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컨슈머 문제도 어쩌면 기업의 명확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아닌 우선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대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그에 따른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기업은 더 이상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가 없게 됐다. TV는 어디 제품이 화질이 좋고 냉장고는 어디 제품이 오래 쓴다는 식의 독점이 사실상 없어지면서 기업은 ‘고객’이라는 새로운 경쟁 상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고객이 전화를 걸어 문의한 사안이 필자에게까지 전달돼 관련 내용을 정리해 고객 상담 부서뿐만 아니라 임원진과 부서장을 비롯해 전 직원을 모아 놓고 직접 설명한 적이 있다. 군대 시절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무려 20년 이상 전기면도기를 사용해 온 고객의 문의 사항은 대략 이러했다.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날과 타사 제품과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사용 빈도에 따른 교체 주기가 어떻게 되는지, 전기면도기의 동력원인 모터와 충전식 배터리의 사용 연한은 얼마나 되는지’였다. 수리 접수와 소모품 구입 문의와 관련한 업무를 위주로 교육을 받은 상담 직원이 당황하기에 충분할 만큼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존에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포함해 새롭게 출시를 앞두고 있는 제품까지 사양뿐만 아니라 부속품 및 작동 원리까지 정기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항상 옳다’는 식의 사고(思考)는 또 다른 사고(事故)를 부를 수 있다.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어떤 부분이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웠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적으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취지로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다 보면 내실 있는 서비스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지난해 한 유명 연예인의 부인이 소형 가전제품을 사용하다가 화상을 입었는데 제조사에서 치료비와 새 제품을 보내겠다고 무성의하게 대응했다며 이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려 적지 않은 파장이 일기도 했다. 블랙 컨슈머 문제도 어쩌면 기업의 명확하고 합리적인 대응이 아닌 우선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임기응변식 대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고객과의 소통 창구를 기존의 콜센터 위주에서 온라인과 SNS 등 소셜 네트워크로 다양화하는 시도 또한 이제는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어 버렸다. 전화를 걸고 나서 어느 정도의 대기 시간이 필요한 콜센터를 이용하는 것 대신 기업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온라인 게시판을 활용하거나 나아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개선 사항을 제안하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객과의 연결점을 늘리는 것은 귀찮은 일이 아니라 유기적 대응을 통해 자칫 커질 수 있는 문제를 줄이는 것이라는 실무진의 인식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용해 봤을 법한 114 전화번호 안내 인사 멘트가 이렇게 변경됐을 때 많은 화제와 호응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이에 영감을 얻어 고객 서비스 업무 부서명을 올해부터 ‘고객사랑팀’으로 바꾸고 보다 짜임새 있게 운영하고 있다. 고객은 끝없는 소통을 통해 결국에는 그 마음을 얻어야 하는 구애(求愛)의 대상이 아닐까.


오태준 조아스전자 회장
[CEO 에세이] 고객 서비스의 처음과 끝
1955년생. 1994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1982년 (주)성진전자 설립. 조아스전자 대표이사(현).