그의 나이는 올해 일흔일곱이다. 여든이 다 된 나이에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또 김 전 회장이 보유한 자금도 ‘재기’ 수준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김 전 회장 명의의 재산은 전무하다. 다만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집과 베트남·한국의 골프장이 김 전 회장 가족 재산의 전부다. 물론 ‘은닉 재산’과 관련해 여러 설이 등장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발견된다면 막대한 추징금이 기다리고 있다.

최근 입법 예고된 이른바 ‘김우중추징법’이 통과되면 재기는 더더욱 힘들어진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일반 고액 체납자 본인과 가족·은닉 혐의자들에 대한 계좌 추적, 압수 수색, 소환 조사 등이 가능해진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